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활동 릴레이 기고] 청소년의 교실 밖 배움, 현장을 다시 세우자
완연한 가을, 수학여행과 현장체험학습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러나 현장에서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보다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질까에 가까워지고 있다. 교실 밖 배움은 청소년의 전인적 성장과 공동체 역량을 키우는 중요한 활동이지만 책임에 대한 부담이 커질수록 학교는 체험학습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
실제 학교 현장체험학습의 위축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당일형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한 서울 초·중·고교는 2023년 1150개교에서 2024년 984개교, 2025년 673개교로 감소했다. 특히 초등학교는 2023년 598개교에서 2025년 309개교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전국 분회장 7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 현장체험학습 실태조사에서도 최근 1년간 숙박형 현장체험학습을 운영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53.4%였다. 코로나19 이후 일상이 회복된 뒤에도 위축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 배경에는 안전사고의 결과 책임이 교사 개인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불안이 있다. 최근 법 개정으로 안전조치 의무를 다한 교원에 대한 면책 근거가 마련됐지만 오랫동안 축적된 불안까지 곧장 해소된 것은 아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교사의 희생이나 각오가 아니라 위험을 합리적으로 분담하고 관리하는 공적 시스템이다. 청소년활동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결과 책임 중심 구조가 교원의 방어적 태도와 현장체험학습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청소년활동의 안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참고할 만한 원칙이 있다. 영국 안전보건청(HSE)은 아동·청소년의 놀이와 여가에서 모든 위험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과 활동이 주는 편익을 동시에 따져봐야 한다고 본다. 위험을 없애는 데만 치중하면 청소년에게 필요한 도전과 경험까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장체험학습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안전의 목적은 활동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면서 청소년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어야 한다.
학교 현장체험학습과 청소년수련활동은 제도적 근거와 운영 주체는 다르지만 청소년이 교실 밖에서 경험하고 성장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정 규모 이상 또는 위험도가 높은 일부 청소년수련활동은 사전 인증을 받고 시설 안전점검과 지도자 안전교육 등이 운영되고 있다. 핵심은 개별 현장이 모든 위험을 오롯이 감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서 청소년활동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청소년활동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많이 제공하거나 역량을 향상시키는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청소년이 스스로 선택하고, 관계 맺고, 도전하며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의 장이어야 한다. 청소년에게 활동은 누군가가 베풀어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누려야 할 경험의 권리이기도 하다.
필자는 청소년시설 현장에서 오랫동안 청소년들과 함께했다. 청소년단체와 시립청소년센터에서 일하고, 서울특별시청소년시설협회를 이끌며 확인한 것은 분명하다. 좋은 청소년활동은 기관이나 지도자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과 현장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살아난다는 점이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의 역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장을 대신하기보다 현장이 더욱 생동감 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기준을 세우고, 필요한 자원과 기관을 연결하며,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학교와 청소년시설, 가정과 지역사회가 함께 청소년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안전을 강화하되, 활동의 문은 닫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청소년활동 현장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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