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을 향한 연대의 몸짓…“어떤 투쟁의 기록”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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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로부터 멀리 떨어져’는 지난 10월 말 출간과 동시에 인터넷서점 알라딘 종합 10위권 안으로 진출했다. 책을 펴낸 출판공동체 ‘편않’ 지다율 편집자는 “연구자, 활동가, 출판인, 저널리스트까지 국내 필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냈다는 데서 독자들이 크게 반응해주는 것 같다”고 했다.
공저자로 정치철학자 배세진, 문학평론가 최가은, 방송국 교양피디 오학준, 과학기술학 연구자 강정섭, 영화감독이자 시각예술가 백종관, 철학 연구자 이민혜,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한유리, 그리고 편집자 지다율까지 8명이 이름을 올렸다. ‘팔레스타인 시선집’에 대한 응답으로 47명의 한국 시인이 쓴 ‘응답의 시’가 있었지만 한국 필자들이 쓴 정치적 에세이를 묶은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팔레스타인을 향한 폭력과 학살을 멀리서 바라보는 무력감, 학살을 학살이라 부르지 못하는 번역과 명명의 정치학, ‘우리 안의 팔레스타인’을 발견하는 시선을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책 말미엔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가 이탈리아 사상사 연구자 루카 살차와 나눈 대담 ‘가자를 사유하다’도 실렸다. 발리바르는 ‘침묵이 그 자체로 공범’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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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자 중 6명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공동기획자 배세진 박사의 제안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그는 지난해 ‘금붕어의 철학’으로 ‘지금 여기’의 사유와 실천을 촉구한 정치철학자다.
“2023년 10월7일 알아크사 홍수 작전이 벌어진 뒤 이 끔찍한 일을 보고, 다들 그랬겠지만 저도 힘들어서, 함께 모여 책이라도 읽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2025년 10월부터 함께 공부하는 세미나를 제안했고 지다율 편집자님과 꽤 즉흥적인 출간 기획을 했습니다.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요.” (배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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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로부터 멀리 떨어져’라는 책 제목은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에세이 영화’라는 장르를 개척한 크리스 마커가 제작한 영화 ‘베트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파 프롬 베트남)에서 나왔다. 마커의 작업을 중심으로 ‘다시 쓰는 투쟁의 기록’이라는 글을 쓴 백종관 영화감독은 시간이 날 때마다 팔레스타인 집회와 세미나 등에 참여해왔다.
“마커는 자신의 위치에서 어떻게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지 묻는 일로 이 영화를 기획했습니다. 마커가 ‘거리’와 ‘책임’ 사이의 긴장에서 ‘형식’을 발명했듯, 저희의 글쓰기도,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조용히 써 내려가야 할 어떤 투쟁의 기록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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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가은 문학평론가는 “글을 쓰고 읽는 게 업인 사람들이 다들 팔레스타인을 보면서 느끼는 무력감, 자괴감이 있다”고 했다. 최 평론가는 팔레스타인과 연결되기 위해 “대화와 사유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고, 글쓰기라는 끈을 붙잡았다. 이번 책을 쓰면서 팔레스타인계 영국 작가인 이사벨라 함마드의 ‘낯선 이를 알아보기’ 등을 읽고, “타자를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문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과 이주노동자를 다룬 소설을 같이 읽어요. 관련 기사를 띄워주고 ‘실제 있는 일’이라고 하면 깜짝 놀랍니다. 세상에 있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하는 데 ‘서사’가 되게 큰 힘이구나, 새삼 깨닫습니다. ‘팔레스타인 시선집’과 이에 응하는 한국 시인들의 시(‘응답의 시’)를 보고도 문학의 힘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은 완결된 서사가 아니라 ‘순간’을 갱신해 나가고 있고, 응답하는 우리도 서사를 마련하며 갱신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원에서 과학기술학을 공부하고 있는 강정섭 연구자는 ‘알아크사 홍수 작전’ 이후 죄스러우며 어리둥절한 감정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철학이 순수하게 이성과 사고의 힘만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사변’이 아니라 현실과 치열한 접촉 속에 만들어진다고 알게 되고,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세미나에 참석해 공부했습니다. 선주민을 쫓아내거나 동화시키는 ‘정착민 식민주의’를 알지 못하면 근대화, 과학기술도 전체적인 이해를 못 하리라 여기고 있어요. 세계와 한국을 이해하는 데 팔레스타인 문제가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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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 일하는 오학준 피디는 팔레스타인 학살에 대해 상업 방송국 ‘교양 피디’라는 자리에서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부조화, 무기력함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공저자로 참여하게 된 까닭은 “기자들이 너무 많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가 팔레스타인에 가서 진실을 생산하고 목숨을 바친 거죠. 제가 속한 교양국에서 함께할 방법이나, 저널리스트로서의 연대감을 찾기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그 죽음’에 대해 말만 하면서 저널리즘을 입에 담는 게 가능한가, 접속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절박한 마음으로 연결하려고 썼습니다. 나도 가서 목숨을 던질 수 있을까, 수만번 자문했던 것 같아요.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잠깐 침묵) 가게 되면 가야죠. 가려고 쓴 거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오학준)
이 책의 추천사는 지난 5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는 국제 구호선단에 탑승했다가 배가 나포되고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김동현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 활동가가 썼다. 김 활동가는 이 세미나의 일원이기도 했다.
“(김동현 활동가가) 조용히 비밀이라면서, 가자로 간다는 거예요. 배를 타고 가봤자 학살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 효과가 있습니다. 김동현과 해초(김아현)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잖아요. 뎡야핑도 ‘연대자의 윤리’에서 부채감과 무결함을 내려놓고 현실적 행동에 나서자고 말했지만, 영화든, 문학이든, 논문이든, 기사든, 무의미한 게 전혀 아닙니다.” (배세진)
배 박사는 지식인의 성채가 되어버린 아카데미아 안에 “‘자기 밥 세계’에 몰두한 사람들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있다고 비판했다. 강정섭 연구자는 이에 동의하면서 이스라엘이 학교를 집중 파괴하고 강의실과 도서관을 폐허로 만드는 ‘스콜라티사이드’를 거론했다. “학교에서도 답답해하는 동료들이 많은데, 함께 공부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있습니다. 과학기술학에서 인프라가 굉장히 중요해요, 파괴된 팔레스타인 인프라, 이스라엘의 인공지능 감시 기술, 유대인의 단일한 민족적 기원에 대한 믿음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 팔레스타인 학자들을 말살하는 ‘스콜라티사이드’ 등도 연구 주제가 될 수 있겠고요.”
마지막으로 백종관 감독은 ‘베트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에서 북베트남으로 들어간 참여자들이 갖고 간 편지를 읽어줬다.
“편지 내용을 잠깐 들려드릴게요. ‘우리의 행위는 칭찬받을 만한 행동도, 영웅적인 행동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연대라는 단어에 조금의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구체적인 시도일 뿐입니다.’ 문학, 영화, 글쓰기일 수도 있고, 집회에 나가서 잠깐 서 있는 것도 그 ‘구체적인 시도’일 것 같아요. 저희가 글을 쓴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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