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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8, 2026

[NGO 현장]‘국가영웅’과 ‘도움 안 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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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두고 쏟아낸 대통령의 말이 큰 우려를 낳았다. 겉으로는 정책이 공정한지 검토해보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경제적 기여가 큰 국민에게 혜택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은 명백히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의 측면에서 정책적 의문을 던지는 방식 또한, 유럽 극우정당의 반이민 담론과 닮아 있다. 대개의 사회에서 이주민은 사회문화적 자본을 비롯한 제도와 인프라 전반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구조적 소수자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노골적인 혐오표현은 아니지만, ‘도그 휘슬’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

경제적 기여도와 정책적 보상이 직결되면서 ‘국가 경제에 크게 도움 안 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복지 혜택이나 우대 조치는 역차별로 받아들여진다. 그리하여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합리적인 정책 태도로 둔갑한다. 공정을 등가교환 논리로 환원하는 담론은 얼핏 상식적이거나 타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든 권리 대신 ‘받을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경제적 기여가 적지 않다는 통계를 찾아 반론하더라도 곧 ‘자격과 기여’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몫 없는 자들’을 향해 벌이는 공격에 자격증명으로 맞서는 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자국민 우선’과 조건부 복지가 결합한 복지 쇼비니즘은 독일을위한대안(AfD)이나 국민연합(RN)을 비롯한 수많은 정당이 증명하는 성공 공식이다. 소수자 차별이 정책적 합리성이나 등가교환이라는 ‘중립적인 언어’를 통해 벌어지는 것이다.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

‘크게 도움 안 되는 사람들’ 반대편에는 ‘국가영웅’이 있다.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두 명의 재벌 총수가 국가영웅으로 추대되던 장면을 기억한다. 양자 간 선명한 대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통령이 서른여섯 번이나 외친 ‘성장’은 사람과 자연·자원을 징발하고 추출하는 초광역특구법안과 그대로 맞닿는다. 성장의 기여분이 클 것으로 보이는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주겠다는 법이다. 법안에 박힌 170여차례의 “에도 불구하고”는 우리 사회가 지켜온 원칙과 안전망을 성장의 장애물로 규정하고 넘어서겠다는 선언이다.

사실 우리는 단 한 번도 성장주의 궤도에서 이탈한 적 없다.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개혁을 대표하는 민주당마저 발전주의의 충실한 대변자이자 2000년대 신자유주의 전환의 주역이었다. 소란스러운 정쟁과 무관하게 우리 사회는 ‘성장동맹’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불평등을 더 많은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성장통으로 감내하라고 요구한다. 초광역특구법처럼 모두를 성장에 연루시키면서 낙수효과와 같은 낙관적 전망을 내놓을 뿐이다. 숫자가 증명하듯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에서 ‘노동 몫’은 2010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역대 최대의 예산안이라지만 여전히 낮은 비율의 사회 지출 탓에 ‘모두의 성장’은 허울 좋은 말로 보인다.

하락하는 주식장은 고작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어뜨리지만, 누적되는 불평등은 민주주의 그 자체를 위협한다. 불평등 수준과 민주주의 침식 간 상관관계는 이미 여러 연구로 입증된 바 있다. 낮은 투표율과 정치적 무관심, 시민적 참여의 격차와 엘리트 과잉대표,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왜곡 등이 심화한다. 민주주의 후퇴와 불평등 사이 연결고리는 상당히 견고하다. 국가영웅과 경제에 도움 안 되는 사람들 간 대조가 더없이 불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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