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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16, 2026

팔레스타인 뉴스 너머, 잘고도 장대한 삶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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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8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 후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민방위 대원들이 물을 뿌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5월28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 후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민방위 대원들이 물을 뿌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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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교차성 개념을 도입하고 발전시킨 킴벌리 크렌쇼는 억압이란 단순한 덧셈으로 합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며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이 발발한 지 만 3년이 된 지금 가자지구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현재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한 팔레스타인 여성의 자전적 산문이 우리에게 당도했다. 크렌쇼의 개념으로 보면 전쟁과 폭력, 죽음과 망명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과 종교와 문화가 여성의 삶을 속속들이 검열하는 곳에서 소녀로 살아가는 일을 단순하게 합산해서는 책의 저자 헤바 하이에크의 고통을 결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저자 역시 서문에서 “이 책은 지중해 동부 연안에 자리 잡은 조그만 우리의 도시에 관한 200만 가지의 살아 있는 기억 중 하나”라고 말문을 열며 기억과 경험의 일반성과 구체성을 교차시킨다. 폭발이 일상적이었던 유년의 교실에서 폭음이 들려오면 책상 밑으로 몸을 피했지만, 그곳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는 어느 부위에 새로운 털이 났는지, 키스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등등 여느 여자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깨어 있는 시간과 꿈꾸는 시간 사이에 l 헤바 하이에크 지음, 이명훈 옮김, 접촉면(2026)
깨어 있는 시간과 꿈꾸는 시간 사이에 l 헤바 하이에크 지음, 이명훈 옮김, 접촉면(2026)

좋은 회고록이 그렇듯이 이 책은 저자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배경 문화와 역사를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우리는 이 다면적인 산문을 읽고 저자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 망명 생활과 끊임없는 검열을 겪었으면서 동시에 딸이 동네 남자애들한테 러브레터를 받은 사실을 듣자마자 당장 그들을 찾아가 주먹을 날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손녀가 머리를 짧게 자르면 질색하고, 젊은 시절 자신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웠는지 자랑하며 손녀의 ‘여성성’을 단속하는 할머니는 어린 시절 짧은 치마와 탱크톱을 입고 다녔고, 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 시기에는 쫓기는 투사들을 침실에 숨겨 준 적도 있을 만큼 용맹한 젊은이였다. 또 저자에겐 1차 인티파다에서 팔을 잃고 쿠웨이트로 추방된 전력이 있는 고모가 있다. 망명 일자를 받아 놓은 저자가 52살이 된 고모에게 왜 다시 가자로 돌아왔냐고 묻자 고모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한다. “내가 팔을 잃었다고 해서 그 팔의 존재까지 잊어버린 건 아니야.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덧붙인다. “너는 나가서 세상을 봐. 이제는 내가 남아 있을 차례야.”

이주혜 소설가
이주혜 소설가

저자는 곧 망명을 떠나고 미국 오하이오주의 대학을 거쳐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작가이자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도 별안간 팔레스타인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 사람이 시오니스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공황과 섭식장애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다. 한마디로 저자는 전쟁을 피해 망명한 후에도 여전히 전쟁 중이고, 망명 중이다. 회고록을 쓰면서 저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 부모님도 우리를 낳기 전에 각자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던 열살의 어느 순간을 떠올린다. 고작 열살이었어도 그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이제 성인이 된 그가 우리에게 망명 이전의 삶을 기록해 전달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이주자 여성에게도 뉴스 헤드라인 너머에 시시콜콜하고도 장대한 삶이 있었다고. 지금도 그 삶은 진행 중이라고. 자신이 남아 있을 차례라고 말했던 저자의 고모처럼 이제 우리가 그의 전언에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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