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 시의 세계]노벨상
나는 덫에 갇힌 짐승처럼 끝장났다.
어딘가에 있을 사람들, 자유, 빛.
그러나 나를 추적하는 시끄러운 소리.
내가 밖으로 나갈 길은 없다.
어두운 숲과 연못 기슭,
쓰러진 전나무의 통나무.
길은 사방으로 잘려 있다.
무슨 일이 닥치든 상관없다.
내가 무슨 더러운 일을 했단 말인가?
내가 살인자인가? 악당인가?
나는 내 땅의 아름다움을 써서
온 세상이 울게 만들었을 뿐.
거의 무덤가에서 그래도 나는
그때가, 선한 정신이
비겁하고 사악한 세력을 물리칠
그날이 오리라 믿는다.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
노벨 문학상 발표일이 가까워지니 이 시가 떠오른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장편 <닥터 지바고>를 소련에서 출간하기 어려워 1957년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간했다. 이듬해 그는 국제적 반향을 일으키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소련 당국의 위협과 작가동맹의 제명 때문에 수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시골 별장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던 시기에 쓴 이 시는 시집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최종술 옮김)에 실려 있다. 가장 영광스러워야 할 노벨상이 작가의 인생 전체를 “덫에 갇힌 짐승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억압적인 체제 “밖으로 나갈 길은 없”고, “길은 사방으로 잘려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시인은 “내가 무슨 더러운 일을 했단 말인가?” 항변한다. 살인자도 악당도 아닌데, “내 땅의 아름다움을 써서 온 세상이 울게 만들었을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선한 정신이 비겁하고 사악한 세력을 물리칠 그날이 오리라”는 믿음으로 시는 끝난다. 그런데 이 시가 영국 신문에 실리게 되면서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그야말로 냉전기의 갈등이 노벨상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1989년에야 파스테르나크는 사후 복권됐고, 그의 아들이 대신 노벨상 메달을 받았다. 요즘은 노벨 문학상의 정치적 편향성이 강하지 않은 편이지만, 여전히 문학성 외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고려된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심사위원들의 셈법은 올해도 꽤 복잡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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