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뭔데]증권사 리포트 97%는 “사라”…익명 보고서가 효과 있을까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상승은 멈추지 않는다.” “조정은 매수의 기회.” “가치는 식지 않았다.”
국내 일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대장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매수’ 의견을 제시하며 내놓은 리포트(보고서) 제목들입니다.
두 종목 주가는 지난 6월 말을 기점으로 큰 폭의 조정을 받았고 반도체 업황의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우려도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주가 급락에 ‘본전’도 찾지 못한 개인 투자자들이 넘쳐나지만 국내 증권사 대다수는 최근까지 두 종목에 ‘매수’ 의견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대장주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국내 증권사 리포트는 오랫동안 매수 의견에 편중돼온 게 사실입니다. 기업의 주가 하락 가능성을 경고하는 ‘매도’ 의견은 찾아보기 어렵고, ‘중립’ 의견을 내면 시장에서 이를 매도로 받아들이는 정도입니다. 중립 의견을 담은 보고서도 사실 드뭅니다.
이번 주 [경제뭔데]에서는 국내 증권사 리포트의 투자 의견이 얼마나 매수에 쏠려 있는지, 이런 현상의 배경은 무엇인지, 금융 당국이 내놓은 대책이 이를 바꿀 수 있을지 짚어봤습니다.
10대 증권사 중 매도 의견 낸 곳은 단 한 곳 뿐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투자협회에서 2일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한달간 10대 증권사 가운데 매도 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발간한 증권사는 키움증권(1%) 한 곳에 불과했습니다.
KB증권(93.8%), NH투자증권(94.8%), 대신증권(98.8%), 메리츠증권(95.1%), 미래에셋증권(95.2%), 삼성증권(94.2%), 신한투자증권(93.6%), 키움증권(98.3%), 하나증권(98.7%), 한국투자증권(89.5%) 등 10대 증권사가 같은 기간 발간한 리포트의 약 90% 이상은 매수 의견이었습니다.
올해 2분기로 기간을 넓혀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매도 의견을 제시한 주요 증권사는 미래에셋증권(0.6%), 키움증권(0.5%) 두 곳에 그쳤고 비중 역시 1%에 못 미쳤습니다.
장기 통계에서도 증권사 리포트는 매수 의견 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00~2024년 국내 증권사 리포트 73만5162건을 분석한 결과, 매수 의견을 유지한 비율은 97.25%에 이르렀습니다.
‘보유’ 의견에서 매수 의견으로 상향 조정되는 비율은 8.57%였으나, 매수 의견에서 보유 의견으로 하향 조정되는 비율은 2.59%에 불과했습니다. 김 연구위원은 “과도한 낙관성이 관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증권사들은 왜 ‘매도’를 말하기 어려울까
그렇다면 증권사들은 왜 매도 의견을 좀처럼 내놓지 않을까요.
리포트에서 기업을 평가·분석하는 리서치 업무와 증권사의 다른 수익 업무가 완전히 분리되기 어려운 구조가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김 연구위원은 “증권사 수익에 대한 기여도 제고, 분석 대상 기업과의 우호적 관계 구축 등 이해상충 요소와 연관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증권사는 기업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당 기업을 고객으로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증권사는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 투자은행(IB) 부문에서 수익을 얻습니다.
리서치센터가 특정 기업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을 경우 해당 기업과 증권사의 영업 관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의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지난 1일 증권사 리포트의 매수 의견 편중 문제를 지적하면서 그 원인 중 하나로 영업 및 기업금융 업무에 미칠 영향 등을 꼽았습니다.
금융 당국, ‘익명 보고서’ 허용…효과 있을까
증권사 리포트는 투자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언론사 증권 담당 기자들이 기업과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기사를 작성할 때 참고자료로 활용할 뿐 아니라, 리포트를 작성하는 애널리스트들은 파급력이 큰 유튜브에 출연해 리포트에 기반한 시장 전망과 투자 의견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합니다.
증권사 리포트가 편향되거나 부정확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혼란과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에 따라 금융 당국은 증권사 리포트의 신뢰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애널리스트가 제시한 목표 주가와 실제 주가 사이의 차이를 평가해 ‘괴리율 우수’ 애널리스트를 주기적으로 공시하고, 애널리스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익명 보고서’를 허용하겠다는 방안입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증권사 리포트의 매수 의견 편중이 해소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애널리스트의 이름을 가리더라도 리포트를 발간한 증권사의 이름은 남습니다. 기업과 증권사 사이의 이해관계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거죠.
기업의 정보 공개 관행도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기업이 공시와 기업설명(IR)을 통해 대외적으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애널리스트로서는 기업과의 기존 이해관계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공시를 강화하지 않으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에 한계가 생길 수 있습니다.
구조적 문제가 빠르게 해소되기는 힘들다 보니 투자자들로서는 스스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증권사 리포트를 무조건 신뢰하는 건 위험하다는 거죠.
김 연구위원은 “투자자는 애널리스트 제공 정보의 낙관적 편향과 잠재적 이해상충의 영향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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