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다면서 연회비 130만원 카드 사용”…절약과 사치 동시에 하는 Z세대의 소비법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관련 AI이미지.
돈을 아끼려고 외식을 줄이고 친구들과 만날 때도 저렴한 메뉴를 고르는 Z세대. 그런데 이들이 비싼 연회비를 내는 프리미엄 신용카드의 주요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다. 생활비 부담에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자신에게 가치 있다고 여기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 ‘절약과 사치가 공존하는’ 소비법이 새로운 트렌드가 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전망을 보도하면서 미국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아멕스 카드 지출액이 X세대를 처음으로 넘어섰다고 전했다. 젊은 세대가 프리미엄 카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아멕스의 미국 개인용 골드·플래티넘 카드 신규 고객 가운데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75%를 웃돈다.
지난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미국 개인용 골드·플래티넘 카드 신규 고객의 약 75%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였다. 신규 플래티넘 카드 고객의 평균 연령은 33세, 골드 카드 고객은 29세였다. 플래티넘 카드의 연회비는 895달러(약 130만원), 골드 카드는 325달러(약 47만원)에 이른다. 연회비가 비싼 프리미엄 카드가 중장년층이나 고소득층만의 선택이라는 통념과는 다른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Z세대는 비싼 연회비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카드를 사용할까. 미국 애틀랜타에 사는 직장인 매디슨 트로버(26)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플래티넘 카드 연회비가 695달러에서 895달러로 인상된다는 소식에도 카드를 계속 이용하겠다고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밝혔다. 특히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혜택은 공항 라운지 이용이다. 트로버는 라운지를 이용하는 모습이 나이 많은 직장 동료들에게 자신이 혜택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더 진지하게 대우받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카드사가 혜택을 추가할 때마다 이를 살펴보고 적극 활용한다. 아멕스가 룰루레몬과 제휴 혜택을 발표하자 바로 다음 날 매장을 찾아 이 혜택이 바로 적용되는지 알아봤다. 그는 이런 행동이 ‘아는 사람만 아는 정보를 알고 있다’는 신호라고 여긴다고 했다. 프리미엄 카드가 결제 수단인 동시에 특정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이자, 그 혜택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케빈 린(22)은월스트리트저널(WSJ)에 대학 졸업 전 연회비 895달러의 아멕스 플래티넘 카드를 발급받았다고 말했다. 여러 대륙을 여행할 계획을 세우면서 카드의 여행 혜택과 가입 보너스를 따져 연회비를 상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 후 여행 혜택을 활용할 시간이 줄자 연회비가 더 낮은 골드 카드로 바꾸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비싼 카드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자신이 실제로 누릴 혜택에 따라 카드의 가치를 적극 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Z세대가 소비 자체를 늘린 것은 아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올해 발표한 조사에서 Z세대의 40%는 생활비 상승에 대응해 외식을 줄였다고 답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무료·저가 활동을 찾거나 저렴한 메뉴를 고르는 등 지출을 조절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작은 사치를 위한 소비 트렌드는 여전했다. 여행이나 취미,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상품에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응답자의 92%는 평소에는 절약 모드이지만, 비싼 디저트를 사먹거나 새 선글라스를 사는 등 자신을 위한 작은 사치를 즐긴다고 했다. 52%는 이런 소비를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한다고 답했다.
프리미엄 카드 사용이 절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젊은 세대가 신용카드 포인트와 캐시백을 활용해 생활비 부담을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빅토리아에 사는 대학생 조던 시히(23)는 식료품·주유·여행 등 용도에 따라 신용카드 3장을 나눠 쓴다. 코스트코 제휴 카드로 연간 약 130캐나다달러의 캐시백을 받아 유료 멤버십 비용을 충당하고, 여행용 카드로 모은 포인트는 에어비앤비 숙박 등에 활용한다. 시히는 식료품 가격이 오르더라도 포인트를 사용해 지출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금융회사 시티즌스 파이낸셜 그룹의 올해 조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Z세대 응답자의 44%는 신용카드 보상 혜택이 가계 지출을 줄이거나 재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같은 응답이 19%였다. Z세대 응답자의 35%는 보상 혜택을 더 큰 재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활용하고 싶다고 답했다.
돈을 아끼려는 젊은 세대가 신용카드 혜택을 꼼꼼히 따지는 모습은 얼핏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소비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역설이 드러난다. 일상적인 지출은 줄이면서도 여행이나 취미,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상품에는 돈을 쓴다는 점이다.
이런 소비 행태는 특정 국가나 신용카드 시장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가발표한 ‘2025년 소비자 동향 보고서’에서 소비자들이 한 분야에서는 지출을 줄이면서 다른 분야에서는 더 비싼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맥킨지가 중국·독일·영국·미국 소비자 28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와 여러 국가의 추가 소비자 조사 등을 토대로 내린 결론이다.
물가 상승은 여전히 소비자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택한 방법은 모든 지출을 일률적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저렴한 제품으로 바꾸거나 할인 상품을 찾는 동시에, 만족도가 높은 분야에서는 지출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식이었다.
맥킨지에 따르면 2025년 조사 대상 소비자의 79%는 적어도 한 분야에서 저렴한 제품으로 바꾸거나 지출을 줄이는 ‘트레이드다운’을 하고 있었다. 같은 해 상반기에는 3분의 1이 넘는 소비자가 한 분야에서 지출을 줄이는 한편 다른 분야에서는 평소보다 비싼 상품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모든 소비를 일률적으로 줄이기보다 덜 중요하다고 여기는 곳에서는 아끼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분야에는 돈을 쓰겠다는 것이다.
특히 Z세대는 의류와 미용 제품 등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지출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맥킨지의 2025년 조사에서 중국·독일·영국·미국의 Z세대 응답자 가운데 34%는 신용을 이용해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다른 세대보다 약 13%포인트 높은 수치다. 의류와 미용 제품에 돈을 더 쓰려는 성향도 상대적으로 강했다.
소비자가 지출을 줄이면서도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에는 더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이를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 라고 분석했다. 미국 소비자 9000명과 290개 브랜드에 관한 소비자 평가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소비자가 브랜드의 가치를 판단할 때 가격 이외의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10~40%에 이른다는 것이다.
미국 신용정보회사 트랜스유니언의 미셸 라네리 미국 리서치·컨설팅 책임자는 WSJ에 “젊은 세대가 프리미엄 카드 혜택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있으면서도 소비 여력을 함께 갖추고 있다”면서 “실제로 일부 젊은 카드 이용자는 혜택을 엑셀 시트로 정리하며 카드별로 받을 수 있는 이익을 비교한다”고 했다. Z세대는 앞선 세대와 달리 포인트 적립, 여행 혜택, 사용 조건, 포인트를 실제로 쓰는 방법까지 꼼꼼히 따지면서 프리미엄 카드 연회비 이상의 가치를 얻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