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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16, 2026

“조선의 사대, 굴종 아닌 능동적 외교 전략”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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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순관영조도. 조선 선조 5년(1572년) 평안북도 의주에 있던 의순관(義順館)에서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광경을 그린 기록화이자 실경산수화. 너머북스 제공
의순관영조도. 조선 선조 5년(1572년) 평안북도 의주에 있던 의순관(義順館)에서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광경을 그린 기록화이자 실경산수화. 너머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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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事大). ‘약자가 강자를 섬긴다’는 뜻의 이 말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부정적 의미로 자주 쓰인다. 왕조를 지키기 위해 명나라에 지나치게 굴종했던 조선의 역사적 ‘기억’들이 각인된 탓이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 조금 다른 측면이 보인다. 중요한 것은 기록을 살필 때, “현대적 관점”이 아닌 당대의 “정치적, 문화적 목표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여겼던 문제들”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왕쓰샹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아시아언어학부 교수의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은 “조선 조정과 외교관들이 외교 의례(儀禮)와 수사(修辭)를 통해 명나라 제국의 이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용해 갔는지를” 담아낸 책이다. 지은이는 “중간 정도의 힘을 지닌” 국가였던 조선의 “기민한 능동성”을 강조하면서 명 제국을 요령 있게 대응한 조선의 외교사를 복원한다.

조선 외교의 능동성과 미묘함이 오랫동안 낮게 평가된 이유는 “‘사대’라는 다소 부정적인 고정관념”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사대가 아니었음에도, 제국 질서에서 조선의 위치를 재정의하고 “그 질서를 떠받치는 전통 속으로 스스로를 편입시키려는 노력”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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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 l 왕쓰샹 지음, 조일수 옮김, 너머북스, 3만3000원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 l 왕쓰샹 지음, 조일수 옮김, 너머북스, 3만3000원

1368년 명을 건국한 태조 홍무제는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시기, 한반도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다. 건국 직후인 1394년, 이성계를 황제의 신하이자 조선의 왕으로 책봉해 달라고 요청하자, 홍무제는 표문이 “모욕적인 문구로 가득 차 있다”면서 “이것이 과연 작은 자가 위대한 자를 섬기는 진심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관료는 물론 통역관, 관리 등 사신들 중 몇몇은 구금되었고, 심지어 처형된 이들도 있다. 정도전을 주범으로 지목해 명으로 압송할 것을 요구했고, 한편으로는 조선 사절단의 명나라 방문을 전면 금지했다.

조선 조정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여러 차례 사절단이 거부당했음에도 1397년까지 조선 조정은 “고려와 몽골 시기부터 이어온 연 3회 사행 관례가 여전히 타당하다”며 사절단 파견을 강행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조선 조정의 외교적 노력을 ‘사대’의 시선이 아닌 능동성의 한 측면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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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후 200년 동안 조선 사신단은 무려 1118차례나 명나라를 방문했다. 세차례 연례 사절단 외에도 황실과 왕실의 계승 문제, 국경 분쟁, 조공 헌상을 위한 사절단이 대부분이었다. 1452년 단종 책봉 문서를 가지고 온 명 사신단을 맞이한 사람은 숙부 수양대군이었다. 같은 해 수양은 사은사(謝恩使)로 직접 사절단을 이끌고 명에 가는데, 이는 “황제의 눈에 충신으로서의 인상을 강렬하게 심어준 계기”가 된다.

수양은 왕족 지위를 존중한 명 황실의 배려로 직접 “무릎을 꿇고 절하며” 황제의 선물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스스로 그렇게 하였다. 이는 “자신이 가진 제왕의 아우라가 명나라에 대한 충성심보다 더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한 행동이었다. 이러한 외교적 노력은 즉위 과정에서 빛났다. 세조는 사은사 시절부터 공들인 명나라 환관들과의 인연을 십분 활용해 내궁과 소통하면서 일을 원활케 했다. 지은이는 세조가 “제국의 메커니즘, 즉 제국 권위의 상징, 조선의 외교 체계, 그리고 명나라 사신들의 눈과 입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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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독특한 인물이 등장한다. 공녀 출신으로 훗날 선덕제(宣德帝)의 후궁이 된 한계란이다. 한계란의 오빠 한확은 세조의 측근으로, 책봉 감사 사절단 대표이기도 했다. 한계란은 “궁궐의 고위 여성으로서 가진 영향력”을 발휘해 오빠와 후손들을 도왔다. 책 곳곳에는 한계란 외에도 여러 공녀들이 곳곳에서 조선 외교에 도움을 준 사실을 적시한다.

너머북스 제공
너머북스 제공

조선 출신 환관들도 적잖은 공이 있다. 명이 조선으로 사절단을 파견할 때 “황위 계승과 관련한 ‘조(詔)’”를 전달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궁중 환관이 사절단 정사를 맡았다. 명이 16세기 초까지 사신으로 파견한 환관은 대개 “조선 출신”이었다. 이들은 “아동이나 청소년 시절에 조선 조정에 의해” 보내졌다. 조선의 관료들은 그들을 “인간 이하”의 부류로 취급했지만, 어쨌거나 “명나라와 조선 궁정 사이를 잇는 중요한 중개자 역할”을 했다. “조선 조정에 대한 충성심”이 여전했던 환관들은 “황제를 비롯한 내궁과 직접 소통하는 귀중한 통로”였다.

공녀와 환관들이 음지에서 활약했다면, 조선의 관료들은 시문을 짓고 외교 문서를 닦으면서, 한편으로는 의례로 치열하게 협상했다. 명은 “제국 권위의 우월성”을 무엇보다 중시했고, 조선 관료들은 심지어 왕의 옷과 가마마저도 논의하며 기민하게 대응했다. 성종 때 사신으로 왔던 동월(董越)은 명과 조선의 오랜 의례 분쟁을 겪은 당사자이면서도 “조선이 명의 동쪽 나라로서의 본분에 걸맞은 충성과 경의를 보여준 의례를 거행했다”고 기록했다.

의례만큼 흥미로운 것은 시, 즉 수사였다. 명의 사신들은 조선 관료가 참석한 자리에서는 꼭 문명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표시로 시를 지었다. 가만히 있을 조선 관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때마다 “화답 시를 지으면서 관련 기록은 더욱 풍성”해졌다. ‘황화집’(皇華集)은 1457년부터 1633년까지 문인들이 주도한 사행이 있을 때마다 편찬되었는데, 조선 관료들의 시부외교(詩賦外交)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지은이는 대학사(大學士)와 문인들이 중심이 된 ‘관료적 방식’의 이 외교 역사를, 조선과 명 두 나라의 “문치(文治)와 문덕(文德)의 이상을 상징”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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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이 방대한 사료를 훑는 이유는 하나다. 명과 조선이 종번(宗藩)의 관계였다는 그간의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당대의 사정과 맥락 속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을 추구하며 역사를 만들었다는 점을 지은이는 강조한다. 특히 조선은 명나라의 자의식마저 미묘하게 변형시키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흔한 한국사 지식과는 다른 지은이의 주장은 일견 반갑다. 조선이 무작정 사대한 나라가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주장을 오늘에 맞춰 일반화하면, 약소국이라고 해서 강대국의 의지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는다. 조선이 명 제국의 전통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애썼듯, 그 노력은 우리 세계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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