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AI는 구세계의 극단적인 폭력
우리나라의 2분기 무역흑자가 1166억달러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독일과 일본의 흑자 규모를 합친 것보다 많고, 중국의 1937억2000만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바야흐로 국운의 상승기인가? 유례없는 경상수지 흑자는 물론 반도체 덕분이다. 그것도 반도체 가격의 폭등 때문이다. 아무튼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이 이재명 대통령이 페이스북에서 말한 것처럼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이끄는 선도국가”로 크게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나와 내 주위에서는 아무 실감이 없을까?)
프랑스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 유럽으로 번져나갔는데, 이 시위의 사회적 배경은 일차적으로 불평등 때문으로 드러났다. 국내에 <21세기 자본>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지난 10월17일자 르몽드에 기고한 글에서 “프랑스가 이토록 부유했던 적은 없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오직 분배의 문제다”라고 썼다 한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국가들이 예전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그동안 불평등을 심화시킴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삶의 토대를 망가뜨림으로써 민주주의마저 큰 위험에 빠뜨렸다. 프랑스에서의 시위는 이 문제에 관한 전 세계 시민의 결단을 촉구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경제성장은 불평등 전제로만 가능
우파든 좌파든 별 차이 없이 내세우는 것이 경제성장인데 경제성장만이 살길이라는 이 상투적인 인식은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도 “경제성장이 필요한 이유는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경제성장은 불평등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법이며 이 불평등의 가장 극단적인 결과가 기후위기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분배 정책은 전제로서의 불평등을 인정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몇해 전까지만 경제성장이 기후위기를 가속시킨다는 논의가 있었고 자연스레 ‘탈성장’이 이야기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기후위기와 경제성장 문제가 분리됐다. 이는 새로운 상품인 인공지능(AI)의 부상과 맞물린다. 이때부터 세계는 빠르게 기후위기 문제를 후순위로 밀어냈고 심지어는 AI가 기후위기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궤변이 등장하기도 했다.
기후위기라는 절대적 문제가 AI라는 현실적인 경제 문제로 대체돼버린 것이다. AI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말들 하지만 성장주의의 틀 안에 머물러 있는 한 그렇게 보일 뿐이다. 하지만 장구한 생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또는 인간 존재의 측면에서 보면 AI는 너무도 위험한 ‘물건’이다. 그런데 때마침 대한민국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이 AI를 모든 가치 위에 올려뒀다. 사실 한국이 올해 2분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돈을 많이 번 나라가 된 것은 결국 AI 산업 때문인데, 역설적이게도 AI 산업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본 개인들의 손실은 심각하다. 하지만 기업이 번 돈은 국가의 자랑이 돼도 국가의 독려를 믿고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인들이 본 손실은 언급되지 않는다.
맨부커상 수상 작가인 인도의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는 최근에 발표한 에세이 <지금, 그리고 그때의 묵시록>에서 앤트로픽에 자신의 작품이 침탈당한 사례에 관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의 장기가 적출당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향후 작가로서 자신의 언어가 AI의 언어를 피해 다녀야 할지 모른다는 존재론적 난관을 피력했다. 국가와 기업은 AI가 엄청난 신세계를 가져다줄 것처럼 말하지만, 로이의 말대로 AI는 ‘심장 채굴’과 ‘두뇌 채굴’, 즉 ‘생명 채굴’을 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로이는 AI가 지배하는 세상을 지난 세기의 식민지배와 비교하며 말한다. “식민지배는 언제나 반짝이는 선물을 들고 찾아온다. 그러나 AI는 우리 중 극소수만이 겨우 상상할 수 있는 종류의 식민지배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최종 목적지다.” 다시 말하면, AI의 본질은 인간의 정신과 감정, 나아가 신체 활동 자체를 상품으로 만들자는 것이며, 이제 자본주의 경제성장은 이것들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세며 환호성을 지르는 중이다. 그 돈이 어떤 돈인지 그리고 이 상황이 무엇을 초래할지에 대해 어떤 사유나 상상력도 없이 말이다.
극소수만 상상할 수 있는 식민지배
경제성장만이 진리인 자본주의가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만든 것도 모자라 AI까지 가세해 날조된 언어로 인간 존재 자체를 욕보이고 있음을 로이는 명징하게 꿰뚫어 봤다. 영국의 소설가 D H 로런스가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주인공 콘스턴스를 통해 기계문명이 능욕한 세상의 형해화된 말들, 즉 “진부한 단어와 구절들은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서 생명의 수액을 전부 빨아 없애버렸다”고 말했듯, 기계문명의 극단인 AI는 신세계의 새 지평이 아니라 구세계가 최후의 광기로 인간(성)을 짓밟는 극단적인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 인간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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