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주방과 망가진 폐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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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새 집은 모두의 로망이다. 새 아파트로 입주할 수 없다면, 오래된 아파트를 큰돈을 들여 고치기도 한다. 인테리어나 리모델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유튜브 채널은 인기다. 거실 통창을 배경으로 고급스러운 아일랜드 조리대 위에 예쁜 주방 도구가 비치되고, 함께 요리하며 대화하는 장면도 자주 연출된다. 주방 가구의 상판이 대리석이면 그 고급스러움이 배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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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이 사용되는 아일랜드 조리대의 상판 재질은 크게 스테인리스, 세라믹, 인조 대리석, 엔지니어드 스톤, 원목, 천연 대리석 등이 있다. 천연 대리석이 가장 비싸고 좋은 자재라고 보고, 이와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는 재료들로 개발된 것이 세라믹, 인조 대리석, 엔지니어드 스톤이라고 한다. 세라믹은 고온에서 고압으로 구워낸 소재로 수분 흡수가 거의 안 되어서 김치 국물 등 오염이 적고 냄비 받침도 필요 없는 매우 비싼 소재다. 인조 대리석은 아크릴 등 화학 수지로 만든 상판으로 가격이 합리적인 반면 긁힘이나 뜨거운 냄비에 의한 변색이나 변형 가능성이 높다. 최근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엔지니어드 스톤이다. 이는 인공 석재로 천연석 무늬를 살리면서도 강도가 높고 오염에 강하다고 한다. 문제는 엔지니어드 스톤이 천연 석영을 90% 이상 압축해서 만든 소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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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주방을 만들기 위해 조리대 상판을 제작하고 가공하던 노동자들이 규폐증에 걸렸다. 탄광의 위험을 감지하던 카나리아 새처럼, 어떤 환자는 다른 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파수꾼 사례’(sentinel case)가 된다. 당사자에겐 너무나 불행한 일이지만, 공중보건 차원에선 더 많은 이들이 그 병에 희생되는 걸 막아준다.
출판 논문으로 확인된 파수꾼 사례는 2009년 스페인에서 보고한 젊은 건설업 노동자 3명의 규폐증 사례였다. 이 논문에서는 이들이 인공 석영을 사용해 작업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후 2011년 주방과 욕실 상판을 취급하는 6명의 노동자 규폐증 사례를 추가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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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 질병관리청은 텍사스 노동자 한명의 사례를 발표했다. 37살 남성인 이 노동자는 엔지니어드 스톤 상판을 제작하는 업체에서 10년 정도 근무했다고 한다. 2008년께부터 지속적인 기침 등이 있었다고 하니, 근무 5년이 되지 않아 증상이 시작되었다. 2014년 진단 땐 이미 흉부 전체에 소결절이 퍼져 있었고, 폐 기능 저하와 폐고혈압이 동반된 중증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도 6~9년의 가공 업무 수행 뒤 폐 이식에 이르게 된 47살과 36살 노동자 사례가 보고됐고, 중국·대만에서도 유사 사례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노동자들이 5년 미만 노출되었는데도 심한 규폐증을 진단받았고, 폐 이식을 해야 할 정도로 빠르게 중증으로 진행되었으며 사망률도 높았다.
이런 사례가 쌓이다 보니 호주에서는 2024년 7월 이후 엔지니어드 스톤의 제조·가공과 설치를 금지했고, 2025년부터는 수입도 규제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금지를 추진 중이다. 또 유럽연합(EU), 미국, 스페인, 뉴질랜드 등은 해당 작업의 노출 기준과 작업 방식에 대해 좀 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기로 하였다.
최근 국내 워크숍에서 유사한 규폐증 사례를 접했다. 역시 젊은 노동자로 엔지니어드 스톤 가공 업무를 한 기간이 5년이 안 된다고 했다. 환자를 면담한 전문의가 흉부 방사선과 시티(CT) 촬영 결과를 보여줬다.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의사 국가고시에 낼 만한, 너무나도 전형적인 규폐증 환자가 내 눈앞에 있었다. 발표한 전문의도 탄광부 진폐증이 아닌 이런 전형적인 규폐증을 처음 본다고 했다. 수많은 진폐증 환자를 진료해왔던 그분도 이처럼 교과서에 나올 만한 규폐증을 지금 이 시기 한국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이런 위험한 업무를 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는지, 언제부터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지, 다른 환자는 없는지 파악조차 어렵다. 인테리어 업체의 고용 특성상 실질적 파악은 더 어려울 수 있다. 문제의 환자는 자기랑 비슷한 사람이 한명 더 있다고 했다. 규폐증은 예방 가능한 질환이다. 국내에도 파수꾼 사례가 나타났다. 빠르게 현장을 파악해, 더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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