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으로” 시위 프랑스 학생들, 왜 아랍어 구호를 외칠까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17일(현지시간) 시위대가 ‘비스밀라(신의 이름으로)’ 구호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비스밀라, 쎄 레 떼네브르(Bismillah, c’est les ténèbres).” 프랑스 학생 시위 현장에서 낯선 구호가 등장했다.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뒤섞은 문장이다. 비스밀라는 아랍어로 ‘신의 이름으로’라는 뜻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기도하거나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쎄 레 떼네브르는 프랑스어로 ‘이것은 어둠이다’ 또는 ‘이건 암흑이다’라는 뜻이다. 두 표현을 이어 붙이면 ‘신의 이름으로, 이건 암흑이다’ 정도로 옮길 수 있지만, 문법적으로 자연스럽거나 의미가 명확한 문장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문구는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시위 피켓에 등장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밈으로 퍼졌다.
아랍어가 섞인 구호만 보면 이슬람 종교와 관련된 시위가 아닐까 싶지만, 그 유래는 조금 다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이 문구가 프랑스 학생 시위의 세대 갈등을 상징하는 구호가 됐다고 보도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말투를 어설프게 흉내 낸 듯한 문장을 역으로 가져와 당국을 조롱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호의 시작은 스냅챗에 올라온 메시지였다. 프랑스 학생들이 학교 봉쇄 시위를 조직하기 위해 비공개 대화방을 이용하던 지난달, 한 이용자가 대화방에 들어가려 하며 “비스밀라, 쎄 레 떼네브르”라고 썼다. 이어 “우리는 모든 것을 부술 것”이라는 취지의 문장도 덧붙였다.
메시지 작성자는 마마두(Mamadou), 압달라(Abdellah) 등의 이름을 사용했고, 일부 계정에는 알제리 국기 이모티콘이 표시돼 있었다. 다른 이용자들이 이 메시지를 캡처해 SNS에 공유하면서 문구가 알려졌다. 학생들은 아랍어와 프랑스어 속어를 뒤섞은 어색한 말투가 수상하다며 경찰이 시위 조직에 잠입하려고 청소년을 흉내 낸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지난 17일(현지시간) 시위대가 ‘비스밀라(신의 이름으로)’ 구호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당국이 실제로 해당 계정을 운영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럽 뉴스 채널 유로뉴스는 지난 19일 보도에서 경찰이나 내무부가 해당 메시지의 작성자를 확인해주지 않았으며, 독립적으로 신원을 검증한 사람도 없다고 전했다. 온라인에서 제기된 계정 위치 추적 주장 역시 검증되지 않았고, 일부 캡처 화면은 장난이나 패러디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문제의 문구를 시위 구호로 받아들였다. 당국이 자신들을 감시하거나 시위에 개입하려 하더라도 그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조롱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경찰이 아랍계 청년의 말투를 흉내 냈다는 의혹은 단순한 잠입 논란을 넘어 인종적 편견 문제로도 이어졌다.
그렇다면 구호에 등장하는 ‘비스밀라’는 어떤 말일까. 아랍어로 ‘신의 이름으로’라는 뜻이다. 무슬림들은 전통적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 표현을 사용한다. 다만 프랑스 청년들의 일상적인 속어에서는 ‘자, 시작하자’ 정도의 의미로도 쓰인다. 뒤에 붙은 프랑스어 ‘쎄 레 떼네브르’는 ‘이것은 어둠이다’라는 뜻이다. 유로뉴스는 이 표현이 젊은 세대의 속어로는 상황이 매우 암울하거나 엉망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두 표현을 합치면 ‘신의 이름으로, 이건 암흑이다’라는 어색한 문장이 된다. 바로 이 어색함이 핵심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청년을 흉내 내는 어른들을 풍자하는 데 이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도 지난 17일 학생 시위에서 인터넷 밈과 대중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위대는 만화 ‘원피스’의 캐릭터나 공포영화 속 인물로 분장하고, 온라인에서 유행한 몸짓과 농담을 시위 현장으로 가져왔다. 르몽드는 역사학자 베로니크 세르바의 설명을 인용해 “유머는 시위의 장식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비스밀라, 쎄 레 떼네브르’는 아랍계 청년을 폭력과 약탈의 주범으로 여기는 편견을 역으로 비튼 구호이기도 하다. NYT에 따르면 학생들은 당국이 시위대 가운데 아랍계 청년이 폭력을 일으킬 것이라고 미리 단정하는 태도를 조롱하는 의미로 이 문구를 받아들였다. 폭력 시위대를 아랍인으로 상정하는 사회의 시선을 구호로 되돌려 풍자한 셈이다. 다만 이 문구를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인터넷 밈과 풍자를 시위의 언어로 활용하는 현상은 프랑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도에서는 청년 활동가들을 ‘바퀴벌레’와 ‘기생충’에 빗댄 발언이 논란이 되자, 청년들이 오히려 ‘바퀴벌레 국민당(’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저항에 나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청년들이 자신들을 향한 모욕을 역으로 이용해 정치적 저항의 상징으로 바꾸는 과정을 조명하며 인도 청년들의 실업과 교육 문제에 대한 불만은 온라인 밈과 풍자를 통해 확산했고, 짧고 우스꽝스러운 문구는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는 도구가 됐다고 전했다.
프랑스에서도 정치인의 이름을 비트는 언어유희가 시위 구호로 쓰였다. 2023년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서는 당시 총리 엘리자베트 보른의 이름을 넣어 ‘본 투비 데드(Borne to be dead·끝장날 운명의 보른)’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록 음악의 유명한 제목인 ‘본 투비 와일드(Born to Be Wild·거칠게 살 운명)를 보른 총리의 성과 겹쳐 쓴 언어유희다. 연금개혁을 추진한 총리를 향한 반감과 퇴진 요구를 조롱 섞인 한마디에 담은 것이다.
그렇다고 시위 현장에서 벌어진 폭력과 약탈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주말 프랑스 전역에서 약 2400명이 체포됐고, 수천개 사업장이 피해를 입거나 약탈당했다. 경찰관 수백명이 다쳤으며 리모주에서는 19세기 시청사가 불길에 휩싸여 지붕이 무너졌다. 약탈과 방화는 시위의 명분과 별개로 수사와 처벌의 대상이다. AP통신은 프랑스 소요 사태를 무슬림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미국 정치권의 주장을 검증하면서 프랑스 당국이 아직 특정 집단을 폭력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세바스티앙 로셰 프랑스 그르노블 정치대학 교수는 AP통신에 “약탈이 극좌파 집단의 전형적인 활동 방식과 다르다”며 “혼란을 틈타 물건을 훔치는 범죄자들이 약탈의 주된 행위자”라고 분석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