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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13, 2026

[엄기호의 악당과 위선자]파병과 헥토르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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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에 반대한다. 반면 지금도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작 파병했더라면 뭉그적거리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든든한 동맹으로 인정받고, 그 대가로 확실하게 얻을 것은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르헨티나가 확실하게 도널드 트럼프의 편에 선 덕분에 영국과 분쟁 중인 포클랜드제도를 두고 중립을 지키며 사실상 영국의 점유를 인정해온 미국 정부의 입장이 뒤집힌 것처럼 말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영국에 ‘벌’을 준 것이다. 그의 초점은 편들어주는 쪽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편들어주지 않는 자를 벌하는 데 있다. 우리가 아무리 그의 편을 들어준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를 벌하는 데 이익이 되지 않는 한 결코 우리 편을 들지 않는다. 그의 정책은 ‘주고받고’가 아니라 ‘벌하고 얻고’에 있다. 그는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상’은 ‘벌’의 수단이다.

한국의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벌할 수 있는 쪽이 어디에 있을까? 이번 전쟁에서만큼은 대놓고 곤란하다고 말하는 일본을 벌할 수 있는가? 중국에 타격을 줄 수 있는가? 아니면 “그를 좋아하고, 자기도 좋아하며, 아주 잘 지내는 관계인” 북한을 벌하고 싶어 하는가? 한국의 이익을 챙긴다고 벌할 수 있는 상대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는 성립한다. 그는 북한의 편을 들어줌으로써 자기에게 ‘공물’을 바치지 않는 한국을 벌하고 싶어 하는 쪽인 것 같다.

지킬 것 있어 협상 놓지않은 헥토르

그렇다고 파병하면 벌을 면할 수 있을까? 잠시 잠깐은 그럴지 모르겠다. 한국의 사례를 가지고 유럽이나 다른 동맹들을 벌하기 위한 수단으로 말이다. 유럽을 벌하기 위해 잠시 우리에게 상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을 둘러싼 주변국들 사이에서 한국은 그에게 결코 ‘상’의 대상이 아니다. ‘벌’의 대상이다. 유럽은 이미 캐나다를 통해 벌의 본보기를 보였다. 게다가 그에게는 한국을 ‘벌’하는 것으로 그가 그토록 잘 지내고 싶어 하는 북한이 있다.

물론 그가 정말 상을 주고 싶은 사람은 지구상에 딱 한 명, 자신뿐이다. 그에게는 상과 벌은 자신을 가장 위대한(the greatest) 존재로 드러내어 전 세계의 주목을 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벌을 주는 것이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데 효과가 있다면, 주목이 사그라들 때까지 반복한다. 한 번 벌에 굴복한 사람은 더한 벌을 줘도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파병하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하며 트럼프니까 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이기 때문에 들어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부하라는 말만은 아니다. 파병을 거부하더라도 어떻게 거부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관세 협상에서 캐나다가 한 것처럼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도 결정적인 최후의 순간에는 필요한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정부에 필요한 것은 최후를 앞당기는 비장한 ‘노’가 아니라, 모욕을 감수하더라도 가능한 모든 협상을 다해 전쟁을 막으려던 트로이의 헥토르와 같은 ‘용기’다.

앙드레 보나르는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를 대비시킨다. 아킬레우스를 지배하는 것은 사적인 분노와 자신의 명예뿐이다. 반면 헥토르는 지킬 것이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폴리스다. 헥토르란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지키는 자’이다. 폴리스를 파괴하는 전쟁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협상하며 상대에게 새로운 것을 제안한다. 폴리스를 지키기 위해 수모와 굴욕을 감수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제안한다. 거부당하더라도 굴하지 않았다. 또 새로운 것을 제안했다.

이것이 헥토르의 ‘용기’다. 그 용기는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왔으며 용기를 가능하게 한 것은 지혜였고 그 용기를 펼치는 방법이 전쟁을 막는 정치였다. 물론 마지막 멸망을 막을 방법이 모두 소진했을 때는 패배와 죽음이라는 운명에 용기 있게 맞선다. 그렇기에 아킬레우스나 아가멤논이 아니라 헥토르야말로 문명인이자 진정한 시민의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람이다.

파병 거부로 가는 길도 지혜로워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킬레우스가 아닌 헥토르의 용기다. 대통령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고, 그것을 지켜야 대통령이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파병해야 한다는 주장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부터 대통령이 비장함을 드러내고 최후인 것처럼 싸워야 한다는 주장도 위험하다. 오히려 최후를 앞당길 뿐이다. 아킬레우스의 힘이 아니라 헥토르의 용기로 강함을 드러내야 한다. 그 강함이 강약약강을 멈추게 하는 가장 지혜로운 강함이다. 이를 위해 시민들의 역할은 명확하다. 단호하게 용기를 내어 파병에 반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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