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서 곡물 싣고 개경으로…800년 전 태안 바다에 잠든 고려 배

국립해양유산연구소, '마도 5호선' 실체 확인…목간·닻돌 등 발견
1208년 봄 항해 나섰다가 침몰한 듯…"마도 1호선과 같은 무리"
또 다른 난파선 흔적·고려 유물도…"경상도 출항 흔적 첫 확인"
이미지 확대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태안=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바닷속 경주'로 불리는 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고려시대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난파선 흔적이 잇달아 확인됐다.
전라도 서남부 혹은 경상도에서 당시 수도로 물자를 나르던 '화물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 향후 고려사의 빈칸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올해 태안 마도 해역에서 수중 발굴 조사한 결과, '마도 5호선'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난파선의 실체를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마도 5호선은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5번째 옛 선박을 뜻한다.
이미지 확대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구소는 지난해 조사에서 1150∼1175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 다발과 목제 닻, 밧줄, 볍씨, 선체 조각 일부를 찾은 바 있다.
올해 5월 본격적인 조사에 나선 연구소는 선체 조각 등이 나온 해역에서 닻돌, 밧줄 등 주요 부속품을 포함해 총 54점의 유물을 발견했다.
닻돌은 닻이 물속에 잘 가라앉도록 매다는 커다란 돌이다. 화물로 실린 것으로 추정되는 볏섬, 과거 선원들이 생활하면서 쓴 듯한 청동 항아리 등도 함께 나왔다.
그중에서 연구소가 가장 주목한 것은 기다란 나뭇조각이었다.
이미지 확대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총 26점에 이르는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에는 배에 화물을 실은 시기와 항해 시기, 출발지와 도착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정보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예컨대 한 목간에는 '밭에서 나온 벼 20석, 각 18두를 넣어서 올림'이라고 돼 있고, 또 다른 목간에는 '부인댁에 콩 10석, 각 15두를 넣어 올림'이라고 적혀 있다.
각종 곡물류를 운송하며 붙인 꼬리표로 볼 수 있다.
목간 중에는 '정묘년'(丁卯年)과 '정묘 12월'(丁卯十二月)이라고 적힌 글도 있었는데 함께 나온 유기물, 청자 연대 등을 고려하면 1207년으로 판단된다.
이미지 확대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구소 측은 "정묘년 12월은 한겨울인 양력 1월 무렵으로, 보통 항해하지 않는 때"라며 "항해 시기는 이듬해인 1208년 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화물이 출발한 지역으로는 현재 전남광주 영암군 영암읍 일대와 금정면 일대를 일컫는 '영암군'(靈巖郡), '안로현'(安老縣) 등이 적혀 있었다.
목적지가 '경'(京·고려 수도 개경을 뜻함)인 점을 볼 때 고려시대 전라도 서남부 지역에서 개경으로 보내는 화물을 실은 배, 즉 조운선(漕運船)으로 볼 수 있다.
연구소는 이 배가 또 다른 고려 난파선인 '마도 1호선'과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이미지 확대
왼쪽은 마도 5호선 출수 목간, 오른쪽은 1호선 출수 목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마도 1호선은 전남광주 나주, 해남, 장흥 등지에서 거둔 곡물 등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다 태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배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발견된 목간 중에는 안로현에서 개경의 '송득덕'에게 보내는 내용이 있는데 마도 1호선 출수 목간과 필적,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두 배가 전라도 서남부 지역에서 화물을 실었다는 점, 1207년 화물을 모은 뒤 1208년 개경으로 향하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진호신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학예연구관은 "마도 1호선과 5호선은 같은 선단(船團)의 선박으로, 마도 해역에서 악천후를 만나 함께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미지 확대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마도 5호선에서는 당대 조선 기술을 엿볼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바깥쪽 면에 붙이는 부재를 조사한 결과, 배의 밑바닥이 썩는 것을 막기 위해 뜨거운 연기를 씌워서 그을리는 연훈 처리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진 연구관은 "마도 1호선은 통나무를 거의 가공하지 않은 것과 달리, 5호선은 판재를 얇게 만들어서 정밀하게 가공했다"며 배를 만든 기술과 형태가 다르다고 봤다.
연구소는 올해 조사에서 '마도 6호선'으로 볼 수 있는 흔적도 찾아냈다.
이미지 확대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해저 지층을 중심으로 10곳을 시굴 조사한 결과 목간, 청자, 청동 숟가락, 목이 긴 도기 물병, 볏섬, 화물 받침목 등 2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목간에는 사주(泗州) 지역의 호장(지방 향리의 우두머리)인 '목량'이 화물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 사주는 현재 경남 사천시에 해당한다.
연구소는 "고려시대 세곡을 보관하던 13개 조창 중 하나인 통양창(通陽倉)이 있던 곳"이라며 "경상도 지역에서 출항한 선박으로는 최초 사례"라고 강조했다.
마도 6호선과 관련한 유물은 모두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지 확대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구소는 이번 주까지 수중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내년에는 마도 5호선과 마도 6호선 발견 지점을 중심으로 발굴 조사할 예정이다.
태안 마도 일대는 예부터 물길이 험해 '난행량'(難行梁)으로 불렸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싣고 개경이나 한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뱃길이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에 나섰으나, 해난 사고가 잦았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1392년부터 1455년까지 60여 년 동안 태안 안흥량(난행량) 일대에서 침몰한 선박은 200척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지 확대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es@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1월04일 09시00분 송고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