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이후 24년 만에···한국 투자 못 받은 ‘가능한 사랑’, 넷플릭스 지원 아래 은사자상 품었다
영화 <가능한 사랑>으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이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 시상식 포토콜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창동 감독의 영화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았다. 이 감독은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은사자상)과 신인배우상(문소리)을 받은 이후 24년 만에 은빛 사자 트로피를 다시 한번 들어 올렸다.
<가능한 사랑>은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 ‘팔라초 델 치네마’(영화의 궁전)의 살라 그란데 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황금사자상 바로 다음으로 권위 있는 2등 상이다.
은색 사자 모양 상패를 건네받은 이 감독은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라며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 이 상은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으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이 12일(현지시간) 폐막식이 열린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 살라 그란데 극장에서 심사위원 중 한 명인 두기봉 감독으로부터 상패를 건네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 감독은 “많은 사람의 기다림과 인내가 없었다면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감사를 전했다. 그는 동생이자 제작자인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 대본을 함께 집필한 오정미 작가, 주연 배우들과 가족을 언급했다. 영화에 투자한 넷플릭스에도 감사를 표했다.
<버닝>(2018) 이후 이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이는 <가능한 사랑>은 부부 두 쌍의 이야기다. 해고노동자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 그들을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그의 부자 남편 상우(조인성)가 얽히면서 서로의 다름을 알아채고 각자의 숨은 욕망을 마주한다.
이 감독은 10여 년 전에도 배우 전도연, 설경구를 주연으로 대기업의 집단 정리해고 문제를 다루는 영화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자격이 있는가”라는 고민 끝에 작업을 중단했다. 이 감독은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영화가 타인의 고통, 또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져와 소비하는 경우가 있다”며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어떻게 영화에 담을 수 있는지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배우 조여정이 연기한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는 이 같은 고민을 반영한 인물이다. 이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어쩌면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고통을 치유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수상에 대해 “조여정이 좋은 꿈을 꿨다며 꿈을 팔았는데, 그것이 행운을 가져온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화 <가능한 사랑>으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이 12일(현지시간) 폐막식이 열린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 살라 그란데 극장에서 상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가능한 사랑>은 지난 6일 처음 공개된 이후 호평을 받으며 황금사자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이 감독은 이번 베니스에서 <오아시스>로 받았던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상 또한 24년 만에 받았다. 심사위원 두기봉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이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성숙한 작품이다. 스타일이 매우 섬세하고 은은하다. 영화 속 모든 디테일과 성찰이 마음에 들었다”며 “저라면 절대 이런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 같다”고 찬사를 보냈다.
한국 투자처를 찾지 못해 넷플릭스행을 택했던 <가능한 사랑>은 넷플릭스의 안정적인 지원 아래 제99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수상 경쟁(오스카 레이스)에 임하게 됐다. 이 감독은 “황금사자가 아니어서 실망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상도 상이지만, 처음 만난 관객들의 표정과 얼굴이 저에게는 더 중요하다”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했다.
<가능한 사랑>은 토론토·뉴욕·부산·산세바스티안·취리히·런던 등 세계 주요 영화제를 찾을 예정이다. 국가당 한 편을 제출하는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 부문의 한국 출품작으로도 선정됐다. 국내에서는 오는 23일 일부 극장에서 개봉하며 오는 11월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황금사자상은 ‘마리가 뭐 어때서’…다큐멘터리 ‘나자’는 심사위원특별상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마리가 뭐 어때서>(우먼 언노운)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메이 엘 투키 감독과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마틸드 아르셀 포초크가 폐막식이 열린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 살라 그란데 극장에서 상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덴마크 감독 메이 엘 투키의 <마리가 뭐 어때서>(Woman Unknown)에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덴마크를 배경으로 결혼을 앞둔 마리가 독일군 병사와 연인 관계였던 과거를 숨기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는 마리 역의 배우 마틸드 아르셀 포초크가 여우주연상(볼피컵)을 받아 2관왕에 올랐다.
투키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여성의 몸이 전쟁터이자 공적 문제가 되는 이야기”라며 “동시에 보이지 않고, 지워지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심사위원장인 미국 배우 겸 감독 매기 질렌할에게 “(여성) 감독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문제에 목소리를 내줘서 고맙다”고 감사를 표했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21개 작품 중 여성 감독이 단독 연출한 극 영화는 <마리가 뭐 어때서>가 유일하다. 지난 2일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서 나온 성별 불균형에 관한 질의에 질렌할은 여성 감독이 투자를 받기 힘든 영화계의 관행적·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투키 감독이 83회를 맞는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8번째 여성 감독이라는 것은 업계의 여전한 남성중심성을 방증한다.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나자>(NAZA)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유발 아브라함, 레이첼 소르 감독이 폐막식이 열린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 살라 그란데 극장에서 상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올해 영화제에는 정치·사회적 현안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많았다. 특히 이스라엘군의 조직적인 가자지구 민간인 살해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나자>(NAZA)가 화제를 모았다.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이 작품은 첫 공식 상영 당시 25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올해 경쟁작 중 최장 시간이다.
이스라엘 감독 유발 아브라함과 레이첼 소르가 연출했다. 두 감독이 상을 받으러 이날 연단에 오를 때에도 이 감독을 포함한 영화인들이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이들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강제 추방하는 과정을 기록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합작 영화 <노 어더 랜드>로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바 있다.
아브라함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이스라엘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영화를 공격하고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영화제가 진행되는 10일 동안에도 최소 6명의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살해당했다. 이러한 진실을 첫날부터 기록한 팔레스타인 언론인은 200명 넘게 살해됐고 침묵당했다”며 “범죄를 부정하는 것은 그 범죄가 계속되도록 한다. 이스라엘인들이, 상당 부분의 자금을 대고 있는 미국인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감독상은 <다우>(DAU)를 만든 러시아 반체제 감독 일리야 흐르자놉스키에게 돌아갔다. 전쟁에 반대해 온 그는 상을 우크라이나에 헌정했다. 각본상은 스테판 브리제 감독의 <앙 봉 프티 솔다>(A Good Little Soldier)가 받았다. 남우주연상(볼피컵)은 <와일드 호스 나인>(마틴 맥도나 감독)의 존 말코비치가, 신인배우상은 <어 플레이스 투 힐>(A Place to Heal)의 말루 케비지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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