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터무니 없는 혼합진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급여 의약품·치료재료의 가격·유통 실태와 고가 비급여로 진료비가 불어난 환자 사례를 공개했다. 경실련 제공
한 남성이 전기톱에 손가락 두 개가 잘렸다. 중지를 붙이는 데 6만달러(약 8000만원), 약지는 1만2000달러(약 1600만원)가 든다. 남성은 값이 싼 약지만 수술하고, 잘린 중지는 버린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에 나오는 내용이다. 미국에선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아프면 큰일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이 있는 우리로선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최근 ‘인중 봉합 수술에 193만원 들었다’는 기사를 읽고 오래전 영화가 떠올랐다. A씨는 지난 7월 인중이 찢어져 한 의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1㎝도 안 되는 부위를 꿰매는 데 192만9700원, 이 가운데 비급여 비용이 186만8500원이다. 이 황당한 사례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5일 ‘비급여 가격 실태 및 환자 피해 사례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한 것이다. 경실련이 공공병원에 질의한 결과 이 환자의 예상 진료비는 15만~20만원, 환자 부담액은 4만5000~6만원 수준이었다. 어떤 치료를 했기에 32~43배나 비싼 비용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
비싼 진료비의 비밀은 급여에 비급여를 끼워넣는 ‘혼합진료’에 있다. 가령 이 의원에선 1병에 6만원인 주사제 리포라제주를 77만원으로 책정, 절반을 썼다며 38만5000원을 청구했다. 지혈보조제는 4177원인 급여 제품 대신 비급여 제품을 쓰고 10만원을 청구해 진료비를 올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혼합진료는 선진국에서는 엄격하게 금지된다. 그러나 한국은 건강보험 초창기 재정이 충분하지 않아 이를 허용했다. 여기에 진료비는 원가에 못 미치게 설계되다보니 병의원은 비급여를 늘려 손해를 벌충한다. 경실련은 정부에 혼합진료 제한, 비급여 내역 보고 의무화 등을 요구했다. 당장 혼합진료를 금지하면 된다 싶지만, 중증·희귀질환 등 건보에서 보장해야 할 항목인데도 비급여인 경우들이 있어 간단치 않다. 그래서 건보 보장성이 강화돼야 하는데, 보험료 인상 없인 힘들다.
<식코> 개봉 당시 무어 감독은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 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매달 실손보험에 돈을 내면서도 건보료 인상은 달갑지 않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우리를 위해 건보 보장을 늘리는 것,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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