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시간] 그토록 연결을 원하면서도 관계에 고통받는 까닭은 [플랫]
인간은 왜 타인과 연결되기를 갈망하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어려워하고 관계로 인해 고통받을까요. 항상 누구에게든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기는 왜 이리 어려울까요. 수많은 관계에 얽혀 긴 시간을 보내면서도 우리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부하거나, 스스로를 탓하거나 혹은 상대를 탓하곤 합니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이 김영사와 함께 준비한 북토크 시리즈 ‘읽는시간’ 네 번째 시간에서는 ‘연결’에 대한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신지은 전남대 심리학과 교수의 책 <연결의 심리학>이었는데요. 사회심리학의 최신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연결을 바라면서도 관계에 지치는 것은 우리 마음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 사회성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 셩린 북토크에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많은 입주자님이 자리해 주셨어요.
<연결의 심리학> 저자 신지은 전남대 심리학과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열린 플랫 북토크 ‘읽는 시간’에서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윤중 선임기자
왜 우리는 모두에게 다정할 수 없을까
우리가 모두에게 다정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 교수는 먼저 ‘사회성은 사교성과 동의어가 아니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사회성은 집단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능력 전반을 뜻합니다. 돕고 유대하는 것뿐 아니라, 위험한 상대를 경계하고 필요할 때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도 사회성입니다. 또 ‘마음도 한정된 자원’이라는 점도 짚었습니다. 우리는 돈과 시간은 신중하게 쓰지만 마음도 한정된 자원이라는 점은 간과하지요. 우리가 흔히 입에 올리곤 하는 “마음이 쓰인다”거나 “마음 써줘서 고맙다” 등의 표현에는 ‘다정함도 쓰면 닳는다’는 사실이 반영돼 있어요.
그런데도 왜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추구하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할까요. 신 교수는 “우리의 삶의 목표를 도와주고 함께 이루어나가는 기회이자 자원이 바로 타인과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사회심리학에서의 ‘도구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요, 내 관계망 안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촉진해주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열린 플랫 북토크 ‘읽는 시간’에서 참석자들이 <연결의 심리학> 저자 신지은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강윤중 선임기자
‘도구’라는 말이 언뜻 차갑거나 계산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회심리학에서의 도구성이라는 개념은 ‘인간을 수단으로 본다’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기꺼이 삶의 무게를 함께 지탱하고 나눠주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서로에게 해 주면서 존재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신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이런 도구성을 타인에게 제공하는 가장 대표적 방법은 ‘감사’라고 합니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베푼 선의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은 ‘너의 선의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보답할 것이다’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 타인은 잠재적 위협을 지닌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모두에게 다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처음 만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데요, ‘사람을 볼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대한 답을 모으면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신 교수는 말했습니다. 따뜻함과 유능함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따뜻함과 유능함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어떤 사람을 골라야 할까요? 심리학 연구의 일관된 답은 사람들이 ‘따뜻함’을 더 우선으로 여긴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상대의 유능함은 중요한 정보지만, 따뜻함이 전제되지 않은 유능성은 나에게 자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위협이기도 경쟁자이기도 한 타인, ‘나’를 보살펴주자
실제로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랫동안 타인은 위협이었습니다. 신 교수는 수렵·채집사회 자료를 분석해 보면 전체 사망 중 약 14%는 전쟁에서의 사망이나 폭력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어요. 인간에게 있어서 타인이란 존재는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회와 자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주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물리적인 공격이나 폭력뿐 아니라 속임이나 기만을 당할 가능성도 위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못된 단서를 보고 잘못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뭘 보고, 뭘 믿어야 할까요? 신 교수는 신뢰할 수 있는 신호의 특징으로 ‘큰 제약이 따르거나 비용이 드는 것’을 꼽습니다. 공작새가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깃털을 활짝 펼치는 것처럼 말이죠. 신 교수는 말했습니다. “삶이나 관계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닥칠 때 그걸 너무 위기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모두 ‘진짜’를 찾고 싶어하잖아요. 진짜 사랑, 진짜 관계, 진짜 마음 같은 것은 위기 상황에서 선명히 보이기도 합니다.”
한편 타인은 우리에게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세상사가 완벽한 제로섬 게임은 아니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 자원을 차지하는 사람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경쟁에서 앞서는 것이 생존과 연관되어 있다 보니, 인간은 경쟁에서 앞서고 잘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신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경쟁에서 나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설명해주는 일종의 ‘위계 계기판’ 같은 장치가 내 마음 속에는 있다고 신 교수는 설명해요. 타인의 성취와 나의 성취를 비교하고, 나와 무관한 타인의 성취에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마음은 어쩌면 굉장히 당연한 일이라는 겁니다. 내가 못나서 타인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내가 뭘 원하는지 어디에 도달하고 싶어하는지 그 계기판이 보여주는 것이란 이야기죠. 신 교수는 “그런 마음이 들 때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한다기보다 ‘내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구나’ 하는 내 마음을 도닥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신 교수는 마지막으로 ‘나’를 가장 다정하게 대해주라고 말했어요. “다양한 관계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실 나 자신이죠. 관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고민이나 생각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나의 한정된 다정함을 가장 먼저 쏟아야 할 곳은 사실은 나 자신입니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마음을 쓰면서 노력하는 과정을 좀 더 다정한 눈길로 바라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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