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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25, 2026

도시를 걷다, 나를 만나다…디자인이 건네는 도시의 위로 [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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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하면 떠오르는 첫인상입니다. 여행지에서도 이 이미지는 유효합니다. 유독 한국인들은 유명 여행지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풍경을 훑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보다 많이 여러 곳을 다닐 수 있다는 장점 뒤에는 현지에서만 볼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그들만의 삶을 놓칠 수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친 간판과 골목에서, 뜻 모를 표식 등에서 일반적인 여행과 다른 깊은 여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진 = 언스플래쉬

사진 = 언스플래쉬

김지원 작가의 ‘도시 감각’은 영국 런던의 지하철 노선도와 보행자 안내 표지판, 빨간 우체통, 블루 플라크 같은 사소한 사물에서 도시의 시간과 사람을 향한 배려를 발견합니다.

저자는 디자인의 눈으로 도시와 공간을 다시 읽는 여행을 전합니다. 좋은 공간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사람의 생활과 기억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책은 말합니다.

도시 감각
김지원 ㅣ 위즈덤하우스

사진 = 위즈덤하우스

사진 = 위즈덤하우스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달리는 자동차 창문 너머로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걸음을 늦추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여행을 즐기는 방식도 비슷하다. 보통 여행지에 도착하면 유명한 명소부터 찾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문득 떠오르는 것은 사소한 장면일 때가 많다.

돌이켜보면 여행의 묘미는 얼마나 많은 곳을 보았느냐보다 그 도시의 일상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았느냐에 있는지도 모른다. 산업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연구자인 김지원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도시의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책 ‘도시 감각‘을 출간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영국 런던을 오가며 발견한 사물과 공간,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통해 도시를 읽는 다섯 가지 감각을 제안한다. 길 위의 감각에서 손 안의 감각, 골목과 동네의 감각, 공동의 감각, 열린 예술의 감각으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사진 = 언스플래쉬

사진 = 언스플래쉬

저자가 먼저 주목한 것은 런던의 지하철 노선도와 노란색 보행자 안내 표지판이다. 1931년 런던 지하철의 전기 설계사 해리 벡이 고안한 노선도는 실제 지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역과 역 사이의 연결 관계를 명확하게 표현했다. 지리적 정확성보다 이용자의 편의를 앞세운 발상의 전환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지하철 노선도의 기본 형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행자 안내 체계인 ‘레지블 런던’ 역시 흥미롭다. 주변의 주요 지점과 이동 경로를 중심으로 정보를 제공해 낯선 여행자도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돕는다. 좋은 디자인은 단순히 보기 좋은 형태가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을 편리하게 하고 불안을 덜어주는 장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 = 언스플래쉬

사진 = 언스플래쉬

런던 거리의 빨간 우체통도 빼놓을 수 없다.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대에도 우체통은 거리 곳곳에서 제자리를 지킨다. 저자는 이를 단순히 낡은 사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억과 애정이 쌓인 디자인 아이콘이자 도시의 시간을 이어주는 존재로 읽어낸다.

역사적 인물이 살았거나 활동했던 건물에 붙이는 파란색 명판 ‘블루 플라크’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건물 외벽의 작은 표식 하나가 그곳에 깃든 삶과 역사를 들려준다.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이미 존재하는 것에 담긴 시간을 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도시의 감각은 거리뿐 아니라 손안의 사물에서도 발견된다. 영국인에게 차 한 잔은 목을 축이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생활의 의식이다. 찻잔에는 문화와 역사가 담기고 때로는 유머도 깃든다.

사진 = 언스플래쉬

사진 = 언스플래쉬

주방용품 브랜드 조셉조셉은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도시인의 생활에 주목한다. 수납 효율을 높이고 사용법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조리도구는 디자인이 사람의 시간과 공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전한다. 펭귄 북스의 문고본 디자인 역시 책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문화의 문턱을 낮춘 사례다.

저자의 시선은 런던 동부 쇼디치의 골목과 상점으로도 향한다. 다양한 문화와 창작 에너지가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상점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를 넘어 새로운 취향과 아이디어가 교환되는 공간이 된다. 오래된 가게의 변천사를 기록하는 작업은 오늘의 동네가 수많은 사람의 삶과 시간이 쌓여 만들어졌음을 일깨운다.

도시의 매력은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오래된 공간을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고 그곳에서 이어져온 관계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과거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재생한 테이트 모던은 산업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문화 공간으로 되살렸다. 공원과 공동 정원, 창작자들의 작업실 역시 시민이 머물고 참여하며 도시와 관계를 맺는 장소로 거듭난다.

사진 = 언스플래쉬

사진 = 언스플래쉬

책이 궁극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은 도시는 반드시 크고 화려한 도시가 아니다. 누구나 길을 찾기 쉽고, 잠시 쉬어갈 곳이 있으며, 오래된 기억이 존중받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도시다. 그 안에서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어쩌면 다른 도시의 매력만이 아닐 것이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동네의 표지판과 오래된 가게, 작은 공원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일도 여행의 연장선이다.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보고, 대형 마트 대신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보고, 번화한 대로 대신 익숙한 골목에서 잠시 발걸음을 늦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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