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폭행 당했는데···“증거 있나” 정착민 감싸는 이스라엘
1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촬영된 영상에서 한 남성이 차량에 기대 앉아 있다. 이 남성은 베르나르 보두 프랑스 올누아에므리 시장으로, 그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정착민들의 행동 배경에는 이스라엘 정부의 관용이 있다”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외교관 폭행 사건에 대해 “현재 자료만으로는 사건 경위나 책임 소재를 입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스라엘 정착민을 향한 조직적 비방 캠페인”을 언급하고 폭행당한 외교관들이 “사전조율 없이 갔다”는 적반하장 식 주장도 폈다. 대낮의 사실관계까지 비트는 대응을 두고 점령지 정착민들의 폭력을 방조해온 이스라엘 정부의 단면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실은 17일(현지시간) 엑스에 공개한 성명에서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사건 전체 경위나 개별 인물의 책임 소재를 입증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총리실은 “혐의가 중대할수록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엄격하게 요구된다”며 “입증되지 않은 의혹을 유대인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확대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어 총리실은 외국 외교관들이 이스라엘군과 사전 조율 없이 해당 지역에 갔다며 책임을 돌리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유대인을 향한 조직적 비방 캠페인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중 사건이 벌어졌다”며 음모론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 참석차 서안지구 타이베 마을을 방문한 프랑스·벨기에·폴란드 외교 사절단은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공격을 받았다. 몽둥이를 들고 복면을 쓴 남성들이 차량으로 다가와 ‘신분증을 보여라’며 차 문을 두드리는 장면, 베르나르 보두 프랑스 올누아에므리 시장이 차량에 기대 흙바닥에 앉아있는 영상, 깨진 차량 창문 등이 SNS에 공개됐다. 사절단은 곧바로 신고했지만, 3시간이 지나도록 군과 경찰은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을 촬영한 활동가 아미트 오르팔리는 알자지라에 “복면을 쓴 일행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는 하루 전에도 벌어졌다. 전날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하이디 레빈은 정착민 폭행으로 갈비뼈·척추 일부가 골절되고, 뼈가 드러날 정도의 심한 자상을 입었다고 이스라엘 채널12가 보도했다. 이후 총리실은 사실관계가 파악되지 않았으며 “누가 먼저 폭력을 시작했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이스라엘 정착민이 그를 일으켜 세우려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레빈은 채널12 인터뷰에서 “완전한 거짓말이고, 가장 큰 모욕”이라고 반박했다.
벨기에·프랑스·폴란드 등 당사국은 강한 유감을 표시하며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을 규탄했다. 장노엘 바로 프랑스 외교장관은 엑스에서 “이스라엘 당국은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책임자들을 체포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자국 시민인 언론인이 공격을 당한 미국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에 강력한 단속을 요청했다”며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점령지 자국민 폭력을 방조한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폭력의 심각성보다 피해자의 국적·지위에 따라 달라지는 국제사회의 대응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관 폭행 사건으로 전 세계 관심이 쏠렸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는 일상적인 일이라는 취지다. 폭행을 당한 베르나르 보두 시장은 AFP에 “나는 돌아가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여기 머무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헤브론 인근 마을에서 여성 4명, 어린이 1명 등이 다치는 등 서안지구 각지에서 이스라엘 정착민의 폭행·총격·방화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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