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지 마” 부캉이 다음은 ‘남대문 스카프 아저씨’…내 알고리즘을 점령한 ‘SNS 흥행 공식’ 숨은 의미
남대문 스카프 아저씨. SNS 갈무리
“뜯으면 안 예쁘고 목에 하면 더 안 예뻐.” “사지 말고 그냥 문지르다만 가.” “돈 쓰지마. 기운만 받고 가.” “힘든 거 즐기려고 온 거 아녀. 인생이 무료해서.”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스카프를 파는 상인의 입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알고리즘을 점령하고 있다.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고 손님을 붙잡아도 모자랄 판에 그는 대놓고 구매를 말린다. 스카프를 들어 보이며 “그지같다”, “개집에 깔아줘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상인의 입담을 들으려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SNS에서 ‘스카프 아저씨’로 유명해진 남대문시장 한양사 이야기다.
경기도 광명에 사는 김미연씨(39)는 지난주 일부러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SNS에 온통 스카프 아저씨 영상이 올라와서다. 박씨는 “직접 만나보니 영상보다 더 잘생겼고, 츤데레 같은 매력이 있었다”며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면 안전을 걱정하고 팩트 폭격을 하다가도 스윗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저씨가 ‘스카프가 그지같다’며 개집에 깔아주라고 한 제품도 집에 와서 보니 무척 예뻤다”면서 “시장에서 신나게 웃고 예쁜 스카프도 저렴하게 득템하고 좋은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스카프만이 아니다. 영상 속에서 보던 상인을 직접 만나 그의 말투와 표정, 손님들과 주고받는 농담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방문 목적이다. 실제 관련 영상은 최대 412만회 조회수를 기록했고, 한양사 SNS 계정은 일주일 만에 팔로워 3만2000명을 넘어섰다. 손님이 몰리면서 가게 앞은 연일 북적였고, 주변 상인들의 영업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됐다. 안전 문제로 방문 자제를 요청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양사 SNS에 올라온 영업종료 안내.
평범한 시장 상인이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된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차은우를 닮은 외모로 알려진 붕어빵 판매자 ‘붕은우’는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다. 대구의 한 훠궈집 직원에게는 ‘면은우’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들의 이름에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결합한 별칭이 붙고, 비슷한 사례가 하나의 시리즈처럼 소비되는 모습도 나타났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능숙한 한국어와 재치 있는 입담을 선보이는 기념품 상인 파코(Pakko) 역시 SNS에서 인기를 얻었다. 에펠탑보다 그를 만나러 간다는 방문객들의 후기가 이어질 정도다.
유명 연예인이나 전문 인플루언서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의 말투와 행동, 외모와 캐릭터가 콘텐츠가 되는 시대다. 과거에는 유명인이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면 이제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인과 식당 직원이 직접 찾아가 만나보고 싶은 스타가 된다. 온라인에서 영상을 본 사람이 현장을 찾고, 그 경험을 다시 촬영해 SNS에 올리면 새로운 방문객이 유입된다. 온라인의 관심이 오프라인의 방문으로 이어지고, 오프라인의 경험이 다시 온라인 콘텐츠가 되는 구조다.
이 같은 현상을 단순히 짧은 영상과 알고리즘의 영향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원재 카이스트(KAIST) 교수는 스카프 아저씨 열풍을 바라볼 때 세대별로 달라진 시장 경험과 대면 소통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장년층에게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50대 이후 세대는 어렸을 때 시장에서 상인들이 손님을 말로 끌어모으고, 농담과 입담으로 물건을 팔던 모습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며 “상인들이 손님에게 ‘그지같다’고 농담하거나 툭툭 던지는 말도 과거 시장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젊은 세대는 온라인 쇼핑과 새벽 배송 등 비대면 구매에 익숙해져 있다. 시장 상인의 거침없는 말투와 손님 사이의 즉흥적인 대화가 이들에게는 신선한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특히 이 열풍을 젊은 세대만의 현상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장년층 역시 유튜브와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오히려 이들이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에 빠르게 적응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 시장에서 경험했던 대면 소통을 온라인 영상으로 다시 발견하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대구에 사는 김연수씨(가명·52)도 지난주 서울에 일정이 생긴 김에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김씨는 “어느 날부터 SNS에서 스카프 아저씨 영상이 계속 보여 궁금했는데, 마침 서울에 갈 일이 있어 직접 찾아갔다”며 “사람이 너무 많아 놀랐지만, 특유의 유쾌한 입담을 듣다 보니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을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온라인 영상으로 접한 상인의 말솜씨가 어린 시절 시장에서 경험했던 대면 소통의 기억을 불러낸 셈이다.
SNS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끈 대상은 상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부산에서는 상어 캐릭터 ‘부캉이’가 SNS에서 인기를 끌면서 방문객이 몰렸고, 늑대 ‘늑구’ 역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뒤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두바이쫀득쿠키(두쫀쿠) 열풍에 이어 최근에는 과일 모찌까지 SNS를 타고 유행하는 등 먹거리도 예외가 아니다. 시장 상인부터 동물과 캐릭터, 디저트까지 서로 다른 대상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현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SNS가 개인의 관심과 애정을 가족이나 지인 같은 가까운 관계 밖으로 확장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양사 SNS 갈무리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영상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특정 장소로 몰려갈까. 박혜경 부경대 교수는 한국 사회 특유의 경쟁적인 분위기와 불안 심리를 한 요인으로 꼽았다. 남들이 하는 것을 나만 하지 않았을 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이 새로운 유행에 대한 관심을 키운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는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에 민감하고,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라며 “교육열이 높고 명문대 진학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나만 하지 않는 데 대한 불안도 학습된다”고 말했다. 스카프 아저씨가 SNS에서 화제가 되자 ‘나도 남대문에 가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두쫀쿠가 유행하면 일단 한 번쯤 먹어봐야 할 것 같은 심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두쫀쿠 열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는 특정 먹거리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지만, SNS에 구매 인증과 대기 행렬이 잇따라 올라오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관심도 커진다. 모두가 좋아해서라기보다 모두가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비를 자극하는 셈이다. 박 교수는 “두쫀쿠를 먹어본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유행을 따라가기는 하지만 실제 선호도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소비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29일 부산 북항 친수공원에서 시민들이 부캉이를 응원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이런 유행에는 희소성도 작용한다.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만 경험할 수 있거나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대상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이 커진다. 부캉이 역시 부산 북항에 언제까지 머물지 알 수 없는 데다, 다른 곳에서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방문객들의 발길을 재촉하는 요인이 됐다.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지금 직접 봐야 한다’는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박 교수는 “한정된 시간과 장소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마케팅에서 활용하는 희소성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며 “못 해보면 나만 손해라는 심리가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과거에도 일반인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일은 있었지만, 유명세가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속도는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방송이나 신문 등 소수의 매체가 대중에게 알려질 인물을 선택했다면, 지금은 누구나 영상을 제작하고 공유하면서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예전에도 평범한 사람이 유명해지는 사례는 있었지만, 지금은 SNS를 통해 콘텐츠가 순식간에 확산되고 더 많은 사람이 이를 접할 수 있다”며 “관심이 모이고 실제 방문으로 이어지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면서 비슷한 열풍이 과거보다 훨씬 짧은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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