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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31, 2026

“밤 11시 조사는 어느 수사기관도 안합니다”···한화, 공정위와 법정에서 맞붙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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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그룹 사옥. 한화 제공

한화 그룹 사옥. 한화 제공

“기업에 이런 소송은 큰 부담입니다. 그런데 어느 수사기관도 동의 없이 밤 11시까지 조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한화 측 변호사)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권순형)는 지난 29일 한화와 한화 직원 A씨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자료제출명령 취소 소송의 첫 변론을 열었다. 법정에서 한화 측 대리인은 공정위가 직원의 휴대전화를 동의 없이 열람하고, 심야조사를 강행하는 등 ‘위법 조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조사 동의한 적 없어 vs 행정조사 적법

한화와 공정위 측의 이번 법정 다툼은 지난 7월 공정위가 벌인 현장 조사에서 시작됐다. 현장 조사는 한화그룹 계열사 사이 상표권 사용료를 두고 부당지원이 있었는지 살피기 위한 차원이었다. 그룹 상표권을 쓰는 계열사는 상표권을 보유한 회사에 사용료를 낸다. 사용료의 적정가격을 판단하기 어려운 탓에 총수 일가 지분이 높은 회사에 계열사 이익을 옮기는 창구로 쓰이기도 한다. 공정위도 상표권 사용료 적정성과 계열사 간 부당 거래가 의심된다는 취지로 한화 조사에 나섰다.

현장 조사 과정에서 공정위는 상표권 업무 실무자인 A씨의 휴대전화를 열어 외부기관 회계사와 나눈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공정위는 이후 한화와 A씨 측에 문자 메시지 내용을 담은 USB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한화와 A씨 측은 지난 8월 공정위가 내린 자료제출명령을 취소해달라는 본안 소송과 그 효력을 일시 정지해달라며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서울고법은 지난달 한화 측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공정위의 자료제출명령은 내년 1월 말까지 효력이 정지됐다.

지난 29일에는 공정위 자료제출명령의 ‘적법성’을 본격적으로 다투는 본안 재판이 열렸다. 한화 측은 공정위의 자료제출명령이 위법 조사를 합법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사후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미 A씨 동의 없이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야 내린 명령이라는 것이다.

한화 측은 “명시적으로 (직원이 휴대전화 열람에) 반대하지 않았으니 동의했다는 게 2026년 국내 어느 행정 분야에서 가능한 설명인지 모르겠다”며 “국가 행정기관의 인식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또 공정위가 현장조사 당시 직원들을 상대로 심야조사를 강행했다고도 주장했다. 한화 측은 재판부에 공정위의 무리한 조사를 “사법 통제로 해결해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공정위는 현장조사 절차는 모두 적법했다고 했다. 또 자료제출명령도 법적 요건을 모두 갖췄다고 반박했다. 직원들은 현장에서 동의 의사를 보였으므로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A씨의) 문자 메시지는 한화 직원이 업무 관계자와 한 업무 연락”이라며 “공정위 조사에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상 조사 요건을 충족한다”고 했다. 이어 “한화 측은 동의가 없었다고 하지만, 제출한 녹음파일과 녹취록을 봤을 때 과연 동의가 없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재판부는 한화와 공정위 측이 신청한 증인 2명씩을 불러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로 했다. 오는 12월 증인신문을 거친 뒤, 결론은 내년 1월에 나올 예정이다.

공정위 조사 → 형사 사건 직행에 기업 반발 거세져

공정위 조사에 반발해 법정 싸움을 벌이는 기업은 한화뿐만이 아니다. 기업들이 공정위 조사를 받은 뒤 형사 재판을 받는 경우가 늘자, 앞선 조사 단계에서부터 기업들의 반발이 커지면서다.

쿠팡도 공정위 조사를 두고 법원에 잇따른 불복 소송을 내고 있다. 공정위가 지난 8월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현장조사를 실시하자, 쿠팡은 ‘사전 통지가 없었다’며 이에 응하지 않고 법원에 현장조사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쿠팡은 현장조사 결정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도 냈으나, 서울고법은 지난달 “공익적 목적으로 실시한 것”이라며 이를 기각했다. 쿠팡은 법원 결정에 재항고한 상태다. 이와 별도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혐의로 공정위가 10년 치 자료 제출을 요구한 데 대해서도 소송으로 다투고 있다. 쿠팡은 공정위의 조사 범위가 과도하다며 보고·제출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법원은 다음 달 5일 첫 심문을 연다.

법조계에선 공정위 조사가 형사사건이 될 가능성이 커진 만큼, 조사 단계에서부터 기업들이 적법성을 다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최근에는 공정위 조사가 수사로 확대되고 형사 재판으로 직행하고 있다”며 “기업들도 행정조사 단계에서부터 수집된 증거들에 대한 위법성을 다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행정조사에 법원이 제동을 거는 경우도 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엄격한 절차를 따르는 수사기관과 달리 공정위 등 행정기관은 사실상 강제수사에 준하는 자료제출을 요구하지만, 이에 대한 법원의 통제 기준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행정조사기본법은 행정기관이 조사 7일 전까지 대상자에게 서면으로 알리도록 정한다. 다만 공정거래법 등에 따른 공정위 조사는 사전 통지를 예외로 정한다. 공정거래법은 조사방해에 최대 3년의 징역이나 2억원의 벌금을, 정당한 이유 없는 자료 미제출 등에는 최대 2년의 징역이나 1억5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예고없는 공정위 현장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도 가능한 구조이다.

행정재판을 맡았던 한 부장판사는 “한화의 집행정지 인용은 법원의 이정표 결정으로 볼 수 있다”며 “법원은 수사기관의 절차 적법성을 따지는 판례를 계속 쌓아왔는데, 이런 판례 경향이 행정조사로까지 확대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행정기관의 조사 적법성을 다투는 소송도 많아지는 만큼 법원이 제동을 거는 판례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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