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문화의 문턱 낮춘 ACC의 ‘특별투어’
ACC 시각장애인 투어 - 3D 촉지도 체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문화예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 감각적 제약, 이동의 불편, 문화시설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문화 향유의 문턱으로 작용한다. 문화예술기관의 사회적 책임은 단순한 관람 기회 제공을 넘어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을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운영하는 ‘특별투어’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포용적 문화서비스 모델이다. ACC는 2년째 외국인과 시니어, 장애인 등 대상별 특성을 반영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26년에는 아시아 11개국 다국어 해설과 한국문화 체험, 감각 중심의 장애인 투어, 지역 청년예술인이 참여하는 시니어 맞춤형 프로그램 등을 통해 문화 접근성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올해 총 60회 투어를 진행해 1,260명이 참여했다.
이번 사업은 ESG 경영의 사회(S) 영역에서 강조하는 포용성, 문화 접근성, 이해관계자 참여를 공공 문화서비스 현장에서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문화적 배경과 신체적 조건,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접근의 장벽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이에 맞는 해설과 체험을 설계했다.
ACC 외국인초청투어 참가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11개 언어로 연결하고, 감각으로 경험하는 문화
외국인 초청 투어는 올해 40회 운영됐다. 영어·중국어·일본어·베트남어·몽골어·우즈베크어·키르기스어·모로코아랍어·스페인어·프랑스어 등 11개 언어로 ACC의 공간과 콘텐츠를 소개하고, 한국 전통 장신구 착용과 생활공예 체험, 전통 다과 등 한국의 생활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를 위해 양성한 다국어 해설사는 13명이다. 이들은 단순히 외국어로 안내하는 역할을 넘어 자신의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ACC를 해석하고 방문객과 소통한다. 특히 외국인 투어는 일반 방문객 뿐 아니라 문화예술 교류를 위해 ACC를 찾는 해외 창작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교류 채널이 됐다. 문화공간을 매개로 서로의 관점과 경험을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투어가 관광을 넘어 문화교류의 접점으로 확장된 것이다.
해설사로 활동한 일본인 다나카 모에씨는 ‘일본인 방문객이 편안하게 공간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화의 연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ACC 향기투어’는 향기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공간을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ACC의 주요 공간별 정체성을 담은 전용 향기를 개발하고, 공간 구조를 손으로 이해할 수 있는 3D 촉지도를 제작하는데 6개월 이상을 투입했다. 시각 중심의 관람 방식을 넘어 후각과 촉각, 청각을 활용해 문화공간을 새롭게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투어를 이끄는 해설사 역시 ACC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시각장애인 해설사 김동우 씨다.
한편, 투어에 참여한 시각장애인 C 씨는 ‘눈으로 보는 대신 향기와 이야기로 공간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척 새로웠다. 향기를 맡으니 공간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가 떠올랐고, 문화공간을 경험하는 방법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대상 프로그램은 수어통역과 공공미술 해설, 촉각·미각 체험을 결합했다. 코다(CODA·청각장애인 부모의 자녀) 가족을 위한 어린이 콘텐츠와 공연 체험도 마련했다.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는 장애 당사자와 협력기관의 의견을 반영해 동선과 해설을 검토했다. 접근성을 사후적으로 보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용자의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설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시니어의 문화 향유와 지역 예술인의 참여를 함께
시니어투어는 지역 청년 예술인 3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만담과 음악을 결합한 연극형 해설로 아시아문화박물관의 전시를 여행하듯 경험하도록 했다. 고령층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는 동시에 지역 예술인에게 활동 무대를 제공한다. 문화 접근성 확대와 지역 문화생태계 활성화를 별개의 과제가 아닌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서 연결한 셈이다.
투어에 참여한 75세 C씨는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문화공간에 찾아갈 기회가 줄었는데, 오늘은 여행을 온 것처럼 즐거웠다.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나누며 전시를 보니 어렵게 느껴졌던 아시아 문화가 한층 친근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일회성 초청을 넘어 지속 가능한 문화서비스로
ESG 관점에서 ACC 특별투어의 의의는 참여 인원과 횟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 사업의 차별점은 문화 접근의 장벽을 세분화하고, 대상별로 적합한 해설과 체험을 개발하며,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프로그램 설계와 운영에 참여하도록 했다는 데 있다.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동시에 다국어 해설 인력과 지역 예술인의 활동을 통해 문화서비스를 뒷받침하는 인적 기반도 넓히고 있다.
이는 문화예술기관의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함을 보여준다. 얼마나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는지 뿐 아니라, 기존 문화서비스에서 소외되기 쉬웠던 사람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참여했는지, 자신의 언어와 감각으로 콘텐츠를 이해했는지, 이용자의 의견이 실제 운영에 반영됐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ACC 특별투어는 문화예술 접근성을 부가적인 서비스가 아닌 프로그램의 핵심 가치로 다루고 있다. 문화의 문턱을 낮추는 이러한 시도는 공공 문화기관이 실천할 수 있는 ESG의 구체적인 모습이자, 포용적 문화서비스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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