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언론의 ‘따옴표’는 면책부호가 아니다
언론 보도에서 따옴표는 취재원의 발언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기자의 서술과 발언 주체를 명확히 구분해 주는 유용한 도구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언론에서 따옴표는 언론이 져야 할 확인과 검증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패막이로 남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발언의 진위나 근거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옮겨도 언론이라는 공신력으로 유통되곤 한다. 여기에 자극적인 제목 부풀리기와 편향된 편집까지 더해지면서 여론은 왜곡되고 사회적 공론장은 혼탁해진다.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의 배경엔 언론의 상업적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특정 사실의 진위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일에는 많은 시간과 취재 노력이 들어간다. 반면 유명인이나 정치인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다. 한때 기자들이 정치 논객의 개인 SNS를 출입처처럼 들락거리고, 그의 이름을 딴 저널리즘이라는 비아냥이 나온 것 역시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영 간 정치적 편가르기가 심화할수록 이러한 부적절한 보도 관행은 더욱 두드러진다. 상대 진영으로 분류되던 인물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발언을 하면, 뉴스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핵심 쟁점의 사실 여부나 사회적 의미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직 자극적인 구절만 부각된다. 언론은 공적 쟁점에 대한 건전한 이해와 토론을 돕기는커녕, 진영 간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통로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인용 보도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무엇을 또 어느 대목을 인용하며, 어떤 맥락과 프레임 속에 배치하느냐에 있다. 인용구절 뒤에 숨어 자사의 정치적 관점이나 편향을 객관적 사실인 양 포장하는 도구로 쓴다면 저널리즘의 본령을 버리는 일이다. 언론 보도의 따옴표는 단지 발언의 출처를 표시하는 기호일 뿐이지만,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순간 대중에게는 진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언론은 인용한 내용의 진실성을 엄격하게 검증하고 보증할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세계 주요 언론들이 인용 보도에 까다롭고 엄격한 내부 원칙을 적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유시민 작가와 같이 영향력이 있는 인물의 정치적 발언을 보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의 발언은 여론과 현실 인식뿐 아니라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만큼 충분한 뉴스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이슈를 심도 있는 정책적 논의로 발전시키기보다 진영 간 공방의 단순 소재로 소비하거나, 자극적인 표현만 뽑아 보도한다면 시민들은 본질을 놓친 채 갈등과 대립 구도 자체에만 매몰되게 된다. 발언의 사실적 근거와 논리적 설득력을 짚어내고, 균형 있는 평가와 전후 맥락을 함께 제시해야만 시민들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유튜브가 공론장의 경쟁자로 부상한 오늘날 기존 언론의 진짜 경쟁력은 전달의 속도가 아니라 엄정하게 검증된 사실과 깊이 있는 맥락의 해석으로 구성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관점이다.
언론은 누군가의 말을 전달하는 중계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용의 종합적 의미를 부여하고, 숨은 맥락을 설명하며, 사실과 의견을 엄격히 구분함과 동시에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 건강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만들어 가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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