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인수 넘어 성장자본으로…PEF 순기능 살려야 [김앤장 금융·핀테크·가상자산 인사이트]

한국의 사모펀드는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전통적인 유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유형의 자산에 투자하는 형태로 외연을 넓혀 왔다. 그중 △벤처기업·중소기업·신기술사업자 등에 투자하는 VC펀드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거나 참여하는 PEF(Private Equity Fund) 등이 근래에 각광받았다.
한국형 PEF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외국계 사모펀드가 수행한 역할을 계기로, 2004년 법률 개정을 통해 ‘사모투자전문회사’라는 이름으로 도입됐다. 선진 자본시장에서 들어온 생소한 제도였지만, 외환위기 이후 상황에서 PEF의 긍정적 기능을 보고 과감히 도입했고, 결과적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제도 출범 당시인 2004년 말 2개 펀드, 4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PEF 시장은 2025년 말 1195개 펀드, 출자약정액 167조5000억원으로 성장했다. 20여 년 만에 약정액 기준 400배가 넘는 시장이 된 것이다.
PEF 제도의 출발과 그 이후의 변천을 돌아보면 현재 논의되는 PEF 제도 개선의 방향에 참고가 될 것으로 보여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규제 최소화로 출발…기관전용 펀드로 재편
PEF를 처음 도입할 당시에는 기존의 전통적인 펀드 및 자산운용사에 관한 복잡한 규제를 거의 받지 않도록 했다. 일반 펀드는 운용사 및 개별 펀드를 모두 등록해야 했지만, PEF 운용사는 금융기관 범위에서 제외해 운용사 등록 없이 PEF만 등록하면 됐다. 대신 규제는 투자자 자격을 제한해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갖추고 대기업의 우회적 지배력 확장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15년경 저금리 상황에서 일반인들의 사모펀드 투자 기회 확대 요청에 따라 규제 완화 움직임이 일었고,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사모펀드 적격투자자 범위가 모든 전문투자자와 일정 요건(일정 금액 이상 투자 등)을 갖춘 일반투자자로 넓어졌다.
그 이후 라임펀드 및 옵티머스펀드 사태를 계기로 2021년 사모펀드 관련 규제가 재편됐다. 두 펀드는 비록 PEF가 아니었지만, 이 사태는 PEF를 포함한 사모펀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PEF에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의 범위를 전문성과 위험 감수 능력을 갖춘 전문투자자(소위 ‘기관투자자’ 및 이에 준하는 자)로 좁혀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한편, 크레딧, 인프라 등 비경영참여 방식의 운용을 허용했다.
성장자본·산업재편 지원으로 역할 확대
2021년 자본시장법 개정은 오랫동안 ‘경영참여투자’라는 틀에 묶여 있었던 PEF 제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에는 전통적인 M&A 방식의 ‘경영참여투자’만 허용돼 투자전략에 제약이 컸지만, 경영참여투자 의무가 폐지되면서 경영권 인수뿐 아니라 단순 소수지분 투자, 지분증권이 아닌 사채 등 채무증권 투자, 부동산 투자, 대출 투자 등 다양한 투자전략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 PEF의 역할이 경영권 거래에서 기업의 성장과 산업 재편 지원으로 확대됐음을 뜻한다.
전통적인 M&A 방식의 ‘경영참여투자’ 역시 PEF 제도의 도입 취지에 맞게 활성화돼야 할 것이나, 변경된 제도 아래에서 새롭게 주목해야 할 PEF의 역할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PEF는 기업의 경영권을 거래하는 것을 넘어 기업의 성장 과정을 지원하는 성장자본의 공급자가 될 수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본의 형태는 성장단계에 따라 다르다. 창업 초기에 벤처캐피탈 자금이 필요하다면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한 시점에서는 설비투자, 해외진출, 신사업 진출 등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이 요구된다. 이때 대규모 구주 매매나 유상증자는 창업주와 기존 주주의 경영권 지분을 희석할 수 있어 선택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PEF가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창업주 등의 의향을 존중하면서도 소수지분 투자, 메자닌, 채무증권, 대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의 자본구조와 성장단계에 맞는 자금을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속 부담 등으로 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기업이 창업주 사후에도 경영권을 유지하며 기존의 사회적 역할을 이어가도록 지원할 수도 있게 됐다.
둘째, PEF는 우리 경제의 산업재편과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다. 종래에도 기업재무안정 PEF라는 특수한 형태가 있었지만, 기업구조조정 수요는 반드시 부실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의 비핵심 사업 부문 매각, 기업집단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기업의 승계, 사업부 분할 및 독립, 경쟁기업 간 통합 등 정상기업에서도 다양한 수요가 발생한다. 개정법 하에서는 PEF를 통해 이러한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AI·로봇, 데이터센터, 바이오처럼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대기업의 전략적 투자와 국가 전략산업 육성에도 자금줄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PEF의 역할 확대는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투자처를 제공할 수 있다. 국내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이 외국 PEF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데, 국내 PEF가 더욱 활성화되면 대체투자 분야에서도 국내 PEF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투자처가 될 수 있다. 글로벌 PEF들은 이미 지분투자뿐 아니라 성장자본, 크레딧, 인프라, 부동산 등 다양한 전략을 활용하면서 거대한 자본을 운용하고 있는 반면, 국내 PEF는 경영참여투자 의무로 인해 글로벌 PEF와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2021년 개정은 이러한 제도적 격차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 국내 PEF가 투자자 수요에 맞춘 다양한 전략으로 국내외 펀딩을 늘리고, 해외 기업 경영권 투자뿐 아니라 다양한 해외투자를 실행하는 글로벌 자본으로 성장할 길이 열린 것이다.
투자자 보호와 운용 자율성의 균형
2004년 한국형 PEF를 도입하고 이후 법 개정을 통해 PEF의 자산 운용 대상을 확대하고 자율성을 높인 것은, 금융자본이 적재적소에 흘러가도록 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성장과 산업의 혁신을 뒷받침하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향후에도 이러한 PEF의 기능과 장점을 최대한 살려 나가면서 투자자 보호와 자본시장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규제를 보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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