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격차가 금융격차로? “취약계층 위한 금융 안전망 필요”[제27회 세계지식포럼]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이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금융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만큼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금융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AI가 신용평가와 금융상품 설계 등에 빠르게 활용되는 상황에서 기술 활용 능력과 데이터의 차이가 또 다른 금융 소외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9일 김은경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 겸 서민금융진흥원장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지식포럼 ‘금융기본권: 더 회복력 있는 사회로’ 세션에서 “디지털 격차가 있던 시대처럼 AI도 격차가 있을 것”이라며 “그 격차로 인해 금융의 격차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금융 격차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세션에는 개발경제학과 금융포용 분야의 세계적 학자인 딘 칼런 노스웨스턴대 교수도 참여했다. 이민환 인하대 교수가 사회를 맡아 AI 시대의 금융포용과 금융기본권,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정책 등을 놓고 두 연사와 대담을 진행했다.
김 위원장은 AI 기술의 발전 자체를 과도한 규제로 막기보다 혁신을 이어가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줄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산업이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과 연결돼 있는 만큼 규제만으로 산업의 발전을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AI 확산에 따른 일자리 감소가 새로운 금융 취약계층을 만들어낼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김 위원장은 AI로 청년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금융기본권을 활용해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회복위원회 역시 이런 과정에서 역할을 해야 양극화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금융기본권은 금융을 단순한 정책적 지원이나 시혜가 아닌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로 바라보자는 개념이다. 그는 금융이 전기와 수도처럼 현대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사회 인프라가 됐다고 설명했다. 소득이나 신용 수준에 따라 금융에서 배제될 경우 경제활동뿐 아니라 재기와 자립의 기회까지 제한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를 위해 취약계층 지원도 단순히 저금리 대출을 제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상담과 채무조정에서 시작해 보험, 대출, 저축까지 연계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자립할 수 있는 금융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기에 필요한 시드머니를 빌려주되 곧바로 상환하도록 하기보다 장기간에 걸쳐 갚을 수 있도록 하고, 성실상환자에게는 저축을 지원해 자산 형성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칼런 교수 역시 AI가 금융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취약계층을 배제할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AI가 기회이자 동시에 위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하면 개인에게 맞는 금융상품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더 나은 금융 조언과 안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알고리즘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칼런 교수는 최근 머신러닝을 활용해 금융회사가 수익 극대화 관점에서 대출을 최적화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분석한 연구를 소개했다. 그는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할 경우 “여성에게는 대출을 덜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덜 한다”고 설명했다. AI가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인 동시에 기존 금융시장의 격차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AI가 신용의 가격과 공급 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을 규제 당국이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칼런 교수는 데이터가 금융기본권의 목표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AI와 머신러닝 시스템이 대출 가격과 공급을 어떻게 조정하는지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대할 만한 점이 매우 크지만, 좋은 일은 일어나고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이 과정에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AI가 가져올 일자리 대체 문제는 금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재분배 논의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칼런 교수는 “그 문제는 사실 금융을 조금 넘어서는 이슈”라며 “재분배의 문제이고, 보편적 기본소득의 문제”라고 말했다. AI로 국가 내부는 물론 국가 간 불평등까지 심화될 경우 사회적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재분배 정책의 필요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도 재분배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이를 ‘리스크의 배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취약계층이 위기에 빠졌을 때 보험으로 위험을 줄이고, 재기 단계에서는 대출을 통해 시드머니를 공급한 뒤 저축과 자산 형성까지 지원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금융을 시혜가 아닌 권리로, 국민을 지원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 확산으로 금융 접근성의 격차가 커질 가능성에 대비해 취약계층의 재기와 자산 형성까지 뒷받침하는 금융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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