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공직자 재산공개, ‘얼마’보다 ‘어떻게’를 봐야
349억2176만원. 최근 공개된 6·3 지방선거 신규 선출직 공직자 중 가장 많은 금액을 신고한 최기영 경북 봉화군수의 재산이다. 대부분 증권으로, 본인 명의 비상장주식만 214억2030만원에 달했다. 지난 3월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이세웅 평북지사 신고액이 1587억원을 뛰어넘었으니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공직자 재산공개 때가 되면 어김없이 숫자가 쏟아진다. 일반 국민에겐 그저 숫자의 나열로 보이는 거액 신고액이 등장하고, 상위 그룹의 재산 현황이 뉴스가 된다. 지방에 거주하면서 수도권, 그것도 서울 강남 3구 아파트를 보유한 단체장 이름도 줄줄이 나온다.
재산공개 기사에 달리는 “수십억 원이 있어야 정치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건지, 정치를 하니까 수십억 원이 생기는 건지” 식의 반응도 이젠 익숙할 정도다.
그러나 공직자 재산공개의 시작은 달랐다. 공직자윤리법 제정으로 재산등록 제도가 1983년 시행됐는데, 당시에는 비공개가 원칙이었다. 이후 1993년 재산 공개로 확대됐다.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정보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재산을 늘리는 것을 막고, 재산과 직무 사이에 이해충돌이 있는지를 감시한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재산공개는 공직자 재산 형성 과정의 여러 문제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해왔다. 부동산 투기가 알려져 물러난 공직자가 있었고, 비상장주식을 뇌물로 받아 곤혹스러워진 일도 있다. 대부업체와 성인방송 관련 주식을 보유한 사례도 있었다.
공직자 재산공개의 본래 목적은 재산이 많은지 적은지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 하지만 요즘 공직자 재산이 공개되면 형성 과정보다 목록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공개에서 화제가 된 것은 부동산이나 가상자산이 아닌 펀드 투자였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아파트를 처분했으며, 김상욱 울산시장은 예금 등 전 재산을 ‘몰빵’해 펀드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펀드 평가액이니 변동성이 크겠지만) 그 결과 김 시장과 추 지사의 자산은 불과 4개월, 6개월 만에 각각 12억원6609만원(37억5850만원→50억2459만원), 9억119만원(27억9641만원→36억9760만원)이나 불었다.
두 사람의 재산이 단기간에 크게 늘면서 세간의 관심은 ‘어떻게?’로 쏠렸다. 펀드 투자 등이라는 답이 나오자 이번에는 질문이 바뀌었다. 어떤 펀드인가. 공직자 재산공개가 어느새 자산 증식의 성공담을 들여다보는 창구처럼 소비되는 순간이다.
김 시장도 이런 관심에 화답하듯 “전국 공직자들에게 ‘돈 벌고 싶으면 펀드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까지 했다.
사실 공직자에게 청빈낙도의 삶을 기대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직자가 많은 재산을 가져도 문제 되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취득한 재산과 투자 수익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다만 공직자 재산공개는 누가 얼마나 부자인지를 보여주는 제도가 아니다. 공직자를 검증·감시하기 위한 장치가 자산 증식 방법을 전수·학습하는 기회처럼 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영향도 있다. 과거에는 부자가 됐다는 사실이나 부를 과시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누구나 자산을 불리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공개된 공직자 재산 금액이 많을수록 호기심도 커진다.
현재 공개되는 자료만으로는 외부에서 재산 형성 과정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재산 종류와 가액, 변동액, 변동 사유 등 숫자에다 간단한 이유만 공개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직자 재산공개가 자산 순위로 소비되면서 부당 이익, 직무 연관성, 이해충돌 여부 등 공직윤리에 어긋나는 점은 없는지와 같은 중요한 질문들은 뒤로 밀리고 있다.
공직자 재산공개만큼은 질문을 다르게 해야 한다. ‘얼마인가’ 숫자보다 ‘어떻게 형성하고 축적한 재산인가’ ‘직무와 사적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은 없는가’ 등 숫자 뒤에 숨겨진 이야기에 관심을 둬야 한다.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정말 공개되고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것은 그 재산이 아닌 그 재산이 만들어진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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