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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October 7, 2026

음악으로 일기를 쓰던 날의 ‘푸른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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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글이 아닌 ‘콩나물’로 쓰다니! 음악은 언어로구나, 그 말귀를 못 알아먹는 나는 문맹이로구나,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상당히 부끄러운 일 아닌가. 가까이 가보자,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떤 말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빨 가는 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읽으며, 초발심을 내는 이 상극의 부조화 속에서, 그것은 작은 돈오(頓悟)였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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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은 금수저였다. 조부는 유대인 철학자였고, 아버지는 독일 함부르크의 부유한 은행가였다. 그의 음악이 밝고 명쾌하며, 색채적이고 우아한 낭만성을 띠는 것은 신산(辛酸)하지 않았던 가정형편 덕이다. 스무 살 때부터 ‘무언가’를 작곡했다. 말이 없는 노래, ‘무언가’(無言歌)는 대개 2~3분, 피아노 소품 48곡의 모음이다. 해마나 봄이 되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봄노래’, ‘달콤한 추억’ ‘흰 구름’ ‘오월의 미풍’ ‘베네치아의 뱃노래’ 등 귀에 익은 곡들이 많다. 자연 속에서, 혹은 여행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느낌들, 뮤즈가 다녀가는 순간들, 순하고 부드럽고 말없이 건네는 시(詩) 같다. 그는 1830년 누이 파니 멘델스존에게 편지를 썼다. 짤막한 글 뒤에 길게 붙은 것은 악보였다. 그가 평생 써 내려 간 ‘무언가’는 그런 조각들의 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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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오래전 어느 치과 대기실 탁자 위에 놓인 음악잡지에서, ‘위잉~위잉~’거리는 기계음을 들으며 내가 읽은 내용이다. 아는 지휘자라고는 ‘카라얀’이 전부이던 시절, 30년 다 된 얘기인데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거기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청년의 감성이 오월의 바람 속에서 감흥을 일으키며, 무언가를 적어 가족에게 띄우는 일은 하등 이상 할 것 없다. 그런데 편지를 글이 아닌 ‘콩나물’로 쓰다니! 이 경이로운 일, 쓴 사람은 누구이고 이것을 알아먹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음악은 언어로구나, 그 말귀를 못 알아먹는 나는 문맹이로구나,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상당히 부끄러운 일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가보자,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떤 말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빨 가는 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읽으며, 초발심을 내는 이 상극의 부조화 속에서, 그것은 작은 돈오(頓悟)였다.

작곡가 신동일, 1965년 서울 태생, 낯빛에 잡색이 없이 맑다. 아버지는 국어, 어머니는 미술 선생이었다. 집에는 늘 클래식이 흘렀다. 음악은 새소리처럼 원래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누가 지었다는 얘기를 초등 3학년 때 처음 들었다. 나도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음악책에는 음표에 계이름이 적혀 있고 그 밑에 가사가 나온다. 그는 계명을 통으로 외웠다. 피아노 ‘체르니’를 배울 때도 거의 계명을 외워서 쳤다. 그냥 외운 것이 아니라 음의 고저장단에 맞춰 악보 안 보고 콧노래 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 덕에 뛰어난 상대음감이 되었다. 피아노가 쳐주는 한 음을 듣고 다른 계명을 맞추는 사람이 상대음감이고,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그냥 맞추는 사람이 절대음감이다. 둘은 우열의 관계는 아니나, 상대음감이 노력의 산물인 데 비해 절대음감은 생이지지의 영역이다. 후자가 음대 한 학년에 1~2명꼴은 있다고 한다. 그는 첫 작품으로 교향곡을 쓰기 위해 오선지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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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시작은 대곡으로 하잖아요. 장난감에서 영감을 받아 교향곡을 쓰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때가 10살, 모차르트가 8살에 교향곡 1번을 썼으니, 내가 ‘신동일’이지, ‘신동’은 아니구나, 알았죠. 그러다가 6학년 때 피아노 ‘미뉴에트’를 썼어요. 악보는 잃어버렸는데 머릿속에는 남아 있죠. 아버지가 그것을 보시고는 어느 날 내 손을 끌고 누구 집으로 데려갔어요.”

그가 아버지의 지인, 유행웅 대구가톨릭대 작곡과 교수였다. 그는 첫 스승 밑에서 선율과 리듬과 화성학, 악곡의 구조 등 작곡의 기초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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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 작곡과 입시가 여섯 과목이라 한다. 처음 본 악보로 반주 없이 노래하는 시창, 처음 들은 노래를 악보로 적어내는 청음, 피아노 실기, 하나의 선율 위에 4성부 화음을 채워 넣는 화성학, 피아노로 즉석 조바꿈 연주하는 건반화성, 그리고 짧은 선율 한 소절을 받아 곡을 완성하는 작곡, 이것은 시제를 받아 시를 짓는 백일장 같다. 시창 시험 볼 때 감독관이 노래 종지에 끝 음을 피아노로 쳐 주는데 신동일은 그 끝 음을 정확히 부르고, 1984년 서울대 작곡과에 들어갔다.

작곡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내 보여준다. 오선을 긋고, 그 위에 음표를 그린 두툼한 수첩, 어떤 것은 한두 마디 정도의 짧은 것들, 또는 절을 이루는 조금 긴 것들, 두서없이 적혀 있다.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음이 갑자기 일어나죠. 머뭇거리면 바로 사라져요. 그 순간을 잡아 놓은 것, 흔히 말하는 동기죠. 슈베르트 ‘악흥의 순간’ 같은 것, 슈만이 ‘악흥의 순간’을 듣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느 날 저녁 우연히 쓰인 것 같다’고 했다는, 그런 것과 비슷한 거죠. 음악의 씨앗이라 할까요. 그것이 변주되고 소나타 협주곡 교향곡의 주제로 발전하는 모티브가 되는 거죠.” 말하자면 종자를 잘 번식해서 죽도 쑤고 밥도 짓고 떡도 빚는 그런 거냐고 물었더니, 웃는다.

1989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현악기 전문지 ‘스트링스’ 공모전에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를 출품, 당선되어 잡지 게재료 150달러를 받았다. 곡을 써서 벌어들인 첫 수입, 비로소 ‘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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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졸업작품으로 ‘번역된 3개의 향가’를 내놓았다. 발표회 영상을 보면, ‘찬기파랑가’ ‘제망매가’ ‘모죽지랑가’, 신라 향가 3곡이 뉴욕에서 영어로, 첼로의 반주 속에 소프라노(박나연)의 노래로 흘러나오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또 한 곡은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 ‘산조를 생각하며’, 눈 감고 들어보면 바이올린인지 아쟁 소리인지, 국악인지 양악인지, 고전음악인지 현대음악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 발표회는 ‘동양의 정서와 서양의 표현 기법을 결합하려는 작곡가의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미국에서 장르도 없고 경계도 없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서 있었던 음악의 벽을 허물고, 1996년 자유인으로 귀국했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음악가로 헝가리 출신 ‘버르토크 벨러’(1881~1945, 미국식 이름 ‘벨라 바르톡’)를 꼽았다. 현대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중부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민요 수집에 평생을 바쳐 1만3천여 선율을 채록한, 음악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되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버르토크 이전에, 집시 음악이나 헝가리 음악을 다룬 브람스나 리스트 같은 경우는 서양식 박자의 틀 안에 재해석을 해서 정돈된 형태로 만들었죠. 근데 우리 토속 민요도 그렇지만 박자가 조금 남거나, 호흡하느라 조금 모자라거나, 그렇거든요. 버르토크는 그게 틀린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예컨대 2/4박자는 마디마다 8분음표가 4개씩 이어지지요. 근데 갑자기 6개가 되는 3/4박자로 바뀌고, 또 3개로 줄어드는 3/8박자로, 5/8박자로 가다가, 다시 원래 박자로 복귀하는(미크로코스모스), 쉽게 말하면 혼란의 연속입니다. 전방위적인 불협화음, 불규칙한 리듬, 모호한 조성, 기존의 틀을 깨는 거친 음향 때문에 뭐 이런 무질서한 악보가 있나 하지요. 그런데 원래 노래를 그렇게 부른 거잖아요? 좀 빨라지다가 늘어지기도 하고, 그것을 가져와 내게 맞춘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다가갔다고 할까요? 현대 음악치고는 굉장히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거여서 그런 게 되게 신기했어요.”

정해진 ‘박자’보다 사람의 ‘호흡’을 중시한 버르토크의 음악에 임하는 자세를 그는 존경한다고 했다.

매일 음악 노트 한 페이지씩,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쉬운 곡들로, 대학 시절 어느 겨울에 문득 음악으로 일기를 써 볼까, 그런 생각을 했다. 며칠 쓰다가 일기는 한정 없이 늘어졌지만, 그 다짐이 피아노 소품을 손에서 놓지 않도록 채근했다. 1997년 귀국 이듬해, 그는 음반 ‘푸른 자전거’(난장뮤직, 연주 한정희)를 내놓는다. ‘나의 오래된 꿈 하나’ ‘어떤 하루’ ‘날개짓 하는 작은 새들에게’ ‘서투른 걸음으로’ ‘언덕 위에서’ ‘꿈꾸는 푸른 자전거’ 등 피아노 소품 10곡 모음이다. 말이 없는 노래들, 그 정서와 여정이 멘델스존의 ‘무언가’와 닮았다. 이 음반이 우리나라 최초의 뉴에이지 피아노 솔로 앨범이다. 연주회도 열리고, 언론에서 ‘순수’ ‘동심’ ‘수채화’ 등의 수식어를 붙였다. 방송 배경 음악 등으로 나오다가, 김창완의 음악프로 ‘로고송’이 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그는 “‘푸른 자전거’는 제가 이 땅에서 작곡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이라고 했다.

그리고 2002년 ‘노란 우산’, 화가 류재수가 그림을 그리고 신동일이 피아노곡을 담은, 글자는 없고 그림 속에 음악이 흐르는 이 책이 ‘뉴욕타임스 올해의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된다.

이광이 |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그쳐본 적이 없다’ 목포 김현문학관에 걸린 이 글귀를 좋아한다. 시와 소설을 동경했으나, 대개는 길을 잃고 말아 그 언저리에서 산문과 잡글을 쓴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읽다가 막히면 ‘쓴 사람도 있는데 읽지도 못하냐?’면서 계속 읽는다. 해학이 있는 글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스님과 철학자’(정리), ‘절절시시’, 산문집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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