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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13, 2026

“편의점 김밥도 4000원”…마라탕엔 줄서는데 ‘싸구려 한식’에 갇혀 사라지는 동네 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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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와 종로 일대의 김밥집. 이준헌 기자

서울 을지로와 종로 일대의 김밥집. 이준헌 기자

소풍날이면 어김없이 김밥이었다. 엄마는 이른 새벽부터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풍기며 김밥을 말았다. 집을 떠나서도 김밥은 학생과 직장인의 간편한 한 끼였다. 그러다 집밥이 더 간절해질 때면 갖가지 반찬을 내오는 백반집을 찾았다. 찌개 한 숟갈에 제육볶음을 곁들이면 허기와 함께 하루의 고단함도 누그러졌다.

김밥과 백반은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날 더 자주 만나는 음식이었다. 늘 가까이에 있었고,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따뜻한 한 끼가 됐다. 그런데 지금 그 익숙한 한 끼를 팔던 가게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상을 채우는 반찬이 많을수록 그만큼 많은 재료와 손길이 들어간다. 하지만 원재료, 인건비, 임대료 등 밥상을 차리는 비용은 모두 커졌다. 반면 그 한 끼를 찾아오는 발걸음은 점점 뜸해졌다. 한국인의 밥상을 오랫동안 지켜온 생활 한식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편의점 김밥도 3500원…동네 김밥집의 고민

서울 마포구 백반집 ‘그녀의 밥상’ 상차림. 이윤정 기자

서울 마포구 백반집 ‘그녀의 밥상’ 상차림. 이윤정 기자

서울 중구에서 23년째 김밥집을 운영하는 김미숙씨(50대·가명)는 최근 몇년 사이 근처 김밥집이 다 사라졌다고 했다. 김씨도 몇년 동안 3500원을 유지했던 야채김밥 가격을 올해 4000원으로 올렸다. 김씨는 “요즘 편의점 김밥도 3500원을 받더라”라며 “원재료 값이 너무 올라 더는 버티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다른 메뉴 가격은 최대한 올리지 않으려 한다. 단골 직장인들이 부담 없이 찾기 바라서다. 오래 장사한 만큼 가게 문을 쉽게 닫고 싶지 않지만 치솟는 인건비와 임대료를 생각하면 아찔할 때가 많다.

서울 마포구의 한 백반집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홍대 상권에서 10년째 백반집 ‘그녀의 밥상’을 운영하는 최준혁 사장(50)은 오전 11시 영업을 시작하기 위해 적어도 두 시간 전부터 가게에 나와야 한다. 5가지 반찬을 매일 직접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손님에게는 기본 상차림의 반찬이지만, 주인에게는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수고다. 최 사장은 “노동력 투입 대비 남는 게 없다”며 “솔직히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문을 닫는 가게가 늘어난 것은 체감만이 아니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6월 전국 분식점 사업자는 4만7863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 12월 이후 31개월 연속 감소한 수치다. 서울의 김밥 한 줄 평균 가격은 올해 7월 3869원으로 1년 전보다 6.8% 올랐다. 같은 기간 칼국수와 삼겹살, 냉면 등 다른 주요 외식 품목보다 상승 폭도 컸다. 김밥 전문 프랜차이즈도 예외가 아니다. 고봉민김밥인은 2020년 591개였던 매장이 올해 383개로 줄었다. 김가네는 2021년 459개에서 올해 335개로 감소했다. 바르다김선생도 2021년 150개에서 올해 87개까지 줄었다.

재료도 손도 많이 드는 한 끼

광장시장에서 한 상인이 꼬마김밥을 말고 있다. 이준헌 기자

광장시장에서 한 상인이 꼬마김밥을 말고 있다. 이준헌 기자

김밥과 백반이 원가 상승에 취약한 것은 음식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밥 한 줄에는 밥과 김 외에도 여러 재료가 들어가고, 각각 손질과 조리 과정이 필요하다. 백반은 밥과 국에 여러 반찬까지 더해진다. 재료비뿐 아니라 이를 준비하는 사람의 손과 시간도 함께 들어간다. 자동화로 인건비 부담을 덜려 해도 영세한 업주에게는 장비 구입비가 또 다른 부담거리다.

김밥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비용 상승은 매장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 얌샘김밥 김은광 대표는 “분식업종은 사람을 많이 써야 하는 데 비해 객단가가 낮아 인건비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얌샘김밥은 김밥 제조 기계 등을 도입하며 자동화를 앞당겼지만, 예상치 못한 비용은 계속 늘고 있다. 김 대표는 “요즘엔 배달 수요가 많은데 배달 앱 수수료 부담까지 커져 점주들의 수익 구조가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김 대표는 지난해 가격을 인상한 뒤 올해는 추가 인상을 미루고 있다. 소비자에게는 김밥 가격에도 이른바 ‘가격 저항선’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편의점 김밥이 3500~4000원에 판매되는 상황에서 기본 김밥 가격이 5000원 안팎은 돼야 각종 비용을 감당할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가격을 올릴 경우 소비자의 부담과 매출 하락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소비자 역시 달라진 가격표 앞에서 선택을 바꾸고 있다. 경기 불황과 물가 상승이 겹치면서 학생들은 편의점을 찾고, 직장인들은 구내식당이나 간편식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 끼를 선택하고 있다. 식당은 비용 상승을 모두 감당하기 어렵고, 소비자 역시 오른 외식비를 무조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싸야 하는 음식’에 묶인 한식

서울 을지로와 종로 일대의 김밥집. 이준헌 기자

서울 을지로와 종로 일대의 김밥집. 이준헌 기자

그렇다고 한식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외에서는 김밥과 김치뿐 아니라 여러 가지 반찬을 조금씩 곁들여 먹는 한국의 식사 방식까지 새로운 음식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사이드디시가 아닌 ‘반찬(banchan)’이 그대로 통용되고, 영국의 콜린스 영어사전에도 한국 음식의 곁들임을 뜻하는 단어로 등재돼 있다.

문제는 한식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과 달리 정작 국내에서는 김밥과 백반 같은 생활 한식이 여전히 ‘싸야 하는 음식’이라는 인식에 묶여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은 “김밥집이나 백반집은 가격을 조금만 올려도 비싸다고 여기지만, 타코나 마라탕 등 요즘 유행하는 이색 음식에는 1만5000~2만원을 내도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결국 국밥이나 칼국수처럼 한 가지 메뉴를 전문으로 하거나, 일품요리와 술을 함께 팔아 테이블 단가를 높이는 한식 주점 형태가 살아남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의 선택지가 달라진 것도 생활 한식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한때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김밥, 라면을 골라 먹던 자리를 마라탕 같은 이색 음식이나 햄버거, 각종 에스닉 푸드가 대신하고 있다. 가격만 놓고 봐도 김밥이 반드시 가장 저렴한 선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 햄버거나 편의점 간편식이 김밥 한 줄과 비슷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한식을 선택할 이유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그사이 해외에서는 오히려 한식의 인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소장은 “수출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에 밀려 중국산 제품이 K푸드로 둔갑해 팔리고 있다”며 “국내에서조차 제대로 된 한식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고급 한정식이나 비싼 고깃집에서만 다양한 반찬을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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