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부 장관 지명 ‘트라우마’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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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 사회정책·젠더팀장
“성평등가족부를 대하는 이 정부의 태도에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에요. 교체 이유도 모르겠고, 너무 부처를 홀대하는 것 같아요.”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용혜인 의원이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용 후보자 지명 이후 벌어진 ‘부적격’ 논란은 많은 이에게 이재명 정부에서 처음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강선우 의원의 낙마를 떠올린다. 당시는 여성가족부 장관 자리가 16개월간 공석으로 비어 있던 때였다. 가뜩이나 예산 규모도 2조원 남짓으로 작은 조직인 여성가족부는 전임 정부가 ‘폐지’ 공약을 내걸며 더욱 위태롭던 차였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얼른 채워졌어야 할 자리는 전문성보다는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가 지명의 이유로 보이던 강 후보자의 ‘갑질 논란’으로 석달 더 비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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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원민경 장관이 임명돼 조직을 안정화하며 일을 추진하던 찰나 당사자도 몰랐던 장관 교체 소식이 들려왔다. 지명 2주 만에 용 후보자도 사퇴에 이르렀다. 원내 의원이 1명인 기본소득당의 사정을 고려해달라며 장관직과 의원직을 겸직하겠다는 그의 입장이 거센 비판을 받았다. 2010년대 노동당 시절 ‘비선 조직’에서 제기된 성차별 문화와 그로 인한 피해를 고발하는 동료들을 외면했다는 폭로가 2018년 이후 다시 한번 제기됐다. 기본소득당을 가족 정당처럼 운영했다는 지적도 매서웠다.
용 후보자는 지난 10일 제기된 갖은 의혹들을 하나하나 반박하고, ‘성차별 문화를 외면했다’는 고발은 부인하며 “청문회를 열어달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조차도 (자신을 향한) 억측에 휩쓸렸다”며 비판했다. 기자회견 이후 용 후보자를 향한 민주당의 온도, 여론의 온도는 더 싸늘해졌다. 민주당의 손을 잡고 국회에 입성한 용 후보자는 민주당의 단호한 ‘결단 요청’을 받고 장관 후보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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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용 후보자가 장관 후보자 자리에서 떠밀리듯 내려온 지금, 활동가가 말한 ‘트라우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결은 조금 다르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성평등부 장관을 호명할 때마다 자주 뒷목을 잡았다. 지난해 10월 국무회의가 대표적이다. “여성가족부 장관 계세요? 아, 성평등가족부로 바뀌었죠.” 대통령이 취임 한달째인 원 장관을 불러 말했다. “특정한 영역에서는 예외적으로 남성들이 차별받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 부분도 잘 챙겨보자.” ‘남성 역차별’을 연구해보라는 대통령의 주문은 올해 초까지 네차례 이어졌다. 원 장관은 대통령의 주문에 “인식의 격차가 있는 것 같다”고 ‘로키’로 응하며 다소 형식적인 ‘남녀 청년 간담회’를 이어갔다.
대통령이 말한 ‘극히 예외적으로 남성들이 차별받는 부분’은 실체가 있을까. 학자들에 따르면 ‘남성 역차별은’ 그야말로 인식의 격차에 가깝다. 경제적 양극화나 일자리 감소, 노동의 질 하락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른 고통과 분노를 ‘여성’ 혹은 ‘약자’에게 투사하는 현상인 ‘백래시’(수전 팔루디)는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999년 군복무 가산점 제도가 위헌 결정을 받으면서 가시화됐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할 수 있던 환경에서 ‘대학 졸업’만으로는 취업이 어렵고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어려운 상태로 이행해갔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이런 상황에서 군 가산점제의 폐지는 청년 남성의 분노가 향하는 과녁의 구실을 톡톡히 했다”(‘백래시 정치’, 동녘)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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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 등의 결과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일부 구간이 평평해진 것을 ‘역차별’로 인식하고 그 책임을 약자에게로 돌리는 현상을 ‘정책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은 뒷목을 잡게 한다.
용 후보자의 지명은 대통령의 주문이 옳든 그르든 잘 이행할 것처럼 보이는 인선이라는 점에서, 전문성보다 친소관계를 고려한 대통령의 성평등부 장관 지명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용 후보자가 사퇴한 지금 바라는 것은 이런 인선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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