‘거실 창 가득 태양광 뷰라니…’ 이격거리 완화에 무너진 귀농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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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자연환경과 조용함이 좋아 귀농한 청년에게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서울로 돌아가라’는 말입니까. 태양광 패널이 거실 창을 가득 채워 조망을 막으면 귀농·귀촌한 이유도 전부 사라집니다.”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덕현리에 사는 이현수(33)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씨는 탁 트인 농촌 들녘의 차분한 자연 경관과 고즈넉한 휴식 환경에 매료돼 귀농을 결심했다.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10년간 일했지만 강릉에선 관련 일자리 부족으로 취업 자체가 불가능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업해야 했다. 그동안 모은 돈과 대출까지 더해 집을 짓고 지난 4월부터 농어촌민박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8월 집에서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3305㎡(1천평) 규모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단지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행복한 귀농 생활의 꿈은 한숨으로 변했다. 그동안 이씨의 민박집을 이용한 손님 대다수가 ‘계단식 농경지 뷰’를 최고의 장점으로 꼽았는데,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서면 객실 창문과 마당 전체가 검은색 태양광 구조물에 가로막히는 등 조망권이 훼손돼 정상적인 민박 영업을 할 수 없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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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음에 강릉시에도 문의했지만 ‘그동안 인근 민가 동의가 필수적이었지만 9월18일부터 완화되는 법률 때문에 인근 민가가 5가구 미만인 경우에는 주민 동의가 필수가 아니다’라는 답변만 받았다.
이씨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시골에 청년이 없다면서 인구 유입을 위한 온갖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연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찾아온 청년의 집 바로 앞에 이런 시설을 허용하고, 주민 동의조차 받지 않아도 되도록 법을 완화한 것은 귀농한 청년을 다시 도시로 쫓아내는 모순된 행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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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채 미만이면 마구잡이 태양광?
이처럼 정부가 재생에너지 보급 촉진을 위해 지자체별로 시행 중인 이격 거리 규제를 완화하면서 주민들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국무회의에서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3월에 개정된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이 9월18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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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행령의 핵심은 지자체별로 다르게 시행해온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이격 거리에 대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상한을 정한 것이다. 그동안 태양광 발전설비의 이격 거리는 지자체별 조례로 정했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마다 100m에서 1천m까지 이격 거리가 다양했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기조에 따라 농촌 곳곳에 우후죽순으로 태양광 발전설비가 들어서면서 갈등이 일어나자 지자체별로 주민들과 협의해 지역 상황에 맞는 이격 거리를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개정된 시행령은 지자체가 조례로 이격 거리를 정할 때 태양광 발전설비는 주거 지역(주택 최소 5호 이상)으로부터 최대 200m 이내에서만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또 도로를 기준으로는 이격 거리를 정할 수 없도록 했다. 이에 따라 9월18일부터 200m 이상 이격 거리를 정한 지자체 조례는 효력을 잃게 됐다.

문제는 이런 규제 완화가 재생에너지 사업 활성화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농촌 지역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각 지역 실정에 맞게 ‘완충 지역’ 설정이 가능했다면, 앞으로는 집에서 200m 이상만 떨어져 있으면 태양광 발전설비가 얼마든지 들어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농민들은 ‘주택 최소 5호 이상’이라는 조항을 추가한 것은 현실을 외면한 전형적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농촌과 산촌은 도시와 달리 집들이 붙어 있지 않고, 자연부락 형태로 넓게 흩어져 있거나 외딴집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골짜기에 집 4채가 모여 있다면 이 마을은 ‘주택 최소 5호 이상’이라는 조건에 해당하지 않아 정부가 새롭게 정한 200m라는 최소 이격 거리조차 적용받지 못한다. 강릉 귀농 청년 이씨 사례처럼 발전사업자가 집 바로 앞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도 막을 방법이 없어진다. 강릉시의 경우 조례에 따라 주택이 단 1채만 있어도 200m 안에는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할 수 없었다. 정부가 ‘주택 5호 이상’이라는 기준을 만들어 이를 허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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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현리 이장 박종근(52)씨는 “태양광사업 주체와 부동산업자 가운데 실제로 마을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격 거리 완화는 실거주 주민을 희생시켜 마을에 살지 않는 사람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농촌은 주택이 대부분 떨어져 있어 읍내를 제외하면 마을 어디든 태양광이 들어설 수 있다. 실제 마을 입구부터 곳곳에 태양광을 설치하려는 난개발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창문을 열었을 때 태양광 패널이 아닌 자연을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주민 홍세정(33)씨도 “가구 수에 제한을 둬 규제를 달리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해당 시설이 주거 및 영업 환경을 해치는 혐오시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준 호수 미만이라는 이유로 이격 거리 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 농촌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실거주 가구는 최소한의 주거권 보호 장치조차 빼앗기게 된다. 거주 인원이 적다고 그 삶의 가치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태양광 이어 풍력까지… 곳곳에서 분쟁 벌어지나
발전설비 이격 거리로 인한 갈등은 강릉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갈등 탓에 이격 거리를 조례로 정한 지자체는 228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129곳으로 절반이 넘는다.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이 9월18일부터 시행된 만큼 앞으로 곳곳에서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붐이 불면 그동안 표면화되지 않았던 사업자와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태양광뿐 아니라 풍력 발전을 둘러싼 갈등도 더 커질 우려가 있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 태양광뿐 아니라 풍력의 이격 거리 기준도 완화했기 때문이다. 풍력은 주거 지역(주택 최소 5호 이상)으로부터 1500m 이내, 도로로부터 500m 이내에서만 이격 거리를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은 “농촌은 전력 식민지가 아니다”라며 재생에너지 이격 거리 시행령을 규탄하는 등 본격적인 반발에 나설 태세다. 이들은 “정부는 이격 거리를 완화하는 명분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내세우지만 정작 농민의 기본권과 재산권을 짓밟는 방식은 정의로운 전환이 될 수 없다. 농촌을 도시 전력 공급을 위한 전력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엄청나 전농 정책위원장은 “이번 개정안은 농촌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독소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가구 간 거리가 먼 농·산촌의 현실을 철저히 무시한 채 5호 미만 농가 주민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1호 이상 모든 민가를 이격 거리 보호 대상으로 삼고, 지자체가 주민 보호를 위해 이격 거리를 조례로 정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후에너지환경부 쪽은 “이번 개정안은 지역마다 달랐던 이격 거리에 대한 국가 차원의 상한을 정해 재생에너지 사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도 함께 고려했다. 앞으로 지방정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해 제도가 현장에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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