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눈속임 예술’ 파리에 가다…기메박물관서 ‘책거리’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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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틀 잡힌 정물화 같지만 원근법이 어긋나고 물건들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18~19세기 책거리 민화가 프랑스 명문 미술관의 대형 전시회 주인공이 됐다.
루브르박물관과 더불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가 뮤지엄인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은 16일(현지시각) 특별전 ‘착시의 지식, 한국: 18~20세기’(내년 1월4일까지)를 시작했다. 조선 후기 왕실부터 민간까지 널리 유행했던 고유의 정물회화 양식인 ‘책거리’(책가도)를 조명하는 기획전으로, 박물관 쪽이 올해를 ‘한국의 해’로 지정해 선보이는 하반기 핵심 전시다. 책거리 그림은 2022년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에서 특별전이 열린 전례가 있지만, 프랑스 국가 박물관에서 집중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전시는 모두 네 영역으로 나눠 조선 왕실의 학문적 공간부터 민중과 서민의 상상력이 넘치는 꿈의 영역까지 책거리의 세계를 보여준다. 1부는 18세기 후반 소실점에 기반한 서양 원근법과 음영법이 조선의 전통 회화 양식과 어우러져 생겨난 독창적인 정물회화 ‘책거리’의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탐구하면서 책과 지식을 중시했던 당대 조선 문화사를 조명한다. 문예부흥을 이끈 정조 임금(재위 1776~1800)이 1791년 어좌 뒤에 책가도 병풍을 놓고 화원들에게 제작을 독려했던 역사적 배경을 살핀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왕실 유물로 책거리 최고 명품으로 첫손 꼽히는 ‘책가도 병풍’이 핵심 출품작으로 나와 처음 유럽 관객 앞에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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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부는 청나라의 다보격(도자기·골동품 진열장) 전통과 서양 선교사들로부터 유입된 르네상스의 소실점 중심 원근법이 조선의 상상력과 어떻게 결합했는지 동서양 문물 교류를 먼저 짚는다. 이어 조선 왕실에서 시작된 책가도가 사대부와 민간(민화)으로 확산되면서 자유롭게 변모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서가의 틀거지를 벗어나 원근을 무시하고 책과 기물을 자유롭게 부유하는 모양새로 배치한 ‘책거리’ 그림들의 특징적 면모와 당대 조선 사회의 다기한 욕망과 현세의 복을 상징하는 꽃, 과일, 장식 공예품 등이 그림 속에 녹아드는 단면들도 비춘다.
그림 속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도자기, 청동기, 서책, 병풍, 생활용품 등의 실물을 공간에 입체적으로 연출해 옛적 서재에 들어온 듯한 ‘눈속임’(트롱프뢰유) 예술의 착시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박물관 쪽은 밝혔다. 한국 현대미술 대가 이우환 작가가 30여년 전 기증한 ‘책거리 6폭 병풍’ 등 민화들이 출품작으로 나온 점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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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기메동양박물관은 아시아 예술품 6만여점을 소장한 유럽 최대 동양 미술 전문 박물관이다. 19~20세기 리옹 출신 사업가 에밀 기메가 수집한 아시아 유물과 개인 소장품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면서 컬렉션 역사가 시작됐으며, 한국 문화유산과 중국·일본·동남아 불상 등을 비롯한 다채로운 아시아권 유물을 소장·전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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