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날아온 미국 자선사업가··· 한국서 간이식으로 새 생명 얻어
미국인 자선사업가 마르코 키로스와 딸 킴벌리 키로스(앞줄 오른쪽부터)가 간이식 수술을 시행한 이승규 석좌교수, 문덕복·송기원 교수(뒷줄 오른쪽부터)와 지난 21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페루 출신으로 조국의 소외계층을 지원하던 미국인 자선사업가가 간경화로 생명이 위협받던 상황에서 한국을 찾아 간이식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은 마르코 안토니오 키로스(69)에게 딸 킴벌리 루시아 키로스(30)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했다고 28일 밝혔다. 키로스 부녀는 수술 후 순조롭게 회복해 최근 퇴원했으며 오는 29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마르코는 페루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부동산 건설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을 페루의 저소득층과 노인 등에 지원하는 자선사업을 활발히 펼쳐왔다. 그는 2008년 지방간 진단을 받은 뒤 별다른 치료 없이 지내다 지난해부터 배가 계속 불러오자 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그의 배에 복수가 차 있고 지방간이 간섬유화를 지나 간경화까지 진행됐다는 소견을 전했다.
이미 폐까지 물이 차는 심각한 상태라 간이식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문제는 페루에선 간이식이 가능한 나이가 65세까지로 제한돼 있다는 점, 미국에선 뇌사자 간이식을 신청해도 대기자 명단에 올라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는 점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이식이 가능한 나라를 찾던 마르코는 생체 간이식 경험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뇌사자의 간 기증을 기다리는 대신 가족에게서 간 일부를 이식받는 생체 간이식에 희망을 걸고 세계 최초 간이식 9000례 달성 기록을 세운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지난 5월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도착한 마르코는 5월28일 첫 진료를 시작으로 자녀들과 함께 병원에 입원해 수술 전 필요한 일련의 검사들을 진행했다. 검사 결과 최종적으로 딸이 간을 기증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따라 키로스 부녀는 지난 8월14일 나란히 수술대에 올랐다. 간이식·간담도외과의 송기원 교수는 딸 킴벌리의 간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맡았고, 이승규 석좌교수와 문덕복 교수는 이를 넘겨받아 아버지 마르코의 몸에 이식하는 수술을 집도했다.
환자의 간 상태는 예상보다 더 심각해 간 혈관 주변으로 거미줄처럼 핏줄이 심하게 엉켜있었고 딱딱하게 굳어진 간 일부가 인체의 가장 큰 정맥을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간을 떼어내다 자칫 소장·신장 등 다른 장기에서 혈액이 정체될 위험이 컸던 탓에 혈관 분리 작업에 이어 피가 안전하게 우회해 흐를 수 있는 경로를 만드는 과정도 거쳐야 했다. 다행히 17시간에 걸친 대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 새로운 간은 무사히 이식됐다.
딸 킴벌리는 수술 8일 후 퇴원했으며 마르코도 순조롭게 회복해 수술 후 3주차에 건강히 병원 밖을 나섰다. 부녀는 출국 전 남은 검사와 외래까지 마무리한 후 오는 29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마르코는 “폐까지 물이 차면서 숨쉬기가 힘들어졌을 때는 내 몸이 좋아질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지만 낯선 땅 한국에서 기적처럼 생명을 되찾을 수 있었다”며 “한국에서 얻은 새 생명으로 조국의 어려운 사람들을 더 힘껏 도우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승규 석좌교수는 “최근 모로코에서도 두 형제가 간암 아버지를 모시고 한국까지 찾아와 아버지의 건강을 되찾아줬는데, 이번엔 페루 출신 미국인 부녀가 한국의 간이식으로 고귀한 생명을 얻었다”며 “앞으로도 국내는 물론 전 세계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고 새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모든 간이식팀 의료진이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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