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헌재 대치 격화…쿠데타’ 공방 속 헌정 위기 확산
31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헌법재판소 경내에서 경찰관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폴란드 헌법재판소의 운영 주도권을 둘러싸고 도날트 투스크 총리가 이끄는 친유럽 중도 성향 정부와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의 우파 민족주의 야권이 정면 충돌했다. 헌법재판소장 직무정지와 대통령 급거 귀국 등 이례적 양상이 이어지며 정국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투스크 총리는 이날 밤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타협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치국가에서는 정치인이 법원이나 헌재에 들어가 명령을 내리거나 판사들을 위협할 수 없다. 대통령이라 해도 마찬가지”라며 나브로츠키 대통령을 직격했다.
투스크 총리 발언은 충돌 사태에도 정부의 헌재 주도권 강화 조치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양측은 전날 밤 극단적으로 충돌했다. 현 정부에서 선출된 안나 코르빈-피오트로프스카 헌법재판관이 보그단 슈비에츠코프스키 헌재소장 등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자신이 재판소를 운영하게 됐다고 밝히면서 충돌이 시작됐다. 슈비에츠코프스키 소장은 전임 우파 정부가 임명한 인사다.
슈비에츠코프스키 소장과 우파 민족주의 법과정의당(PiS) 관계자들은 즉시 투스크 총리 측이 “쿠데타”를 벌인다고 비난하며 헌재로 향했다. 순방길에 올랐던 나브로츠키 대통령도 스페인 상공에서 비행기를 돌려 귀국한 뒤 헌재로 향했다. 물리적 충돌 속에 나브로츠키 대통령과 슈비에츠코프스키 소장이 헌재에 진입했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일단 물러났다.
대치는 계속되고 있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31일 발표한 성명에서 “헌법기관이 무력으로 장악됐다”면서 헌정 질서가 침해됐다고 밝혔다. 그의 측근인 즈비그니에프 보구츠키 대통령실장은 투스크 총리의 대국민 연설 직후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며 총리가 폴란드와 헌재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는 친유럽연합(EU) 중도 세력과 우파 민족주의 세력 등 두 진영의 뿌리깊은 갈등이 헌재 운영권을 계기로 터져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2023년 총선에서 투스크 총리가 이끄는 시민연합(KO)이 승리하며 PiS가 야당으로 밀려났지만, 헌재는 PiS의 8년 집권기에 임명된 인사들이 주도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이때문에 EU 기준보다 국내법을 우선하고, 보수적 색채의 판단을 하는 우파 성향 재판관들의 결정을 두고 정부와 마찰이 계속돼왔다.
투스크 정부가 주도하는 의회는 지난 3월 헌법재판관 6명을 새로 선출해 구성을 바꾸려 했으나 반발에 부딪혔다. 임명 과정에서 대통령이 선서를 받아야 하는데,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이 중 2명의 선서만 직접 받으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표했다. 기존 헌재 지도부도 나머지 4명의 헌법재판관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업무 참여를 막아왔다. 헌재소장 직무 정지를 선언한 안나 코르빈-피오트로프스카 재판관이 업무 배제된 4명 중 한 명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차기 총선과 맞물려 갈등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 내 극우 확장 및 중도 세력 축소 흐름과 맞물려 파장이 확산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갈등의 향방이 EU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며 “스페인과 프랑스 등 총선을 앞둔 여러 국가에서도 극우 정당의 세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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