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제규범 가치 일깨운 ICC 전 재판관 노벨평화상 수상
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나비 필라이가 지난 9일(현지시간) 독일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2026년 노벨 평화상이 나비 필라이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에게 돌아간 것은, 힘의 논리 속에 보편적 법 규범이 형해화하는 국제사회에 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하고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소장과 유엔 인권최고대표 등을 역임한 필라이의 삶은 전쟁범죄와 집단학살 등에 맞서 정의와 인권을 지켜온 역사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그를 “국제법의 대표적 수호자”라고 평했다. 폭력이 정의를 압도하는 이 시기에 필라이를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국제규범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시의적절한 결정이다.
노벨위원회는 지난 9일(현지시간) “전쟁과 분쟁이 증가하고 국제적 사법기관들이 정치적 공격을 받는 지금, 무력이나 폭력 없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국제법의 지배에 달려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제규범 수호자에서 파괴자로 퇴행한 미국,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러시아, 그리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한 이스라엘 등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2024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에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ICC 관계자들을 제재 대상에 올리는 등 국제규범 수호기관인 ICC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불발에 불만을 터뜨리며 ICC를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하는 불법적 기구”로 규정하고 제재를 발표했다. 그 어처구니없음이 개탄스럽다.
트럼프의 반발에서 보듯, 오늘날 국제 법질서는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강대국들이 편협한 자국우선주의에 빠져 국제사회가 구축한 보편적 원칙과 제도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라이는 나치 전범 재판이 열렸던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국제 형사사법을 약화하려는 시도들은 뉘른베르크 이후 공들여 이뤄낸 진보를 위협한다”고 일갈했다. 국제사회가 ‘불량 강대국’들을 제지하지 못한다면 세계는 분쟁과 학살의 ‘무규범’ 시대로 후퇴하게 될 것이란 경고다.
필라이의 평화상 수상은 흔들리는 국제질서 속에서도 법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묵묵히 지켜온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헌사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필라이의 수상이 갖는 함의를 무겁게 새겨야 한다. 지속 가능한 평화는 힘이 아닌 법과 원칙과 정의에서 온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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