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국 주홍글씨 ‘적국 조항’ 지우려는 일본…중국과 UN서 ‘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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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으로 외교 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과 일본이 제2차 대전 패전국을 ‘적국’으로 규정한 유엔헌장을 놓고 국제무대에서 다시 맞붙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30일 “다카이치 총리가 유엔(UN) 총회 일반토론 연설에서 요구한 유엔 헌장의 ‘구 적국(enemy States) 조항’ 삭제를 두고 중국과 북한이 토론 마지막 날인 28일 ‘단호한 반대’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22일 유엔 총회 일반토론 연설에서 “81년이 지난 유엔 헌장도 재검토돼야 한다”며 “유엔 헌장의 ‘구 적국 조항’과 관련해 2005년 모든 유엔 회원국 정상들이 ‘적국’이란 언급을 삭제한다는 결의를 채택한 데 따라 해당 조항이 조속히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한 게 사건의 발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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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 조항’은 1945년 6월26일 제정된 유엔 헌장 53조에 “안전보장이사회의 허가 없이는 어떠한 강제조치도 지역적 약정 또는 지역적 기관에 의하여 취하여져서는 안된다”며 “다만 적국에 의한 새로운 침략을 방지할 책임을 질 때까지는 예외로 한다”는 대목을 가리킨다. 유엔 헌장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승인 없는 군사 행동 등 강제 조처를 금지하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제2차 대전 패전국의 재침략을 막기 위한 경우 ‘예외’로 한다는 것이다.
전후 81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본·독일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엔 헌장에 서명국과 싸운 국가를 사실상 ‘적국’으로 규정한 셈이다. 유엔 헌장 77조, 107조에도 ‘적국 조항’이 들어 있다. 일본에선 이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구 적국 조항’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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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뒤 첫 유엔 총회에 참석해 과거 유엔 회원국들이 ‘적국 조항’ 삭제를 결의했던 만큼 이를 이행해달라고 요구했다. 실제 유엔 회원국들은 1995년 적국 조항 삭제를 위해 유엔헌장 개정 절차를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 결의에 155개국이 찬성하고, 북한·쿠바·리비아 등 3개국은 기권했다. 반대는 없었다. 당시 유엔은 이 조항에 대해 “대부분 회원국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5년 유엔 세계정상회의에서는 1995년 결의와 관련해 “우리의 공동 미래를 내다보며”, “유엔헌장 제53조, 77조, 107조의 ‘적국’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기로 결의한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이후 유엔 헌장 개정에 안보리 상임 이사국 5개국 모두를 포함한 전체 회원국 3분의 2 이상이 자국 헌법에 따라 비준을 받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개정 절차가 완료되지 않으면서 현재까지 해당 조항이 그대로 남은 상황이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이런 상황을 고려해 유엔에서 “일본은 유엔 가입 뒤 ‘전수방위’(공격을 받은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 원칙 아래 평화 국가로서 국제사회에 일관되게 기여해 왔다”며 “지난 70년간 유엔 활동에 크게 공헌해온 일본의 자부심과 명예를 걸고 (구 적국 조항 삭제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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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주일여 뒤인 28일 중국이 유엔 일반토의에서 답변권을 행사하면서 다카이치 총리 주장을 문제 삼았다. 쑨레이 중국 유엔대표부 부대표는 “다카이치 정부는 일본의 역사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왔으며 (…) 일본의 ‘재군비화’가 지역 및 세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일본의 ‘적국 조항’ 삭제 요구에 대해 중국은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적국 조항’은 파시즘과 군국주의가 다시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중요한 장치”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북한 대표도 답변권을 행사해 “일본은 유엔헌장에 따라 여전히 적국”이라며 “일본이 전쟁 국가로의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일본 쪽에선 우메쓰 시게루 주유엔 일본대표부 부대표가 “일본의 방위력은 안전 확보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이며 전수방위 원칙과 비핵 3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며 1995년 ‘적국 조항’이 사문화됐다고 인정한 유엔 결의 당시 중국도 찬성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도 29일 외무성 브리핑에서 “유엔 안보리 개혁과 함께 ‘구적국 조항’의 삭제 실현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적국 조항’ 문제를 원활하게 풀기 위해서라도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 ‘더 디플로맷’은 29일 “일본 정부가 ‘적국 조항’이 법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무의미해지기를 원한다면 이 조항이 ‘구시대적’이라는 점을 유엔 회원국에 설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적국 조항’은 구시대의 유물일지 모르지만 이를 둘러싼 논쟁은 역사와 국가 정체성, 전후 국제 질서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사이의 미해결된 정치적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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