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살아도 죽지 않는 집을 찾아서
삼 년째 이 집에 산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넓지는 않아도 창밖에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은 집이다. 이 집을 찾는 여정은 두 번째 화학항암치료와 동시에 시작됐다. 병원에서 투약을 마치고 나와 부동산 사무실과 집들을 둘러보고 돌아오면 밤이 됐다. 버겁기는 했어도, 오늘의 컨디션이 내일의 컨디션보다 무조건 나았기 때문에 늑장을 부릴 수 없었다.
여태까지는 나름 무던한 세입자였다고 자평한다. 쥐 오줌으로 천장이 어룽거리는 집에도, 손끝이 곱아드는데 겨울 난방비가 십수만원씩 깨지는 집에도, 결로로 책과 옷이 젖는 하숙집에도, 아래층이 곱창집과 노래방이었던 고시원에도, 바퀴벌레가 하루 두세 마리씩 나오는 낡은 집에도 살아봤다. 막 원가족을 떠난 20대 세입자의 집이란, 볕 들고 네모나게만 생겨도 다행 아니던가.
그러나 이제 그래서는 안 됐다. 성한 몸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 곰팡이조차 위험했으니까. 표준치료를 마쳐도 어떤 후유증을 앓을지 예후가 어떨지 알 수 없으니, 계단만 있는 3층 이상의 집에서도 살 수 없었다. 전세사기로 인해 세입자들이 정말 ‘죽어 나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신축 주택도 후보에서 제외됐다. 깨끗하고 안전한 집을 고르는 건 처방의 일부였다.
이사는 그러나, 처음이 아닌데도 처음처럼 어려웠다. 기름때가 딱딱하게 눌어붙은 부엌과 누렇게 뜬 벽지 앞에서 중개인이 “이건 도배를 좀…” 하고 운을 떼도, “이 정도면 깨끗하지 뭘!”이라며 호통치는 집주인은 차라리 귀여운 축에 속했다. 가까스로 맞춤한 집을 찾아냈나 싶었더니 등기부등본에 ‘압류’가 찍혀 있었다. 중개인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서 혼자 사기 치고 도망갈 수 없다’며 안심하라 했다. 나는 이런 일을 알 법한 건너 건너 지인들에게, 법무사에게 따로 상담료를 물어가며 그 집의 위험도를 판단해야 했다.
어두컴컴하고 낮은 거실 한복판에서 호들갑 떠는 중개인 앞에서는 한참 망설였다. 그는 말했다. “어차피 이사 갈 집인데 뭘 그렇게 고민해요.” 1인 가구란 결혼해서 ‘번듯한 집’으로 옮겨간다는 사회적 믿음으로 인해, 내가 찾는 집은 내내 임시 정류장 취급이었다. 아무도 번듯한 집이라 여기지 않지만 말로만 그런 척 감탄하는 모노드라마가 끝나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어차피 똥으로 나올 건데 밥은 왜 먹는담.
마지막쯤 보았던 집은 중장년의 세입자가 홀로 살다 숨졌다고 했다. 레토르트 식품들과 생수병이 쌓여 어수선한 실내 풍경과 달리, 현관에는 청소 순서를 적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살림에 서툰 사람이었나 보네. 식탁 위의 소책자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 만든 ‘급성골수성백혈병’ ‘조혈모세포 이식 후 관리’ 안내서가 거기 있었다.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젖다 마르기를 반복했을 걸레 주변에 날파리가 날아다녔다. 눅눅한 공기와 찌들어 있는 곰팡이까지, 항암치료를 막 마친 환자가 살기에는 버겁고 위험했을 집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과 오래 싸웠을 것이다.
영영 집을 구하지 못하게 될까 상심할 무렵, 운 좋게 집을 얻었다. 그게 지금의 집이다. 편의상 운이라고 할 뿐, 도움을 청할 주변 사람들과 상담료를 지불할 수 있는 약간의 돈이 있었던 덕분임을 안다. 살아도 아프지 않은 집, 살아도 죽지 않는 집, 살아도 궁핍해지지 않는 집, 그런 집을 구해서 사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어야 할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엔 의식주가 필수’라는 상식이 문득 낯설고 얄궂다.
솜털이 부숭한 민머리로 이 마을에 이사 온 나는, 이제 이곳에 오래 살고 싶은 마음에 다음번 임대차 계약을 긴장하며 기다리는 평범한 세입자가 되어가고 있다. 집값이니 공급이니 대출이니 하는 부동산 뉴스는 오늘도 귓등으로 흐른다. 어느 정부의 어떤 대책도 내 삶을 반영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예감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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