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권 줘도 안 왔다”···관객 찾아 변신해온 국악관현악, 신명나는 50년 생존기
사물놀이 김덕수 명인과 국악 지휘자 박천지 동국대 교수가 지난 7일 국립극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여러 국악기를 대규모로 편성해 연주하는 국악관현악. 대중들이 전통음악 만나는 낯설지 않은 연주 형식이지만 그 역사는 길지 않다. 단선율과 장단, 즉흥 호흡 중심이던 우리 소리에 서양식 화성학과 대규모 편성이 얹어진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낯선 서양식 옷을 입고 출발했던 국악관현악은 지난 반세기 동안 충돌과 실험을 거치며 독창적인 생존기를 써 내려왔다.
오는 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국립국악 관현악단 관현악 시리즈Ⅰ <협연의 연대기>는 197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각 시대를 상징하는 국악 협연곡 5편으로 그 궤적을 짚는다.
공연을 이끄는 박천지 지휘자(동국대 한국음악과 교수)와 사물놀이 대가 김덕수를 공연 준비가 한창인 지난 7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다섯 살이던 1957년 남사당 ‘새미’로 시작해 내년이면 무대 인생 70년을 맞는 김덕수가 국악 대중화를 이끈 ‘산증인’이라면, 국립국악관현악단 타악 연주자 출신으로 전주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낸 박천지는 작곡·지휘를 넘나들며 국악관현악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고 있다.
“초대권 줘도 안 오던 시절”…관객 찾아 오케스트라로
“1965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창단 이후 대규모 국악관현악을 위한 창작곡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전통 악기를 독주자로 앞세운 협주곡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어요. 대금 협주곡 ‘대바람소리’가 대표적인 작품이죠.”
박 지휘자는 이상규 작곡가의 ‘대바람소리’(1978)를 국악 협연의 출발점에 놨다. 정악적인 대금 음색을 관현악과 결합한 이 곡은 이번 공연의 첫 곡으로 연주된다.
사물놀이 김덕수 명인이 7일 국립극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9.7. 정지윤 선임기자
1980년대는 국악 협연이 대중화된 시기다. 1978년 김덕수가 사물놀이라는 공연 양식을 세상에 내놓은 뒤 오케스트라와 타악이 만나는 ‘마당’(1983), ‘신모듬’(1986) 같은 파격적인 협연곡들이 잇따라 탄생했다. 그 이면에는 관객을 찾아야 한다는 국악인들의 절박함이 있었다.
“초대권을 줘도 국악 공연에는 관객이 안 오던 때였어요.” 김덕수가 웃으며 말했다. 서양 클래식 공연 표는 수십만 원에 팔리던 시절이었다. “관객을 만나려면 콘체르토(협연)를 해야 했어요. 관객이 있는 무대로 직접 들어가자고 생각했죠.”
창작 국악이 낯설었던 시절, 국악과 서양 오케스트라의 만남은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실험인 동시에 기존 음악계의 벽을 깨는 도전이기도 했다. KBS교향악단과 무속 장단을 활용한 창작곡을 연주하기로 했다가 연습을 하지 못해 무대에 올리지 못한 적도 있다.
판세를 바꾼 작품이 박범훈의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이다. 이전 국악관현악곡이 진양조, 중모리, 굿거리 등 익숙한 장단을 주로 사용했다면 ‘신모듬’은 팔도 풍물과 농악의 다채로운 리듬을 끌어들여 새로운 매력을 각인시켰다. 국악관현악과 사물놀이가 뿜어내는 역동적인 신명에 관객은 열광했고, ‘신모듬’은 국악관현악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김덕수는 “사물놀이와 관현악의 앙상블을 만드는 데 혁명적 계기”라고, 박 지휘자는 “국악관현악의 패러다임을 바꾼 작품이다. 이후부터 곡을 쓰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이준호 작곡가의 생황 협주곡 ‘풍향’(1997)을 협연하는 생황 연주가 김효영. 국립극장 제공
변화는 이후 더 빨라졌다. 악기 개량이 활발해지며 ‘생황’처럼 덜 알려졌던 국악기가 독주 악기로 부상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전통 장단과 선율을 해체·재조합한 작곡이 등장했다. 이번 공연에서 연주되는 미국 작곡가 도널드 워맥의 산조가야금 협주곡 ‘흩어진 리듬’(2016)이 그런 흐름에 놓인다.
국악관현악 무대에 서양악기가 어우러지는 모습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마지막 곡인 최지혜의 첼로 협주곡 ‘미소’(2022)에서는 첼리스트 홍진호가 협연자로 무대에 선다.
“‘한국음악 같네’ 하면 안 되지, 한국음악이어야지”
국악 지휘자 박천지 동국대 교수가 7일 국립극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9.7. 정지윤 선임기자
지난 반세기 국악의 역사는 낯선 것을 끊임없이 품어 안으며 외연을 넓혀온 여정이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도 파트너로 맞이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지난 6월 AI 작곡가 ‘지음’과 협연한 관현악 공연 <공존>을 선보였다. 김덕수는 끊임없이 결합하고 변화하더라도 우리 음악의 본령은 ‘장단’에 있다고 강조했다.
“서양 오케스트라는 박자를 마디로 쪼개지만, 우리 음악은 말하듯 살아 숨 쉬는 장단의 호흡으로 굴러갑니다. ‘신모듬’에 나오는 전라도 오채길굿 장단만 해도 셋과 둘이 맞물리는 복합 리듬이에요. 이걸 서양식 3분박으로 기계적으로 쪼개 버리면 우리 맛은 다 죽습니다.”
박 지휘자 역시 “서양 오케스트라와 국악관현악의 지휘 기법 자체는 다르지 않다”며 “핵심은 지휘자가 우리의 장단과 호흡을 얼마나 체화하고 있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우리 음악에는 굿음악, 궁중음악, 풍물, 민요 등 수많은 장단이 녹아 있어요. 그런 것들을 얼마나 자양분으로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김덕수의 표현으로는 “한마디로 귀신이 돼야” 한단다. 지휘자와 악단, 협연자가 그 장단감을 체화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맛이 난다는 것이다.
김덕수는 “일본식 된장국(미소시루)을 끓여놓고 토종 된장이라 속일 수 없듯, 음악의 껍데기가 바뀌어도 우리 민족의 DNA인 ‘장단’과 ‘신명’의 뿌리가 살아 있어야 진짜 한국음악”이라고 강조했다.
박천지도 “장르 경계 없이 협업하는 건 좋은 변화지만, 왜 이 악기와 장단을 쓰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며 “단순히 국악기 소리를 덧입혔다고 해서 새로운 국악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박 지휘자는 이번 무대를 찾는 관객들에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조언을 남겼다.
“이번 공연은 지난 50년간 국악이 어떻게 벽을 깨고 진화해 왔는지 보여드리는 무대입니다. 원곡 음원이나 협연곡에 얽힌 이야기를 한 번만 귀에 담아두고 오시길 추천드려요. 완전히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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