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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November 6, 2026

아버지에게 달리기 배우고…달린다, ‘다른 버전의 나’ 찾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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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톰프슨과 아버지를 이어준 것을 달리기였다. 그는 달리기를 하며 아버지와 다른 길로 나아간다. ⓒ David Paz
니컬러스 톰프슨과 아버지를 이어준 것을 달리기였다. 그는 달리기를 하며 아버지와 다른 길로 나아간다. ⓒ David P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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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많은 이들의 일상이 됐고, 달리기를 다룬 책도 계속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달리기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는 서사를 담은 책은 드물다. ‘브라보, 나의 달리기’(원제 The Running Ground)를 보며 서울 한강 변에서 유아차를 밀며 달리는 남성들이 떠올랐다. 아기가 자라면 아버지는 달리기를 가르쳐 줄까, 아이는 달리기를 좋아할까, 달리기는 대학 가서 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 성인이 된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달리는 게 가능한가 등등….

미국의 대표적 진보 잡지 ‘디 애틀랜틱’ 최고경영자인 니컬러스 톰프슨(51)은 6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달리기를 했다. 나이 마흔에 돌연 커밍아웃을 하고 아내와 세 자녀를 떠난 뒤 스스로 무너져간 아버지와 말이다. 책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뼈대로 달리기가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얘기한다. 알코올·성 중독자가 된 아버지는 말년에 자살 협박까지 하면서 금전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이런 아버지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있는 그대로 아버지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와 아버지를 이어준 달리기 덕분이었다.

꼭 1마일(1.6㎞)을 채운 첫 달리기에서 6살 아이가 느낀 것은 “승리감”이었다. 10대 시절 학교에서 장거리 재능을 발견했지만, 20대의 달리기는 “짝사랑”으로 끝났다. 러너들의 꿈이라는 ‘마라톤 서브 3’(완주 3시간 이내)를 30대 초에 이뤘지만 곧바로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고통의 시간을 거쳐 저자는 “시련을 과거 속에 묻어버리는 유일한 방법”으로 다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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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남자의 삶은 이 나이 때부터 무너져 내린다.” 40살 생일 파티 도중 저자의 페이스북에 아버지의 공개 메시지가 올라온다. ‘나처럼 살지 말라’는 바람이겠지만, 당혹스럽다. 그의 아버지는 오클라호마 출신으로 음악과 공부를 좋아했고, 복싱 선수 출신인 아버지를 힘들어했다. 집을 떠나 집요하게 공부하고 리더의 재능과 배포를 한껏 발휘해 워싱턴에서 엘리트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대학교수로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하던 때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깨달았고, 그는 그토록 바랐던 사회적 성공의 윗자락에서 내려와 혼자 살았다.

브라보, 나의 달리기 l 니컬러스 톰프슨 지음, 홍은택 옮김, 윌북, 1만9800원
브라보, 나의 달리기 l 니컬러스 톰프슨 지음, 홍은택 옮김, 윌북, 1만9800원

자식들과 연을 끊은 건 아니다. 당시 7살이던 저자는 아버지와 자주 만났고, 함께 달렸다. 아버지는 그가 13살 때 동성애자가 무엇인지 설명해줬다. 취업을 준비하던 20대에는 아버지 집에 머물며 같이 책을 쓰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찾아와 축하해주었고, 동남아로 떠난 뒤에는 편지와 전화를 주고받았다. 2015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뒤 저자는 달리기에 더 힘을 쏟는다. 나이키의 세계 최고 수준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해 마라톤 기록을 2시간29분대로 끌어올렸다. 그는 더 빠르게 달리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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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2시간40분대에 오래 머물러 있었던 이유를 짚어보다가 그는 문득 이유를 떠올린다. 그에게는 “정말 원했던 다른 무언가”가 있었고, 그건 “암에 걸리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를 매해 속도로 확인하려고 달렸고, 그 때문에 “모든 걸 그대로 유지할 만큼만” 달렸던 것이다. 그리고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삶에서는 어려운 일을 헤쳐나가는 과정에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미래’를 떠올린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서로 다른 버전의 자신이 있지 않은가. 아직 찾지 못한 내가 있지 않을까.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은 달리기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50㎞·80㎞·100㎞ 울트라마라톤으로 무대를 옮겨 달리고 주저앉고 포기하고 다시 달리기를 되풀이한다. 자신의 내면을 발견했으나 자기 삶을 파괴하고만 아버지와 달리 그는 “완전히 새로운 달리기 방식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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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회고록의 성격을 띠지만, 달리기에 대한 정보와 과학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독자에게 읽는 힘을 불어넣는다. 자세 교정과 식습관, 신발, 뇌의 영향 등 과학적 훈련법을 경험으로 설명한다. 어떻게 마라톤의 마지막에 ‘전력’ 질주를 할 수 있는지, 공기 저항을 줄일 때 왜 앞쪽 러너뿐 아니라 뒤쪽 러너도 도움이 되는지 등 궁금증을 자극한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해 전하는 5편의 이야기에 울림이 있다. 개 한마리와 함께 동부에서 태평양까지 달려보고 여성 참여가 금지된 보스턴마라톤에 몰래 들어가 완주한 보비 깁, 파킨슨병에 걸리고도 20여년간 달려온 작은 섬마을 목수 마이클 웨스트팔 등의 ‘러닝 인생’이 압축돼 있다. 달리기는 무엇인가, 왜 달리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은 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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