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 흘러나가는 도시에서 머무는 도시로”…부를 묶는 해법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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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도, 백화점 등 대규모 상권 유치와 역세권 개발로 관광객과 소비자가 지역에 모이지만, 그 돈이 지역의 투자와 고용으로 되돌아오기는 쉽지 않다. ‘성장하지만 부가 남지 않는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공동체 자산화에서 해법을 찾는 도시들이 늘고 있다. 지역공동체 자산화는 외부 투자에 기대는 대신, 지역 앵커기관, 사회연대경제기업, 공동체 자산, 지역 금융을 엮어 지역에서 만들어진 부를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정책을 말한다.
지역의 자금이 지역에서 순환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2026 광명시 지역공동체 자산화 국제포럼’이 13일 경기 광명시 L7광명 바이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행사를 주최한 광명시는 공공구매가 지역 성장을 이끌고, 도시의 성장이 시민의 자산으로 이어지며, 지역 자금이 지역에서 순환하는 ‘지역공동체 자산화’ 정책 비전을 선포했다. 박승원 광명시장은 “광명은 대규모 개발사업과 함께 성장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 자산화 정책을 통해 이러한 성장의 결실이 지역기업과 시민의 일상 경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첫 발제에 나선 닐 맥킨로이 협력하는 민주주의(The Democracy Collaborative) 글로벌 총괄 책임자는 지역공동체 자산화는 지역 경제 역량 강화를 위한 핵심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불평등이 깊어지고 시장이 불확실해진 환경에서, 지역 공동체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경제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공동체 자산화는 자산을 지역에 붙잡아 두고, 변동성이 큰 외부 요인에 대한 의존을 줄여 지역 경제 회복력을 갖추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 양극화와 고령화, 인구 소멸 등 한국의 문제점을 짚으며, 지역공동체 자산화 정책이 이러한 복합적 문제에 대응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자산화 정책이 지역에 뿌리를 둔 사회연대경제기업, 지역화폐와 같은 정책을 하나의 전략으로 연결해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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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환경에 맞게 지역공동체 자산화 정책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크리스 마틴 스코틀랜드 사회적기업협회 최고경영자는 자국 지방정부들의 자산화 정책을 소개하며, “스코틀랜드에 동일한 정책 모델은 없다. 사회연대경제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공공조달 정책을 활용하고, 이들을 뒷받침하는 지역 금융으로 대학, 병원 등 지역 앵커기관이 함께 지역 상황에 맞는 모델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코틀랜드는 지난 2월 의회에서 ‘지역공동체 부 순환법(Community Wealth Building Bill)’이 통과돼, 지방정부와 산하 공공기관이 향후 3년 안에 실행계획을 함께 세우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자치권이 발달한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와 같이 중앙정부 중심의 행정체계를 갖춘 일본 지자체의 사례도 소개됐다. 사무타 히카루 일본 가나자와대학 교수는 게이힌 지역의 장기침체 사례를 들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도쿄 남쪽에 있는 게이힌 지역은 연구개발 인력과 스타트업 기업을 위한 인큐베이션 시설을 갖췄지만, 2000년대 초반 오랜 경기 침체를 겪었다. 수도인 도쿄 일극 집중 구조 탓에, 도시 고유의 ‘중심지 기능’을 갖지 못하고 도쿄의 주변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지식노동자는 도쿄로 통근하고, 성장한 스타트업은 도쿄로 떠나면서 지역 경제가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사무타 교수는 “중소도시는 특화 영역을 개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 기능을 갖춘 산업 커뮤니티를 구축해야 한다. 자원의 한계가 있다면, 지역 내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보와 자산을 마련해 장기적으로 전략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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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박승원 시장은 “성장하는 수도권 도시도 부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살피지 않으면 양극화를 피할 수 없다”며 자산화 정책 추진 배경을 밝혔다. 박 시장은 자산화 정책의 목표를 식품, 유통, 돌봄, 에너지 등 시민들의 일상 경제를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게 지원하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광명시는 올해 4월 수도권 최초로 지역공동체 자산화 조례를 제정하고, 사회연대경제과와 지역경제전략연구센터를 신설했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관내 사회연대경제기업 수는 2018년 77개에서 2026년 9월 기준 213개로 늘어났다. 2025년 기준 지역화폐 신규 가입자 수와 1인당 결제금액도 경기도 31개 시군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박 시장은 “사회연대경제기금을 조성해 지역 경제 규모를 키우고, 광명산업진흥원을 설립해 기업의 지원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해가겠다”고 밝혔다.

2부 좌담회에서는 경기도 안성시 ·대전 중구·전남광주 영암군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참여해 지방정부의 정책 성과를 공유했다. 김보라 안성시장은 지역 소상공인 소비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야간 소비 진작 사업’으로 7~8월 지역화폐 사용액이 전년보다 두 배가 늘었다고 소개했다. 김제선 대전 중구청장은 주민자치회 법인 설립·활성화를 통해 지역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공영주차장을 운영하는 등 지역 문제 해결에 함께 참여하는 구상을 밝혔다. 우승희 영암군수는 택시, 관광 산업과 연계한 지역화폐 ‘월출페이’와 주민 주도의 태양광 발전사업인 ‘햇빛소득마을’ 등 영암형 지역순환경제 모델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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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장들은 지역공동체 자산화 정책의 제도적 한계점도 지적했다. 최근 정부에서 지방정부의 업체 수의계약의 횟수와 금액을 제한한 지침은 자산화 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8월 행정안전부는 특정 업체에 수의계약이 반복적으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동일업체와 체결할 수 있는 수의계약 횟수와 금액을 ㅔ제한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기초자치단체는 연간 5회 또는 2억 원, 광역자치단체는 연간 7회 또는 3억 원을 넘겨 동일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을 수 없게 됐다.
김보라 시장은 “공공조달은 관내 기업을 육성하는 중요한 정책 중 하나다. 공공조달 정책이 이처럼 제한되면, 지방정부들은 관내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지원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 지역 사례를 발표한 사무타 히카루 교수도 “지역 맞춤형 정책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경제 정책 권한과 재원을 분권화해 지역 자치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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