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회·청사회·한국·일본…‘코다 엄마’가 넓히는 세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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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면서 자랐다. 경계일지언정, 한계는 아니었다. ‘반짝이는 박수소리’로 이름을 알린 감독 겸 작가 이길보라는 농인 부모를 둔 ‘코다’의 위치에서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해 왔다. 어느 날 그는 용기 내어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네덜란드 필름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나기 전, 한 남자를 만났는데 일본인이었다. 너무도 비슷한 감수성에 감탄을 거듭하고 앞날을 함께하기로 했다. 네덜란드에서 석사과정을 마쳤고, 고민 끝에 파트너의 고향인 후쿠오카에 정착했다. 코로나19로 국경이 닫혀 혼인 신고를 먼저 했고 결혼식은 나중에 했다. 수어가 제1언어인 결혼식이었다. 한국수어, 음성 한국어, 음성 일본어가 오갈 수 있도록 수어 통역사, 일어 통역사를 섭외했다. 많은 이들의 눈길을 모은 결혼식이 끝난 뒤 뱃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됐다.
‘경계에서 자란다’는 이길보라가 3년 만에 내놓은 책이다. 매 순간 얼마나 진심으로 부지런히 살았던지, ‘코다 엄마’이자 외국인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영화를 찍는 예술가로, 임신과 출산을 한 양육자로 직접 겪은 감동적이거나 열불 나는 일화가 빈틈없이 이어진다. 거기에 저자는 여성의 몸과 재생산이라는 정치적인 결을 하나 더 보탰다. 한일 양국의 우생학과 국가 폭력, 비/장애인의 출산과 육아라는 성정치와 돌봄정치까지 엮어가며 녹여낸 아름답고 급진적인 에세이가 탄생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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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한국수어와 음성 한국어를 사용했고, 일본인 파트너와 영어로 소통하는 저자는 자신의 다문화적 정체성과 언어, 경험을 아이와 나누고 싶었다. 많은 선택과 용기가 필요했다. 우선 후쿠오카에서 아이를 낳기로 하고, 의사와 영어 소통이 가능한 출산전문병원을 찾았다. 그의 출산을 돕게 된 조산사는 한국어, 영어, 쉬운 일본어를 적절히 쓰면서 산모의 건강을 확인했다.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여 무통주사조차 없이 어렵게 출산한 저자는 처음 만난 아기에게 일본어와 한국어로 인사했다. 탯줄은 직접 잘랐다.
아이를 위해 어떤 문화와 언어적 환경을 조성할지를 놓고 파트너와 적극적으로 고민했다. 다행히 아이는 자연스럽게 여러 언어를 받아들였다. 한국 할머니는 어떤 구연동화보다 더 풍성하게 시각적 요소를 동원하며 손주에게 수어 동화를 보여줬다. 아이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눈을 맞추고 그 ‘이야기를 보았다.’ 저자는 이야기꾼 농인 할머니가 가진 다채로운 자산이 작은 존재로 향하는 장면을 보며 경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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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몸’을 만나면서 저자는 ‘주류’가 정한 세상의 범주가 얼마나 납작하고 폭력적인지 더 잘 알게 됐다. 비/정상, 내/외국인, 비/장애, 이성애, 동성애, 성별 등의 경계를 두고 배제와 차별이 벌어졌다. 저자에게 ‘경계의 풍요와 매혹’을 알려준 이들은 주류에서 벗어난 ‘주변인’들이었다. 이성애자 코다 커플, 코다-농인 퀴어 커플 친구들과 가족을 보면서 저자는 아이 낳고 키울 결심을 하고 어떤 세계에서 그 아이와 살아갈지 고민하게 됐다.
아이와 함께 만난 ‘주류의 세계’는 생각보다 치사하고 집요했다. 낯선 사람들이 저자의 ‘엄마 노릇’을 정교하게 감시하고 재단하며 평가했다. 아이를 어떻게 안을지, 어디서 어떻게 젖을 먹일지, 어디로 데려갈지 하나하나 성정치, 돌봄정치와 깊게 연관된다는 점을 저자는 뼛속 깊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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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붙들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은 저자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워 보디스’다. 1948년부터 1996년까지 일본은 우생보호법을 통해 장애인, 부랑아, 한센병자 등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 및 낙태수술을 시행했는데, 피해자만 8만4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2024년 일본 대법원에서 위헌판결을 얻어내기까지 피해자의 싸움을 카메라에 담았다. 저자 스스로도 임신과 동시에 선별검사를 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서 자기 안의 우생사상을 돌아봤다. 뿐만 아니라 할머니, 엄마, 자신의 몸까지 아우르는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정면으로 다뤘다. 여성 3대의 몸을 가로지르는 임신중지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저자는 “왜 우리는 이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까?” 묻는다.
저자는 몸의 말, 몸의 침묵, 몸의 기억을 읽으면서 “가장 가까운 나의 몸”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어 하는 자신의 몸 이야기를 주의 깊게 파악하고, 용기를 내어 아이와 함께 여행하고, 강연하고, 영화제에 참석했다. 엄마 됨과 예술가 되기를 동시에 하려고 분투했다. 사람들이 “영화가 어렵냐, 육아가 어렵냐”고 물을 때 그는 답했다. “그 두개를 병행하는 게 어려워요!” 둘을 함께 하기는 왜 이토록 어려운가?

1955년,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은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직접 밥을 해주면서 영화 ‘미망인’을 만들었다. 70년 뒤 엄마/감독 이길보라는 국제영화제에서 아이를 안고 단상에 올라 상을 받았다. 기저귀 갈 때를 놓친 탓에 오줌에 옷이 흥건히 젖은 순간에도 ‘프로페셔널하게’ 웃었다. 농사회, 청사회, 한국사회, 일본사회, 시각언어, 음성언어라는 겹겹의 경계를 넓히며 아이는 언어를 습득하고, 엄마/감독은 이제 곧 찾아올 둘째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의 세계는 자신보다 훨씬 중층적이며 근사할지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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