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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13, 2026

구석구석 문화 배달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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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레스토랑 ‘위스키와 재즈의 밤’ 행사 모습. 백창화 제공
문학 레스토랑 ‘위스키와 재즈의 밤’ 행사 모습. 백창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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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화 | 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꽤 오랫동안 ‘행사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았다.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 많았고 머릿속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서 반드시 구현해 내고 싶은 일들로 가득했다. 행사를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면 돈이 있거나 아니면 사람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인데 대체로 돈은 없어도 주변에 사람은 있었다. 목소리를 크게 내고 전화를 여러번 돌리면 귀찮아도 웃는 얼굴로 모여주는 이들이 있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 몰려온다는 허탈감이나 공허감은 없었고 몸은 힘들어도 늘 마음이 즐거웠기에 기꺼이 행사의 여왕을 자처하던 시절들.

기운이 꺾인 것은 아마도 팬데믹의 영향이 컸던 듯싶다. 세상에 행사가 없는 삶이라니. 어디 가서 예산 달라 사정할 필요도 없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아도 되니 그토록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서류와 짜증으로 점철된 지원사업 공모도 하지 않고 여왕의 자리를 내려놓으니 일상에 평화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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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오랜만에 지역 연합으로 크고 작은 행사들을 다시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하는 ‘문화가 있는 수요일’ 사업이었다. 매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해 전국 어디서든 손쉽게 문화를 만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의 사업인데 숲속작은책방이 소속되어 있는 ‘괴산책문화네트워크’가 올해 괴산군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낭독과 필사의 밤 ‘도종환 시인 초청-고요로 가야겠다’ 행사 모습. 백창화 제공
낭독과 필사의 밤 ‘도종환 시인 초청-고요로 가야겠다’ 행사 모습. 백창화 제공

수요일마다 우리는 시골 마을 구석구석 문화 배달을 다녔다. 지역 콘텐츠 저자들의 북토크를 열었고 낭독과 필사 모임을 진행하고 문학을 요리와 공연으로 느껴보는 행사를 열었다. 평소에 저자 강연을 열면 일이십명 모으기가 어려운 게 시골의 현실인데 북토크마다 50여명씩 모여드는 성황을 이루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은 ‘문학 레스토랑’이었다. 문학 작품을 주제로 전문 셰프를 초청해 책 속 요리를 직접 해먹으며 공연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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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모인 ‘여왕의 에프터눈 티파티’ 행사 모습. 백창화 제공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모인 ‘여왕의 에프터눈 티파티’ 행사 모습. 백창화 제공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모인 ‘여왕의 에프터눈 티파티’에는 지역 연극배우가 참여해 모임을 이끌고 우리 모두는 토끼굴에 떨어진 앨리스가 되어 티파티를 즐겼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달에는 책방 정원에서 개츠비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열었을 법한 화려한 파티를 열고 진정으로 위대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가 주제였을 때는 ‘위스키와 재즈의 밤’을 열고 일식 정찬과 하루키 소설 속에 등장한 위스키를 먹고 마시며 책 속에 나열된 재즈 음악을 라이브 공연으로 즐겼다.

“여름 내내 밤이면 밤마다 옆집에선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개츠비의 푸른 정원은 속삭임과 샴페인 그리고 별빛으로 가득 찼고, 남자들과 여자들이 그 사이를 부나비처럼 오갔다.” ‘위대한 개츠비’에 묘사된 파티 장면처럼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괴산 곳곳에선 문학과 음악, 무르익은 술과 음식이 지역의 독자들에게 책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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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맞아 또다시 전국은 ‘행사’ 열풍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역 축제와 책 축제가 열리고 ‘축제 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조금 피로하다. 대형 무대를 만들고 광장에서 소리 질러 가며 술과 꼬치구이를 먹는 이런 축제들 말고 동네 ‘행사의 여왕’들이 만들어내는 작고 귀여운 행사들이 실상 우리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아닐까. 참여자가 주도적으로 행사의 주인이 되고 새로운 경험과 흥분으로 불콰해진 얼굴로 되돌아가서 그 감흥을 이어가기 위해 책 한권을 더 찾아 읽는 것. 그렇게 쌓인 만남이 지역마다 새로운 문화 커뮤니티를 만들어내는 것. 이런 것들이 진정 우리들을 문화가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일은 아닐까. 수억원짜리 대형 행사도 좋지만 천만원 안팎의 적은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주는 ‘구석구석 문화 배달’이 좀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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