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가입 이주노동자 무더기 계약 종료···지역특화형 비자 맹점
전북지역 노동·인권·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27일 오전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특화형 비자 이주노동자의 노동인권 보장과 일강의 부당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지방소멸 대응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유치한 이주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한 뒤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노동계는 사업주가 체류자격 연장에 필요한 서류 발급을 거부하거나 비자 연장을 거론하며 노조 탈퇴를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이주노동자의 지역 정착을 유도하는 비자 제도가 노동권 보호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민주노총 전북본부와 금속노조 전북지부 등에 따르면 전북 김제 지평선산업단지 내 자동차 부품업체 일강에서 이주노동자 13명이 최근 비자 연장과 재계약을 거부당했다. 이 가운데 4명은 전북도가 추천한 지역특화형 비자(F-2-R) 소지자다. 노조 측은 노조 탈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노동자도 2명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노동조건과 인권 침해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배우자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한 연차 사용이 거부되고, 회사와 행정 브로커가 여권과 통장을 압수했다는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 관리자들은 지난 2월 노동자들의 기숙사를 찾아가 노조 탈퇴서를 내밀며 “서명하지 않으면 비자 연장 없이 보호소로 보내겠다”, “파업하면 재계약은 없다”고 압박했다.
10여 년 전 한국에 정착해 F-2-R 비자를 취득한 라지즈씨(31)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일터와 꿈을 잃었다”며 “노조 가입 여부가 체류와 추방을 결정하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일강 측은 노조 탄압 의혹을 부인했다. 회사 관계자는 “인사권은 회사의 고유 권한이며, 1년 단위 근로계약 만료와 업무 평가에 따른 조치일 뿐 노조 가입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전북도는 사업주에게 비자 연장 관련 서류 발급을 강제하거나 사적 노사 분쟁에 직접 개입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인권단체들은 지역 정착을 유도하는 정책에 노동권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과 지역에 정착하도록 유도하면서도 고용주와의 갈등으로 일자리를 잃으면 이를 구제할 제도적 장치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유기만 전북이주인권노동네트워크 운영위원은 이날 전북도청 앞 기자회견에서 “사업장·업종 변경 제한과 지역 거주 의무라는 이중·삼중의 족쇄를 채워놓고 사업주가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게 방치하는 것은 전북을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으로 만드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북도가 과거 추진을 약속한 이주민 인권 조례 제정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정주 여건을 보장할 제도 마련을 요구했다.
지역특화형 비자는 인구감소지역 등에 외국인 인력을 유치하고 장기 거주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고용 관계가 유지돼야 체류 연장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경우 사업주가 고용과 체류 문제를 압박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계는 비자 제도의 취지에 맞게 노동권 침해를 예방하고 피해 노동자를 보호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지난 8월 11일부터 일강 사업장 로비에서 농성을 이어가며 계약 종료 조치 철회와 전북도의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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