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통일 아일랜드 보고 싶다”···이번엔 수십년 갈등 ‘북아일랜드’에 불쑥 개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일랜드를 방문해 아일랜드 통일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내놨다. 그린란드 병합, 캐나다 편입 등을 거론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는 수십 년간 유혈 충돌을 빚었던 북아일랜드의 향방에까지 말을 얹은 것이다. 영국과 북아일랜드 연합주의 진영은 즉각 반발했다.
미국은 중립 지켜왔는데···트럼프 “결국 통일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류스 합동기지에서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미홀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통일된 아일랜드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라며 마틴 총리를 가리켜 “그 일을 추진할 적임자를 만났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해당 발언이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아일랜드 통일은 영국과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민감한 사안이다.
미국은 북아일랜드 평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1998년 성금요일 협정 체결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중재했고, 이후 미국 정부도 협정 이행과 지역의 평화·안정을 지원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많은 미국의 정치적 특성도 역대 대통령들이 북아일랜드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배경으로 꼽힌다.
다만 미국 대통령들은 통일 여부 자체에 찬반을 밝히기보다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뜻과 성금요일 협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왔다. 미국 대통령이 통일 아일랜드에 대한 선호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례적인 셈이다.
영국 잔류 vs 아일랜드 통일···끝나지 않은 갈등
아일랜드 통일 문제는 북아일랜드의 헌법적 지위를 둘러싼 오랜 갈등의 핵심이다. 북아일랜드는 현재 영국의 일부이지만, 1998년 체결된 성금요일 협정(벨파스트 협정)에 따라 주민들의 뜻에 따라 아일랜드공화국과 통일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배 과정에서 종교·정치적 갈등이 누적됐다. 1919~1921년 아일랜드 독립전쟁 이후 아일랜드가 남북으로 분리된 뒤에도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 잔류를 원하는 개신교계 연합주의자들과 아일랜드공화국과의 통일을 원하는 가톨릭계 민족주의자들이 충돌했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약 30년간 이어진 ‘트러블스’ 기간에는 양측의 충돌과 폭력 사태로 약 3500명이 사망했다. 정치·경제적 차별과 영국의 지배를 둘러싼 갈등이 무장 충돌로 번지면서 현대 유럽의 대표적인 내분으로 기록됐다.
미국의 중재 끝에 체결된 성금요일 협정은 이 갈등을 사실상 종식하면서 북아일랜드의 헌법적 지위를 주민들의 뜻에 맡겼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에서 각각 통일 찬성 여론이 확인될 경우 영국 정부가 이른바 ‘국경투표’를 실시하고, 양쪽에서 통일 찬성이 과반을 얻으면 주권을 변경할 수 있다.
브렉시트 이후 통일 문제는 다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아일랜드공화국은 유럽연합(EU)에 남았지만 북아일랜드는 영국과 함께 EU를 탈퇴하면서 국경과 무역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커졌다. 여기에 북아일랜드에서 가톨릭계 주민 비중이 증가하고 민족주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성장하면서 통일 문제는 여전히 민감한 사안으로 남아 있다.
“북아일랜드 미래는 주민이 결정”···영국·연합주의 반발
12일(현지시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한 여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직후 영국 정부는 선을 그었다. 영국 총리실은 앤디 버넘 총리가 지난 7월 취임 당시 북아일랜드의 조기 국경투표 가능성을 일축했던 발언을 거론하며 국경투표는 현재 “논외”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버넘 총리는 북아일랜드의 헌법적 지위는 성금요일 협정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북아일랜드 최대 연합주의 정당인 민주통합당(DUP)의 개빈 로빈슨 대표도 “북아일랜드의 미래는 런던이나 더블린, 워싱턴의 발언이 아니라 북아일랜드 사람들이 결정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들어 다른 국가와 지역의 영토 문제에도 잇따라 목소리를 내왔다.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미국이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 데 이어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자는 취지의 발언도 반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일랜드와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 아일랜드 서부 도운베그에 자신의 이름을 딴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어 대통령 취임 전부터 아일랜드와 인연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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