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눌러온 중국, 다시 원유 사나…100달러 이후 향방 가를 새 변수
지난 7월 21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선박 위치를 알려주는 마린 트래픽(www.marinetraffic.com) 사이트의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중동발 공급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상승세가 얼마나 이어질지를 가를 핵심 변수로 중국이 떠오르고 있다. 미·이란 전쟁 이후 원유 수입을 대폭 줄이며 가격 충격을 완화해온 중국이 최근 다시 매수를 늘리는 조짐을 보이면서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아직 안정세지만,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정유업계의 원유 조달 부담이 커질 수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지난 9일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배럴당 104.6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주간 기준으로는 9% 가까이 올랐다. 친이란 후티 반군이 홍해 남쪽 입구이자 주요 원유 수송로인 바브엘만데브 해협 일대에서 장악력을 키운 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가 동서 송유관 가동을 일시 중단하는 등 공급 불안이 끊이지 않은 탓이다.
이런 가운데 시장의 이목은 이제 중국에 쏠리고 있다.
미·이란 전쟁 이후 중국은 해상 원유 수입을 하루 300만~500만배럴가량 줄이며 가격 충격을 완화하는 이른바 ‘스윙 소비자’ 역할을 해왔다. 전쟁 발발 뒤 급등했던 브렌트유가 이후 70~90달러대로 내려온 데에는 종전 기대, 비중동 산유국의 증산과 함께 중국의 수입 급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이 지갑을 닫은 것이 국제유가 상승 압력을 완화한 요인 중 하나였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의 태도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밥 맥널리 래피던에너지그룹 사장은 지난 8일 CNBC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미·이란 전쟁)가 시작된 이후 원유 가격을 억눌러온 가장 큰 요인은 중국의 극단적인 다이어트였다”면서 “이제 중국은 다이어트에서 벗어나 목마르고 배고픈 상태이며, 가격을 높여가며 원유를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원유 배고픔’을 먼저 드러낸 쪽은 이른바 ‘찻주전자’로 불리는 독립정유사들이다. 산둥성 일대에 몰려 있는 ‘찻주전자’들은 중국 전체 원유 수입량의 5분의 1가량을 담당한다. 원유를 사서 정제한 뒤 얼마나 이익을 남길 수 있는지에 민감해 가격 변화에 빠르게 움직이는 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들은 최근 몇 주간 서아프리카와 캐나다, 남미산 원유를 2000만배럴 넘게 사들였다.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도 최근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크게 늘려, 극동에서 나오는 원유 10월 인도분을 하루 약 24만~35만배럴 규모로 사들인 것으로 추산됐다. 유가 상승 국면임에도 국영·민영 정유사들이 잇따라 원유 확보에 나선 것이다.
다만 중국의 원유 매수세가 전쟁 이전 수준까지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원자재 데이터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7월 하루 약 700만배럴이었던 중국의 해상 원유 수입은 향후 850만~900만배럴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 전 하루 약 1000만배럴에는 못 미친다.
그럼에도 시장이 중국을 주시하는 것은 중동발 공급 불안에 더해 중국의 원유 구매 수준에 따라 유가 상승세의 지속 여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그룹 ING는 “중국의 원유 구매 회복세가 계속된다면 공급 차질의 영향을 증폭시켜 가격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며 “반대로 중국의 수입이 다시 줄어들 경우 시장의 상승세를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국제유가 급등과 달리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아직 안정세다. 9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17주 연속 하락했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 변동이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2~3주의 시차가 있는 데다, 정부가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인 석유제품 최고가격제(정유사 공급가 기준 휘발유 ℓ당 1784원)도 가격 상승 폭을 제한하고 있다. 국내 원유 도입량도 여름 들어 이미 회복됐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약 6450만배럴까지 줄었던 원유 도입량은 7월 9318만배럴로 늘었다.
다만 중동발 공급 불안이 계속되고 중국까지 원유 매수에 적극 나서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정유사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쟁 초기에는 호르무즈 해협만 문제였다면 지금은 홍해 쪽까지 수송 불안이 커져 상황이 더 나빠졌다”며 “미국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사태 봉합에 나설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여기에 중국까지 매수세를 확대하면 국제유가 자체가 오를 뿐 아니라, 우리와 수입처가 겹칠 경우 운임·보험료 등 조달 비용도 추가로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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