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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October 6, 2026

[창간 80주년 특집] 춘추정병시대, 꿈을 묻다···장르만 청년 100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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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창간80주년 기획 <춘추정병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 청년들이 ‘내일’이 죽은 자리를 응시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경향신문 창간80주년 기획 <춘추정병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 청년들이 ‘내일’이 죽은 자리를 응시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청년 문제는 없다. 이미 수십 년째 지속하는 취업난, 주거난은 더 이상 청년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 사회의 진면목이자, 맨얼굴이라 봐야 한다. 국가도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할 의지가 없는 우리 사회의 상수다.
청년 문제는 없다. 그들은 나이 빼곤 공통점이 없다.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다니는 마현우와, 특성화고를 졸업한 권병찬은 삶의 경로가 다르다. 학창 시절 온 가족이 모여 저녁밥을 먹었던 현우와,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생활한 병찬은 몸에 밴 규율이 다르다. AI리서처를 꿈꾸는 현우와, 알고리즘이 짜준 대로 배달을 다니는 병찬이 체득한 일에 대한 감각은 다르다. 이들의 고민은 하나로 묶일 수 없다.
청년 문제는 없다. 발언권과 주목도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정부 정책의 초점도, 언론의 조명도 주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어느 정도 사회경제적 배경을 갖춘 청년들에게 맞춰져 있다. 결혼과 출산은 소득 상위 청년들 사이에서만 유의미하게 늘어난다. 정부는 결혼과 출산에 지원하는 예산을 늘리고, 대출 소득요건 등 결혼 페널티를 폐지하고 있다.
청년들이 공유하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끝 모를 불안이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나온 청년도, 고졸 청년도 저마다 불안하다. 학벌이 부족해서, 집안이 부족해서, 평생 영영 만회하지 못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 나만 뒤처졌을까봐, 사회에 내 자리가 없을까봐, 남은 생이 평탄치 않을까봐 불안하다. 청년들은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이 감정을 ‘정병’이라 부른다.
이것은 청년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병든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비롯된 차이를 제도적으로 상쇄하는 데 실패한 사회.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 끊임없는 평가로 꿈을 짓이기고, ‘내 노력이 부족했다’는 자책을 유도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힌 청년의 40%가 심리상담을 받으며 치유에 매진하는 사회. 청년이 쓸모를 느낄 작은 자리조차 내어주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를 오늘도 살아가야 하는 청년 100명의 이야기다.

<시리즈 목차>
① 장르만 청년
② 저궤도 청년
③ 404 : 사랑 낫 파운드
④ 모자무싸
⑤ 전지적 정부 시점

청년의 ‘내일’이 죽었다.

청년은 더 이상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소 건설사에서 일하는 김평화(21)는 “난 당장 내일도 깜깜하다”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퇴근이 늦었고, 토요일인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 내일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전문대를 나와 프리랜서 미용사로 일하는 최현주(30·가명)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다. “뭘 크게 해내거나 이뤄낸 경험이 없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편하다”고 했다.

계획도, 꿈도 없다. 지방대를 나와 치위생사로 일하는 정혜린(28·가명)은 “오늘을 사는 사람”이다. “어떤 꿈이 있다든지 목표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미래에 대한 꿈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을 넘기는 것만 생각한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건 내일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방대를 나와 은행에서 일하는 원준기(32)가 생각하는 좋은 인생은 “내일이 두렵지 않은 삶”이다. 좁은 취업문을 통과한 그에게도 치솟는 집값, 직장에서의 미래 등 구조적인 불확실성은 하루하루의 삶에 그늘을 드리운다.

경향신문 창간 80주년 기획 <춘추정병시대> 이미지. 권도현 기자

경향신문 창간 80주년 기획 <춘추정병시대> 이미지. 권도현 기자

어제를 살고 싶다

경향신문이 만난 만 19~34세 청년 100명의 평균 나이는 26.9세. 인생을 하루 24시간으로 치환하면 이제 기상해 하루를 시작하는 오전 7시 40분에 해당한다. 인생의 막을 열어야 할 시기이지만 청년들은 내일을 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나온 과거를 떠올렸다. 청년 100명 중 67명은 과거로 돌아가길 희망했다. 지방대에 다니는 이준서(24·가명)는 과거로 가, 인서울 4년제 대학에 진학하겠노라고 했다. 그는 중앙 행정기관에서 대학생 인턴을 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출신 대학 이야기가 나올 때 “스스로 작아지는” 걸 느낀다. 과거로 돌아가 더 나은 대학을 가겠다는 사람이 19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공·진로를 바꾸겠다는 사람은 12명이었다.

33명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현재가 만족스러워서가 아니다. 국제중·국제고·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거쳐 대기업에 입사한 한지원(24·가명)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단 한 순간도 없다”며 “내가 지나온 인생을 한 번 더 겪을 수 없다.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9명은 ‘돌아가도 똑같이 살 것 같아서’, 8명은 한지원처럼 ‘힘든 과정을 겪기 싫어서’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현재가 만족스러워서’ 회귀를 거부한 사람은 5명뿐이었다.

오늘의 자기 자신으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청년은 몇 안 된다. 대부분의 청년들에게는 과거로 돌아가 지금까지의 경로를 고쳐쓰는 것만이 희망을 되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회귀 욕망에 담긴 건 후회와 자책이다. 10년 전 청년들은 청년의 모든 문제를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 기성세대를 ‘노오력’이라는 말로 비꼬았다. 그때의 청년들이 겪던 취업난, 주거난이 오늘날까지 지속되면서, 청년들은 오히려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지방거점국립대를 나온 송현우(30·가명)는 4개월 전 직장을 그만둔 ‘쉬었음 청년’이다. 그는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로 시작해 “집 없어서 결혼 못한다는 건 핑계”, “쉬었음 청년이 많다는데, 취업 안되면 취업되는 데로 가야죠”까지 무한 개인 책임론을 폈다.

아마도 그 스스로가 이미 많은 문제를 혼자 감당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때 부모가 이혼했다. 형편도 좋지 않아 집에 손 벌린 적 없다. 인서울 대학교를 갔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통학 가능한 지방 국립대에 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쉬었음 청년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미래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내일 생각하자”고 했다.

[창간 80주년 특집] 춘추정병시대, 꿈을 묻다···장르만 청년 100명의 이야기

꿈을 깎는 청년

절반 이상의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거나 뒤로 미뤘다. 청년 100명 중 꿈이 없거나, 축소·유예된 이들은 56명이다. 심층 인터뷰 대상자 100명을 지난해 고등학교 졸업자들의 진학 통계에 맞춰 인서울 4년제 대학 출신(재학·졸업생 포함) 11명, 지방 4년제 대학 출신 45명, 전문대 출신 20명, 고졸 청년 24명으로 구성했다. 학력·학벌은 청년들 사이에 많은 차이를 만드는 요소였지만, 적어도 꿈의 부재에 있어서는 학력에 따른 차이가 크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의 교육 정책을 떠올리면 아이러니하다. 교육 당국은 진로개발에 방점을 두고, 고교학점제·자유학기제 등 ‘자기주도적 진로 설계’를 강조해왔다. 수 년간의 정규 교육과정 동안 국가가 발 벗고 나섰던 진로 설계는 성인이 되고 단 몇 년 만에 삶과는 아무 관련 없는 단어가 됐다.

대부분의 꿈은 불안에 떠밀려 소멸됐다. 청년들은 꿈과 안정을 저울질 한 뒤, 대부분 안정을 택했다. 시대적 배경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유년기에 외환위기의 후폭풍을 겪은 배준희(31·가명)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이 됐다. IMF 시기 주변의 사업 실패를 여럿 목격한 아버지는 “밑천 없이 할 수 있는 직업”이라며 아들에게 공무원을 추천했다. 앉아서 하는 일이 도통 적성에 맞지 않는 배준희는 운전 직렬 공무원으로의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가정 환경의 영향도 있다. 지방대를 나와 공기업에서 일하는 강민혁(31·가명)은 스스로도 “안정적인 걸 너무 바랐다”고 했다. 대학생 시절, 아버지는 2년간 임금체불을 당했고, 가정 경제는 어려워졌다.

청년의 학벌도 안정지향과 연관이 있다. 꿈은 청년의 학벌에 따라 해상도가 달라졌다. 인서울 청년들은 ‘음악을 이용한 특수교사(우희진)’, ‘자본시장법·AI분야 전문성을 쌓은 컨설턴트(조호정)’, ‘기계공학 연구자(고민재·가명)’, ‘해외 투자·기금 운용 직무(조승민)’, ‘AI리서처(마현우)’ 등 보다 선명한 꿈을 꿨다. 반면 14명의 청년은 ‘공무원’, ‘공기업’처럼 직업군이나, ‘사무직’ 같은 직종을 현재의 꿈으로 꼽았다. 11명이 지방대 청년이었다. 지방대 청년들은 공무원, 공기업을 꿈의 상한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직업 안정성도 높고, 입사 경쟁에서 학벌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지방대생 이준서는 “대학 친구들은 대부분 공기업을 지망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것 같다”면서도 “대기업은 학벌을 본다고 생각하니까, 사실은 (대기업 지원을) 포기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경향신문 창간80주년 기획 <춘추정병시대> 이미지. 권도현 기자

경향신문 창간80주년 기획 <춘추정병시대> 이미지. 권도현 기자

“노력해야죠, 평범하려고”

일에서 보람, 쓸모, 가치를 찾으려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화장품 회사 연구원을 꿈꿨던 정혜린은 현재 치위생사로 일한다. 그는 “이걸 평생직업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더 잘해서 뭐 하나?”라고 했다. 11살 때부터 기타를 치며 진지하게 록스타를 꿈꾼 강지혜(26·가명)는 스포츠 의류 브랜드의 판매직으로 일하고 있다. 일할 때 그의 목표는 “1인분만 하자”다. 공기업에 다니는 강민혁은 지금 직장에 “매우 만족”하지만, 지금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은 “전혀” 없다.

이들이 ‘회사에 헌신하지 않는’ MZ세대라서가 아니다. 사회가 이들이 가치를 느낄만한 자리를 내주지 않아서일 수 있다. 일단 안정이라도 좇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울 것 같은 불안을 계속 생산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청년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문제로도 얼마든 수렁에 빠질 수 있고, 한 번 수렁에 빠지면 다시 복구하기 어렵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다. 전문대를 나온 임성훈(31·가명)은 중학교 때 아버지가 투병을 시작했고, 고2 때 돌아가셨다. 가세가 기울었고, 일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학원 다닐 시간도 없었다. 그는 “고1 때까지는 그래도 학업이 많이 뒤쳐지는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벅찼다”고 했다. 인터뷰에서 한 부모·조손 가정에서 자랐다고 언급한 청년은 19명이다. 이들 중 인서울 청년은 한 명도 없었고, 지방대 청년이 5명, 전문대·고졸 청년이 각각 7명 있었다. 꿈이 남아 있는 사람은 6명에 불과했다.

꿈이 사라지고,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 청년들은 이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삶의 방향을 “평범하게”, “남들만큼”, “안정적으로”, “너무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등으로 언급한 청년이 76명에 달했다. 꿈을 이뤄 세상에서 나의 쓸모를 찾겠다는 포부나 욕망은 사라지고, 남은 삶이 고통스럽지 않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만 남았다. 지방대를 나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이나은(27·가명)은 내세울 것 없는 학벌이 언제고 자신의 발목을 잡을 거라고, 자신이 대체될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한다. 교사를 꿈꿨던 그의 축소된 꿈은 “어떻게 하면 노년까지 좀 안 괴롭게 살 수 있을까”이다. 이것은 꿈이라 할 수 없다. 그저 생존 욕구다.

허들이 높아진 세상에서 ‘평범’은 어쩌면 가닿을 수 없는 꿈일지 모른다. 취업난, 주거난만도 버거운데, 하나라도 뚫고 들어가지 못하면 가정을 꾸린다는 전망도 불투명해진다. 지방대를 나와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상현(34·가명)은 “적당히 월급받고 평범하게 사는 것”에 “평생 도달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결혼은 “안 하고 싶다”고 했다가 “못 하지 않을까?”라고 정정했다. 고교 때 프로 복서로 데뷔도 했던 김태훈(31·가명)은 “적당한 크기의 집에 아내와 아이들이 있고, 한 번씩 외식도 하는” 인생을 꿈꾼다. 영업직의 불안정한 소득, 팬데믹 때 배달 음식점을 확장했다가 생긴 빚은 꿈의 걸림돌이다. 그는 “노력을 해야죠, 평범하려고”라고 말했다.

이들은 과연 평범에 도달할 수 있을까. 희망을 깎아내고 남은 평범에 대한 바람마저 부서질 때 이들은 어떤 표정으로 이 사회를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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