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군주 정조와 이재명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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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일 | 시사평론가
2025년 대선 유세 당시 이재명 후보는 “똑같은 조선에서 선조는 술 먹고 놀다가 수백만 조선 백성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정조는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노비 자식이라도 실력이 있으면 기회를 줘 동아시아 최대 부흥 국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무능해서 나라를 말아먹은 선조에, 본인을 유능한 개혁군주 정조에 비유한 것이다.
업적의 크기는 뒤로하더라도 정조와 이재명 두 리더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조는 당파와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쓸 만한 인재를 발탁하는 탕평책을 추진했다. 북학파의 실용적 사고를 받아들여 상공업 진흥과 제도 개혁을 모색했다. 격쟁과 상언을 활성화해 백성의 억울함을 직접 들으려 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념이나 진영에 갇히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려 했고 실용과 성과를 중시한다. 관료주의 관성을 질타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려 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국민과의 직접 소통 폭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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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리더의 실용주의 통치 스타일에는 개인적 콤플렉스가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본다. 정조는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정치적 굴레를 평생 짊어졌다. 아버지의 죽음은 왕위 계승의 정당성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는데 정조는 이를 개혁의 동력으로 삼았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변방에서 출발한 비주류 정치인이라는 정치적 콤플렉스를 안고 주류 정치의 높은 벽을 넘어왔다. ‘이재명은 합니다’는 비주류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과주의를 강조한 성공한 정치적 슬로건이었다.
두 사람의 정치적 한계 역시 유사한 경로를 보인다. 정조는 잦은 관직 인사를 통해 정치적 한계를 극복하려 했는데 이는 극심한 정국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정조 재위 24년 동안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삼정승 교체 횟수만 110회에 달했다. 이재명 정부도 인사검증에 번번이 실패하며 리더십에 손상을 입었고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정조는 왕권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지만 개인기에 의존했고 탄탄한 개혁세력을 다지는 데 실패했다. 결국 정조 사후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라는 앙시앵 레짐의 부활을 막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기에 의존한 국정운영은 국무위원과 참모의 존재를 지우고 있다. 무엇보다 포스트 이재명 시대에 집권할 개혁세력을 탄탄하게 다지고 있는지 아직 의문이다. 구조적 다수를 얘기하고 있지만 좌충우돌하는 이 대통령 개인만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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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스스로를 정조와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에 종종 비교한다. 개혁 성향과 캐릭터의 유사성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정조와 노무현 대통령은 본인의 개혁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직설과 독설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정치인 이재명 역시 공격을 받을 때마다 강한 반격과 지지층 결집으로 위기를 헤쳐 나왔다. 성공의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지금 이 대통령이 참고할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십이 아닐까 싶다. 역대 대통령 선호도에서 박정희, 노무현 두 대통령이 엎치락뒤치락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의 폐허 위에서 정보통신 산업을 키웠고 대한민국 30년 먹거리의 토대를 만들었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의 문을 열었고, 지역주의의 벽에도 균열을 냈다. 무엇보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유일한 민주당 정부다. 그 힘은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묵묵한 추진력에서 나왔다. 비판이 있으면 수용할 것은 수용했고 추진할 것은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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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상에서 만인과 논쟁을 벌이는 이 대통령의 고립감과 심리 상태에 대해 친명 정치인마저도 우려하는 상황이다. 에스엔에스를 끊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하고 논쟁도 전략적으로 하라는 의미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 우선순위를 얘기하다 내로남불과 정치적 올바름의 폐해를 얘기한다고 이재명 대통령이 논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개혁세력이 탄탄해지는 게 아니다. 정조가 반대세력의 거두였던 노론 벽파 심환지에게 비밀편지를 299통이나 보낸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논쟁이 공개적일 필요는 없다.
나는 이재명 정부가 꼭 성공한 정부가 되길 바란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실패할 정부를 감내할 상황이 아니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길 원하는 많은 사람의 지적을 이 대통령이 쉬이 넘기지 말고 곱씹어보면 좋겠다. 무엇보다 운동을 주기적으로 하고 잠을 푹 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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