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없이 달렸다, 온갖 생각에 치이다 문득 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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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직 2㎞밖에 안 뛰었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나를 괴롭힌 건 터질 듯한 심장이나 삐걱거리는 무릎 따위가 아니었다. 끝 모를 지루함이었다. 5㎞를 뛰는 동안 손목시계를 열번쯤 들여다봤다. ‘이제 겨우 절반.’ 분명 한참을 달린 것 같은데 시계 속 숫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달리기는 체력의 운동이라 믿었는데, 막상 해보니 그것은 철저히 인내심의 시험장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인내심이라는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결국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처음엔 신나는 음악, 다음엔 팟캐스트, 나중에는 유튜브 강의까지 귓속에 밀어 넣었다. 무언가가 끊임없이 귓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어야 비로소 시간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1년 가까이 이어폰 없이 달린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달리기를 한 게 아니라, 달리기를 견디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나만 유별났던 것도 아닌 것이, 아침 강변에서 마주치는 러너들의 귀에도 대부분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하루의 빈틈마다 무언가를 채워 넣으며 살고 있었다. 눈을 뜨면 휴대전화부터 찾고, 걷는 동안에 뭔가를 들어야 했고, 밥을 먹을 땐 영상을 틀어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고작 30초 동안에도 손가락은 습관처럼 스마트폰 화면 위를 스크롤하고 있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빈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한다. 삶에 작은 여백이라도 보일라치면, 무어라도 조급하게 채워 넣지 않으면 안 되는 병에 걸린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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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 빈틈을 채울 것들을 만들어온 사람이다. 방송국에서 17년을 일했고, 지금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누군가의 출근길 20분, 잠들기 전 10분, 점심 메뉴가 나오기 전 1분,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무언가를 채워 넣는 일을 해왔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 빈틈을 좀 비워두자고 말하려니,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건 안다. 술집 주인이 금주를 권하는 격이랄까. 그래도 써보려 한다. 채우는 일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 비어 있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도 조금은 알게 됐으니까.
달리기가 조금은 익숙해진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달리러 나섰는데, 강변에 도착해서야 이어폰을 두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서 챙겨 나올까도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귀찮았다. 그냥 뛰기로 했다. 한동안은 어색했다. 늘 무언가 흘러나오던 귀가 너무나 조용하고 허전했다. 음악이 사라진 자리를 곧바로 채운 건 거칠어진 내 숨소리와, 운동화가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발소리였다. 하나, 둘, 하나, 둘. 이어폰이라는 벽이 사라지자 세상의 소리들이 고스란히 밀려왔다. 내 옆을 스쳐 가는 자전거 바퀴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새의 지저귐, 커다란 물고기가 강물 위로 뛰어올랐다 첨벙첨벙하고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풀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 평소라면 팟캐스트 소리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소리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들이 나쁘지 않았다. 음악처럼 나를 끌고 가지도, 팟캐스트처럼 뭔가를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오랫동안 거기 있었을 것 같은 소리일 뿐이었다. 1년 가까이 달린 강변인데, 이 강에 그렇게 큰 물고기가 산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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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맑아지니 이번에는 또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서. 이어폰이 빠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내 안에서 엉켜 있던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월요일 아침의 민원 창구 같았다. 회사에서 끝내지 못한 일이 머리채를 잡았고, 며칠 전에 뱉었던 쓸데없는 말이 불쑥 튀어나와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그 말은 대체 왜 했을까. 아무리 되짚어 봐도 안 해도 될 말이었다. 내일 해야 할 일, 잊고 살았던 오래전 기억까지. 생각에는 앞뒤도, 순서도 없었다. 다들 자기가 제일 급하다고 떠들었다. 그 요란함은 정말 버거웠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를 더듬었지만, 당연히 이어폰은 없었다. 머릿속이 이토록 시끄러운 적이 없었다. 귀찮아서 안 돌아간 그 길을, 이번엔 뛰어서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매번 이런 식이었다. 골치 아픈 일이 떠오르면 서둘러 귀를 막고 다른 소리로 덮어버렸다.
‘아, 그래서 내가 계속 뭔가를 듣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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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좋아서도, 남의 수다가 재밌어서도 아니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귓속을 채우며 나는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도망치는 데는 꽤 소질이 있었다. 적어도 달리기 실력보다는 나았다. 어쩌면 나는 떠오르는 생각마다 답을 내야 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생각 하나하나가 숙제처럼 무거웠고, 차라리 덮어버리는 편이 쉬웠다. 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나는 여전히 숙제를 미루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덮을 이어폰이 없었다. 숙제를 미룰 핑계가 사라진 셈이다. 할 수 없이 계속 발을 구르며, 이리저리 부딪히는 생각들을 그냥 내버려뒀다. 역시나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나가 지나가면 또 하나가 떠올랐고, 잊고 있던 일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계속 달리고 있으니 그것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됐다.
조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생각이 어느새 다른 생각에 밀려났고, 그 생각도 또 다른 생각 뒤로 물러났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달라진 것도 별로 없었다. 생각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다만 더는 나를 붙잡고 있지 않았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생각은 꼭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이었다. 달리는 동안 스쳐 가는 풍경을 하나하나 붙잡지 않듯이. 그렇게 몇분을 더 달렸다. 머릿속이 조금 조용해지자, 비로소 강변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강변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앞에서 누군가 달리고 있었고, 자전거가 몇대 지나갔고, 강물은 늘 그렇듯 제 속도로 흘렀다. 편집실이었다면 통째로 잘려나갔을 몇십분이었다. 내 휴대전화를 울릴 만한 세상의 요란한 알림도, 나를 부르는 급한 연락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도 쓸쓸하지 않았다.
앞서 나는 사람들의 일상에 무언가를 채워 넣는 일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채워 넣는 일을 완성하기 위해, 편집실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역설적이게도 ‘자르는 일’이었다. 출연자가 말을 고르느라 머뭇거리는 2초, 대답하기 전에 숨을 고르는 1초, 진행자가 다음 질문지를 뒤적이는 3초. 시청자에게 채널을 돌릴 틈을 주지 않으려고, 나는 그런 여백을 찾아내는 대로 족족 잘라냈다. 그렇게 다듬은 화면은 빈틈없이 매끄러웠다. 그런데 가끔 원본을 다시 돌려 보면, 정작 사람 냄새가 나는 장면은 내가 잘라낸 그 틈에 있었다. 말을 고르다 멈칫하는 얼굴, 대답 대신 새어 나온 짧은 한숨 같은 것들. 삶도 그렇지 않을까. 굳이 채우지 않아서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순간들, 그 틈에서 우리는 가장 우리다워진다. 어쩌면 내 하루도 그렇게 편집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빈틈없이 매끄럽게, 그러나 어딘가 내가 빠진 채로.
그 뒤로도 나는 대부분 이어폰을 끼고 달렸다. 다만 그날의 강변이 가끔 생각났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시간을 전혀 뜻밖의 곳에서 다시 만났다. 풀코스 마라톤 한가운데서였다. 출발선은 함성과 음악으로 요란했다. 하지만 25㎞쯤 지나자 코스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수백명이 나란히 달리는데 들리는 건 발소리와 숨소리뿐이었다.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고, 다들 자기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마라톤 중계 카메라는 늘 선두만 따라간다. 우리 같은 사람들의 25㎞는 어디에도 방송되지 않는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잘라낼 것도 없는 시간. 그건 편집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모두가 혼자인데, 아무도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침묵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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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나를 혼자 있게 한다. 그리고 혼자가 되어야 비로소 들리는 것들이 있다. 이어폰 없이 달리고 돌아온 아침이면, 샤워를 하고 나와도 세상은 그대로다. 끝내지 못한 일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답장하지 않은 메시지도 제자리에 있다. 다만 그것들을 드는 방법이 조금 달라져 있다. 무게는 그대로인데,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 알게 된 느낌이랄까.
늘 이어폰을 끼고 달리는 사람이라면, 처음 10분만 빼보길 권한다. 1시간 전부가 아니라 10분이면 된다. 아마 머릿속이 시끄러울 것이다. 그래도 조금만 같이 달려주면, 그것들은 하나둘 지나간다. 덤으로 옆을 스치는 자전거 소리도 들린다. 생각이 몰려오면 몰려오게 두고, 지나가면 지나가게 두면 된다. 물론 지금도 나는 이어폰을 자주 낀다. 긴 거리를 뛰는 날엔 음악이 필요하고, 느긋한 날엔 팟캐스트가 좋은 동행이 된다. 빈틈을 채우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 없다. 다만 일주일에 한두번은, 일부러 이어폰을 두고 현관문을 나선다. 이제는 가끔, 내 안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이어폰을 뺀다. 이어폰 없이 달리는 날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일도 줄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 벌써 5㎞나 왔네. 세상은 오늘도 하루 종일 무언가를 들려줄 것이다. 그중 얼마쯤은, 아마 내가 만든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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