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의 ‘김여정 입장’ 왜 중동·우크라 훑고, 북-미로 마침표 찍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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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한-미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가 전격 축소되자 지난 19일 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주요 국제문제들에 대한 립(입)장’을 발표했다.
김여정 부장은 이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연습 축소 지시에 대해 “평할 가치도 없고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며 훈련의 규모나 기간이 줄어들어도 대조선 적대 정책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서는 “의연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대부분 이 대목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런데 ‘김여정 입장’은 한-미 연합연습 축소와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안보 위기를 가증시키고 있는 주요 국제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길게 표명한다. 김여정 입장은 모두 2960자인데, 한-미 연합연습과 트럼프 대통령 관련 내용은 1231자였다. 의도적으로 북-미 관계를 광범위한 지역 및 글로벌 안보 문제 중 하나로 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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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바로 언급하지 않았다. 입장의 첫 문장은 이렇다. “최근 예측불가능성과 복잡다단함을 더욱 뚜렷이 하고있는 국제 정세 흐름은 세계 각곳에서 지정학적 위기를 증폭시키고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김여정 입장은 “세계의 충돌과 혼란상을 대변하는 축도라고 볼 수 있는 중동지역”을 시작으로 “무장분쟁의 장기화 국면이 보다 엄중한 단계”로 들어서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 사이의 제반 협력”으로 표현한 북-러 군사협력, “일본의 무분별한 군사적 팽창 시도” 등에 대해 조목조목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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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국제 문제에 대해 김 부장은 “우리는 국가의 안전리(이)익과 지역안전환경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 미국으로부터 오고 있다는 변함없는 현실에 립(입)각하여 강력한 힘의 립장에서 위험을 제거하고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근본적인 접근 방식을 항시 유지할 것”이란 기본 입장을 정리하고 나서, 한-미 연합연습과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했다.
김 부장은 북-미 관계를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유라시아 안보 구도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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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평양은 현 국제 정세를 하나의 연결된 전장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입장 발표 첫 부분부터 중동, 우크라이나, 한반도, 일본을 한 흐름으로 묶어놓았다. 미국과 서방의 패권적 군사행동이 중동, 유럽, 아시아·태평양에서 동시에 나타난다는 인식이고 을지 자유의 방패, 러시아, 일본, 러시아 추가 파병이 서로 다른 사안처럼 보여도 조선의 전략 인식하에서는 결합해 보고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고 했다.
김여정 입장은 ‘다극세계 건설을 주도하는 핵 보유 강국이자 전략국가로서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탈냉전 이후 미국 중심 일극 질서를 비판하고 다극화 흐름을 강조해왔으며 최근 다극세계 건설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열린 노동당 제9차 당대회에서 “공평하고 정의로운 다극세계 건설이 더욱 추동될 것”이라며 “바로 그 중심에 우리 국가가 서 있다”는 대외전략을 밝힌 바 있다.

레이철 민영 리 미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20일(현지시각)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쓴 ‘북-미 관계 향방’에서 “김여정의 ‘입장’에서 눈에 띄는 측면은 중동에서 시작해 유럽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일본, 한-미 연합연습을 거론한 뒤 북-미 관계로 마무리하는 폭넓은 틀을 제시했다는 점”이라며 “미국과 북한 관계를 더 넓은 전략적 맥락에 배치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를 더 큰 지역적 및 글로벌 전략적 경쟁의 한 요소로 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것은 김정은이 트럼프를 다시 만날 의향이 있는지 여부를 넘어 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더 이상 북한에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처럼) 동일한 전략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트럼프-김정은 외교가 지향하는 목적과 가능한 범위는 상당히 좁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수 있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여전히 협상 테이블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 있게 만들기에 충분한 공통점이 있느냐는 것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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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입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때보다 더 넓은 전략적 틀 내에서 미국에 접근할 뜻을 강하게 드러냈고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촉구하며 공을 미국으로 넘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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