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중국 변수’를 놓치고 있다
9월 말 미·중 정상회담이 끝났다. 언론은 ‘맹탕 회담’ ‘전술적 휴전’ 등으로 평가했지만, 달라진 미·중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11년 만에 미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대만 문제는 더 이상 협상 의제가 아닌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미·중관계를 미국이 주장한 ‘전략 경쟁’이 아니라 자국의 ‘건설적 전략 안정’ 프레임으로 재편했으며, 인공지능(AI) 규제에 부정적인 미국을 겨냥해 인공지능을 인간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중국은 단극 체제 쇠퇴, 자유주의 국제질서 약화, 세력권 중심의 국제질서 대두 속에서 다자주의, 유엔 체제, 기후변화, 개방적 무역질서를 제기하면서 다극 질서를 모색하고 있는 한편, 미국과 체제·제도·기술·이념 전반에 걸친 새로운 담론경쟁을 시작했다. 특히 자국의 주변 지역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대한 외교력을 집중적으로 투사하고 있다. 지난 8월 말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와 9월 인도 뉴델리에서 각각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열렸다. 중국은 이 자리에서 유라시아 지역의 연결성 강화, 공정한 국제질서 구축, 나아가 탈달러화 논의를 주도했다. 이것은 향후 미·중 중첩 지대에서 전략적 우위를 선점하려는 심모원려의 일환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러시아, 그리고 한동안 소원했던 북한과의 전략적 협력을 한층 고도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대미·대유럽 관계가 전후에도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중국이라는 기회의 창을 열 수밖에 없으며, 북한도 경제도약을 통한 집권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는 북·중 경제협력이 필요충분조건이다. 실제로 최근 다녀온 북·중, 북·러, 중·러 국경에서는 대북 제재가 크게 이완되고 있었다.
이처럼 변화된 중국의 위상은 한·중관계에도 전이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중관계는 빠르게 복원됐다. 두 차례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이 과정에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건설적 역할 의지를 밝혔다. 비록 반도체 착시효과가 있지만 양국의 교역 규모도 늘었고, 정부와 민간의 노력으로 상호 부정적 인식도 일부 개선됐다. 이는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동시에 추진한 정책 전환의 성과였다. 그러나 동맹 관리, 통상 협상,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북·미 정상회담을 국익이 걸린 최대 현안으로 보고 여기에 올인하면서,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복합적으로 읽어낼 여유를 잃었다. 그 결과 한·중관계 동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으며, 양국 간 정책 인식 차이도 더욱 벌어졌다.
그 기저에는 변화된 중국의 위상에 맞게 우리 외교를 동태적으로 조정하지 못한 탓이 크다. 실제로 상호 방문을 통한 고위급 전략 소통은 줄었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국 변수를 깊이 있게 다루는 모습도 쉽게 찾기 어렵다. 중국 변수에 주목하자는 것은 단순한 친중, 반중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국가 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접근하기 위한 일종의 예방외교 일환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요청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의 우리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대만 문제에 대한 메시지 혼선도 한몫했다. 예컨대 제81차 유엔총회를 앞두고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우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대만해협의 현상을 변경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에 쉽게 동의했다. 그러나 정작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는 추가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개발 중단과 보상을 연동하는 과감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의 차이가 아니라, 외교 철학과 비전, 그리고 노선의 문제다. 중국도 이러한 메시지 혼선을 보면서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의 수위를 가늠하고 있다.
외교에는 상대가 있지만, 그 상대는 복수로 존재한다. 외교·안보 부처는 미국과 함께 달라진 중국을 동시에 고려한 외교 전략을 짤 수 있어야 한다. 한·미 현안이 해결된다고 해서 중국 문제가 자동으로 풀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와 중국 이슈가 정책 공론장에 깊이 스며들 수 있는 집단지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외교·안보 부처 간의 장벽을 과감히 허물어 분업과 협업을 통한 전략적 동일체를 보여주어야 한다. 바깥에서는 내부가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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