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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0, 2026

“화날 땐 마음 속여서라도 도망가야”···[만나듣다]⑨활동가 주지 스님 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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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 광주 길상사 주지 스님 명선의 왼손 엄지 쪽 손등에 뭔가 쓰인 걸 봤다. 태국 불교권 일각의 문신 전통이 스리랑카에도 있는지 궁금했다. 무지에서 나온 질문에 그가 웃으며 답했다. “문신이 아니라 메모예요. 오늘 회의 때 멘트를 해야 하는데, 잊어버릴 거 같아 적어둔 거예요.” 손등에 이런 문구가 적혔다. “우리 동네, 오늘은 나누고 내일은 만드는 자리를 지금 시작합니다.” 인터뷰 직전 그가 들른 곳은 광산구 월곡2동 주민자치센터 회의다. 그는 이곳 이주민 대표 자치위원이다.

생의 고통 시달리는 이들 스스로 정답 꺼내게
계속 되묻고 들어주며 함께 정답 찾는 상담사
종교·국적 달라도 어려울 때 찾는 이들 많아

21일은 명선이 길상사 주지에 취임한 지 만 1년 되는 날이다. 호남 사찰에서 최초로 외국인 주지가 됐다. 자치위원은 1년간 진행한 여러 활동 중 하나다. 지난달 28일 길상사에서 만나 최근 활동부터 12세 출가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명선 스님은 한국인과 외국인, 다른 국적과 종교, 문화의 어울림을 늘 고민한다. 지역사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지난달 28일 인터뷰 사진 촬영 때 직전 주민자치센터 회의에서 사용한 ‘이주민 대표 라훌라’ 명찰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첫 출가 때 받은 법명을 활동할 때 종종 쓴다. 광주 | 김종목 기자

명선 스님은 한국인과 외국인, 다른 국적과 종교, 문화의 어울림을 늘 고민한다. 지역사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지난달 28일 인터뷰 사진 촬영 때 직전 주민자치센터 회의에서 사용한 ‘이주민 대표 라훌라’ 명찰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첫 출가 때 받은 법명을 활동할 때 종종 쓴다. 광주 | 김종목 기자

명선은 ‘활동가’이기도 했다. 재난이 발생하면 출동하는 동네 방재단원이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을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다. 생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의 말을 듣는 경청가이자 상담사다. 심리상담사 1급, 보육교사 2급, 사회복지사 2급 자격을 취득했다. 명선은 지난해 취임하며 길상사를 국적·문화·언어를 넘어선 ‘다문화 사찰’로 만들겠다고 했다. 어린이집과 템플스테이 공간도 마련하려 했다. 돈도, 사람도 모자라 염두에만 둔다. ‘다문화 사찰’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 지역은 개신교도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절에 찾아오는 불자가 많지 않다. 여러 국가 출신 불자들은 언어가 통하는 자국 출신 스님을 찾아간다. 명선은 이런 난관을 개의하지 않는 듯했다. 예불부터 회의 참석까지 그저 하루하루 수행하듯 맡은 일을 해나간다.

사람들이 ‘불교’ 외의 일로 종종 그를 찾는다. “종교가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온다”고 했다. 주로 하는 건 상담이다. 우울증을 겪는 이들, 가족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명선의 치유법은 불교적이다. 차 한잔 내주고 ‘들어주기’다.

“우울하면, 또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답답하고 화가 나죠. 죄책감도 생겨 자기 자신이나 누구를 미워하게 되죠. ‘참선하세요, 기도하세요’ 한다고 안 돼요. 이야기하다 보면, 잘 사는 게 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다 알아요. 상담하면서 그걸 계속 끄집어내려고 하죠. 정답을 그 사람 입에서 끌어내서 제가 확정시켜주는 거죠.”

이 문답도 수행이다. 자기 마음 깊은 곳의 뜻과 가르침, 성품을 들여다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주 노동자 착취 상담하며 해결 방안 모색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착취, 법만으로 해결 안돼

분노가 많은 이들에겐 “왜 화납니까, 뭐 하려고 화를 냅니까, 꼭 내야 합니까? 그게 중요합니까? 자꾸 되묻는다”고도 했다. 화를 참고, 붙잡고 있을 일만은 아니라고 했다. “화내면서 마음이 풀릴 때가 있어요. 막 소리 지르면 화 에너지가 빠져나가 시원해지죠. 그런데 화내더라도 누구한테 피해가 되지 않게, 또 그 피해가 나한테 오지 않게끔 해야 하죠. 나도 다른 사람도 피해 보지 않고 화가 소멸하는 게 기준이죠. 화가 나면 자기 마음을 속여서라도 화에서 도망가고, 피해 다녀야 해요. 조금 양보하고 조금 당하는 것도 방법이죠.”

괴로움을 직시하라고도 했다. “괴로움을 이겨내려고 수행하는 거잖아요. 그 괴로움이 뭔지 알아야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죠. 또 사람 인연은 우주를 통틀어 연결되는 건데, 이 인연을 이해해야 부처님 법을 이해할 수 있어요.”

계율도 강조한다. “계율을 지킨다는 것은 사람이 더 고통스럽고 위험에 빠지지 않게끔 자기만의 깨우침, 규칙으로 산다는 겁니다. 그 규칙 속에서 살아야 마음도 집중이 되죠. 나쁜 짓을 안 해야 마음이 편하잖아요. 편한 마음이어야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죠. 마음이 편하려면 행동을 잘해야 하고, 행동을 잘하는 게 바로 계율을 지키는 거예요.” 그는 “복잡한 마음에 시달리는 건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막 달려가는 자동차의 질주와도 같다”고 했다.

상담 사례 중엔 이주노동자 착취도 많다. “이주민이나 이주노동자는 언어 소통이 잘 안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예요. 자기 목소리를 내지도, 자기 뜻을 제대로 전달도 못해요. 상대방은 권력도 있으니까 마음대로 해요.” 비자 문제도 있다. “더 연장해야 하니까 사장님한테 잘 보여야 하죠. 사장님 말 듣고 견뎌야 해요. ‘내가 너희들 데리고 오려고 돈 많이 썼어’ 하며 월급도 안 주는 사장님도 있고요. 이렇게 당해도, 불이익을 받아도 변호사비가 비싸서 구하지도 못해요. 노동법, 체류법 때문에 다른 사업장으로 갈 수도 없어요. 갈 데가 없는 거야 이제…”

명선은 모든 한국인 사장들이 착취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기 사업을 성장하게끔 도와주는 사람들이잖아요. 돈 벌어주는 사람들이잖아요. 월급 잘 주고, 밥 잘 주고, 와이파이도 해주면 행복하게, 열심히 일하죠. 대부분 이렇게 일하며 살아요.” 그는 “(내가 보고 들은 기준으로 착취 등을 당하는) 이주노동자는 전체의 10~20% 정도”라고 했다.

명선은 착취가 인간 문제라고 본다. 그는 “꼭 이주민, 이주노동자라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라서 당하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 사회적 약자가 당한다”고 했다. “이런 일은 스리랑카에서도,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벌어진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한테도 벌어진다”며 이렇게 말했다. “빈틈 많은 사회법으로는 완치할 수 없어요. 인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거죠.”

한국서 정착 후 10년 넘게 산 광주 ‘제2의 고향’
스리랑커서도 정부 폭력에 고통받던 시기 있어
5·18민주화운동 ‘광주의 아픔’ 어떤 건지 알아

명선은 늘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이주민과 선주민의 어울림을 고민한다. 지난해 11월엔 여러 외국인 스님과 탁발 행사를 진행했다. 국적과 언어, 종교와 문화를 넘어서려는 의지도 담았다. 한국인 주민들이랑 소통하려는 수행이다. 늘 다른 종교, 다른 국적,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품으려 하는 것도 수행이다.

명선 스님은 지난달 28일 광주 길상사에서 수행과 활동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웃는 얼굴로 답했다. 광주 | 김종목 기자

명선 스님은 지난달 28일 광주 길상사에서 수행과 활동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웃는 얼굴로 답했다. 광주 | 김종목 기자

탁발은 상좌부(소승) 불교 전통의 수행 방식이다. 소승 불교의 스리랑카에서 처음 출가해 대승 불교의 한국에서 재출가한 명선은 대승과 소승 불교를 “부처님 법” 아래 한데 묶으려 한다. 2022년 그가 한국어로 써 제출한 동국대 석사 논문은 <‘청정도론(淸淨道論)’에 나타난 두타행(頭陀行) 연구>다. ‘청정도론’은 5세기 무렵 스리랑카 승려 붓다고사가 정리한 불교 수행론이다. 계율, 도덕과 두타행을 살핀다. “책은 청정한 길로 인도하는 길라잡이입니다. 수행하고, 마음 닦는 법을 가르칩니다.”

논문은 ‘대승과 소승’에 관한 명선의 화두를 담았다. 그가 처음 출가한 스리랑카는 소승 불교 전통이 강하다. “엄격하게 계율을 지키는 스님들도, 대중과 함께하는 스님들도 있어요. 갈등이 있죠. 두타행만 수행인 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두타행은 생활 편의와 집착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수행 방식이다. 탁발도 두타행 중 하나다. 금식하거나, 지붕 없는 돌 위에서 수행하거나 묘지에서 명상하는 등 극단적인 수행법도 있다. 명선은 이런 수행법을 현대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적용할지를 이 논문에서 풀었다.

공부하면 할수록 “소승과 대승을 구별하는 건 아상(我相)일 뿐이다. 부처님 법은 부처님 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공부하고 또 했다. “부처님 법은 똑같아요. 이 똑같은 법을 사람들은 너무 자기 생각대로만 받아들여요. 스리랑카 불교만 배우면 여기서 가르치는 것만 옳다고 하고, 다른 나라 불교들은 틀렸다고 하잖아요. 2000년 넘게 이어진 문화고, 전통이라 쉽게 바뀌지 않아요. 배워봐야 이게 틀린지 맞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대승 불교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한국에 왔다. 처음엔 한국에도 불교가 있는지 몰랐다. 스리랑카 켈라니아대학교에서 불교철학과 국제관계학을 공부할 때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프랑스어를 익혔다. 다른 외국어를 더 배우려 했는데, 수업 시간이 안 맞아 고른 게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한국어 수업이었다.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 불교도 알게 됐다. 국민대 교환학생 프로그램 참여차 2008년 2주 동안 방한했다.

그 시기 전후 스리랑카를 찾은 한국 스님들 통·번역도 맡았다.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동국대 불교학과 유학을 정했는데, 신청 시기를 놓쳤다. “그즈음 나중 은사가 되어주신 도제 스님을 만났는데 ‘한국 불교를 진짜 배우려면 한국 스님이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은사 제안으로 온 곳이 길상사였다. 2011년이다. 이듬해 순천 송광사에서 행자가 됐다. 2017년 송광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뒤 재출가했다. ‘명선(明禪)’이란 법명도 받았다. “도제 스님이 참선과 수행을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지어주셨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스리랑카로 갔다가 6개월 뒤 다시 한국으로 왔다. 동국대 석사 과정을 마무리했다.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대승, 소승 구별 없이 부처님 가르침으로 나아가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온 세계 스님들이 부처님, 불교라는 같은 이름으로 가야 해요. 그래야 전 세대, 전 세계 사람들과 상대할 수 있죠. 예전과 달리 지금은 과학 발전으로 다 소통이 되잖아요. 불교를 한곳에 모으는 역할을 하고 싶죠.”

이 역할 수행은 쉽지 않아 보였다. “스리랑카 스님들이 절 보면, ‘대승 스님이 다 됐다, 배신했다’고 그러시고, 한국에서도 이렇게 조계종 가사를 입고 있어도 간혹 어떤 분들이 ‘저놈은 소승 스님이지’ 그러세요.” 명선은 “사람들 마음속에 소승이다 대승이다 분쟁이 생기면 불교를 함께할 수 없다. 양쪽 다 서로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명선은 이주노동자 문제를 두고 “한국인과 외국인, 사장과 노동자 양쪽 입장을 다 봐야 한다”고도 했는데, 대승과 소승을 아우르려는 소신과도 이어지는 생각 같았다.

박사 학위 주제는 ‘포교 방법론’이다. “스리랑카에선 스님들이 2500년 동안 여러 포교를 했어요. 문학적인 책도 많이 썼어요. 지금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국어 과목에 들어간 것들도 있어요. 불법을 알기 쉽게 하려고, 사람들 생각이나 속담 같은 걸 이야기로 풀었어요. 이야기도 읽고, 불교도 배우면서 자기를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그런 역할을 해줘요. 이런 포교 방법에 관해 쓰고 있어요.” 그는 “여러 일들 때문에 논문 쓸 시간이 없어 계속 미뤄진다”며 웃었다.

처음 출가한 열두 살 때 스리랑카 마을 마쿨라덴너의 한 절에서 법문하는 모습(왼쪽), 출가 전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명선 스님 제공

처음 출가한 열두 살 때 스리랑카 마을 마쿨라덴너의 한 절에서 법문하는 모습(왼쪽), 출가 전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명선 스님 제공

어린 시절 이야기도 물었다. 1985년 스리랑카 중부지방 마탈레시 랏토타구의 산골짜기 마을 웰란가하왔따동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 부근 사찰 유치원을 다녔다. “스님들 가사를 만질 때면 왠지 모르겠는데 즐거웠다”고 했다. 야단을 자주 치는 아버지가 미워 출가도 생각했다고 한다. 스리랑카에선 스님들이 각 가정으로 가 공양을 올리고 법문도 한다. 어느 날 집에 온 스님이 아버지에게 “출가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저한테 데리고 오세요”라고 말하자마자 아버지 곁에 있던 명선이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고민했다. “나쁜 친구들이랑 밤늦게 어울리고, 말도 잘 안 들으며 나무 같은 데 올라가 떨어지는 아들을 집에서 키우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신 듯해요.” 쿠발오루와동의 한 사찰에서 출가했다.

출가를 결심한 뒤 좋아했다가 금세 후회했다. “엄마 아빠랑 예전 관계로 돌아갈 수 없고, 여기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같이 느꼈어요. 잘못했나 싶었어요. 가사를 입을 때까지는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입고 나니 생각이 엄청 무거워졌어요. 삶도 무거워졌고요. 가사를 입고 대중 앞에 나오니 저절로 눈물이 났어요. ‘옛날같이 살면 안 되겠다’ 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몇달은 계속 사찰 문을 박차고 나갈지 고민했다. “그 와중에도 출가를 두고 왠지 모를 감동을 했다”고 한다. 출가와 수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첫 출가 때 받은 법명이 라훌라다. 출가 전 싯다르타가 낳은 아들 이름이다. 여러 설이 있는데, 명선은 이렇게 설명했다. “달이나 해를 가리는 어둠인 ‘라후’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출가를 앞둔 싯다르타에게 아들이 생겼는데, 출가를 막는 장벽, 속박 같은 뜻도 있어요.” 스리랑카 유명 고승 중에 이 법명을 쓴 이가 많아 좋았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라훌라라는 법명을 종종 쓰기도 한다. 주민자치센터 회의 때도 이 법명을 쓴다.

명선 스님이 광주 광산구 월곡2동 주민자치센터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동네 자치위원으로 활동한다. 명선 스님 제공

명선 스님이 광주 광산구 월곡2동 주민자치센터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동네 자치위원으로 활동한다. 명선 스님 제공

나무에서 과일 따 먹고, 계곡에서 멱 감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지금 생각하니 너무 재미있게 살았다”며 웃었다. 정부군, 경찰 등이 자행한 폭력 때문에 고통받은 시기도 보냈다. 5·18민주화운동도 남다르다. “스리랑카에서도 그런 사건이 많았어요. 불안한 삶을 살았죠. 5·18은 민주주의를 구하려고 일어난 운동이잖아요. 스리랑카에서도 국민들 목소리를 죽이려고 정부에서 똑같은 짓을 했어요. 광주의 아픔이 뭔지 알죠.” 한국에 와 처음 정착한 곳이자 10년 넘게 산 광주를 두고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제1의 고향도 늘 마음에 둔다. 올 1월엔 태풍 피해를 본 스리랑카에 성금을 전달하고 왔다. 지금은 고향 마을 학교에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인터뷰 내내 웃음 띤 얼굴이었다. 길상사 자원봉사 하는 총무 보살 무위행(양은정)이 인터뷰 전 “우리 주지 스님은 맨날 너무 행복하세요. 왜 행복하냐 물어보니 ‘욕심이 없고 바라는 게 없다’고 하세요”라고 했다. 이 말을 전하니 그가 웃으며 답했다. “왜 바라는 게 없겠어요. 그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또 괜찮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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