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인정 못 받아 출산휴가도 ‘반쪽’…동성부부가 계속 싸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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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출산이든, 동성 부부 출산이든 결혼 제도 바깥에서 아이를 낳고자 하는 여성이 있고 실제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삶이 있다는 걸 이제는 정부가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아요. 성소수자들은 시끄럽게 퀴어 퍼레이드를 했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을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레즈비언 부부의 임신과 출산 사실을 공개했던 김규진(35)씨가 지난 20일 한겨레에 말했다. 규진씨는 2019년 미국에서 배우자 김세연(38)씨와 혼인신고를 하고, 그해 11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21년 프랑스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던 규진씨는 직장 상사에게 “와이프가 있다”고 말하자 “그럼 애는 낳을 거지?”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동성부부의 출산은 선택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선 법적 부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 부부만 정자 기증을 받을 수 있다. 법적으로 비혼 여성인 규진씨는 벨기에 난임병원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2023년 8월 딸 ‘라니’(태명)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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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살 때부터 자기 양말을 스스로 고르고 좋고 싫음을 분명히 표현하는 라니와 함께 사는 부부에게 지난달 24일 ‘혼인평등소송’ 각하 결정이 다시 한번 날아들었다. 이들은 2020년 서울 종로구청에 혼인신고를 했지만 거부됐고, 2024년 10월 10쌍의 동성 부부와 함께 혼인신고를 수리해달라는 취지의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신청을 제기했다. 같은 해 11월 불복신청 한 달만에 1심이 각하된 데 이어 2심 결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가정법원은 2심 판결문에서 “혼인은 가족 구성의 기본 전제가 되고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기초가 되므로 사회나 국가제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며 “혼인을 당사자의 성별을 불문하고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결합으로 확장해 해석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1·2심 법원 모두 당사자 신문 없이 서면 심리만 진행했다.
2심 판결문을 받아든 규진씨는 말했다. “우리는 이미 다음 세대를 낳아 기르고 있는데, 내가 길러내는 다음 세대는 차별해도 된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우리가 아이가 있다는 걸 아예 읽지 않은 건지 궁금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법원이 어떻게 이렇게 게으른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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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진·세연씨 부부의 ‘혼인’이 인정되지 않음에 따라 이들 부부에겐 일·가정양립제도도 ‘반쪽’이다. 법적 부부가 아니기에 아이를 낳지 않은 세연씨는 배우자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쓸 수가 없다. 수도권의 한 병원에서 마취과 의사로 근무했던 세연씨는 “배우자 출산휴가를 쓰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같이 일하던 시니어 교수님들까지 다 허락했지만 행정팀에서 ‘휴가를 줬다간 국정감사에 불려갈 수 있다’며 반려했다”고 말했다.

규진씨와 세연씨가 ‘법적 부부’로 인정되지 않음에 따라 세연씨는 현재 라니와 법적으로는 ‘남남’이다. 라니는 규진씨의 딸로 출생신고가 되어있고, 세연씨와 라니는 주민등록등본 상 단순 동거인 관계다. 규진씨는 “해외 근무를 또 가게 될 때 만약 라니가 한국에 있어야 한다면 세연언니와 라니가 모든 행정처리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혹시라도 제가 먼저 사망할 때 세연언니에겐 친권이 없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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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의 학교 생활도 걱정되기 시작했다. 최근 혐오·차별 예방 및 대응 가이드북에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삭제한 교육부의 대응을 보고서다. 규진씨는 “라니가 만 2살 때쯤 베이비시터님께 ‘라니 아빠는 어딨어?’라고 물었다고 전해 들었다. 시터님은 ‘엄마나 아빠가 둘인 아이들도 있고, 엄마나 아빠가 없는 가족도 있다. 그냥 라니는 엄마가 둘인 것’이라고 설명하셨다고 했다. 저희도 다양한 가족 형태 중 우리 가족은 이런 모습이라고 설명하려고 한다”며 “다만 최근 교육부의 대응을 보고 막막해졌다. 이제 성소수자들이 자라 아이를 기르기 시작했는데도 학교는 라니에게 ‘너는 엄마가 둘이어서 차별받아 마땅하다’고 가르칠 건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성부부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다”며 “이제는 정부가 성소수자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짚었다. 규진씨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미프진 도입에 대해 ‘반대가 많다고 개혁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말했던 게 인상 깊었다. 동성혼도 당사자가 아닌 이들의 반대가 극심하다는 점에서 같은 과제인 것 같다. 이제는 대통령과 정부가 저희 아이와 성소수자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할 때”라고 했다.
세연씨는 “라니가 앞으로 ‘정답이 없는 사회’에서 자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이 정한 '정답'과 다르다고 주변에서 비난하거나, 스스로가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사회를 라니가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들이 남들과 다른 ‘혼인'을 인정받기 위해 계속 싸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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